2016년 2월 26일 ~ 3월 3일
땡스북스 금주의 책

여백이
난다
봉현 지음

'아, 귀여워!!!!!!' 라는 (너무 귀여운 나머지 약간의 화를 동반한) 감탄이 절로 나오는 고양이의 사진. 그리고 이 고양이의 이름인듯한 '여백이'라는 제목의 책을 반갑게 집어 든 이유는 내게도 여백이 같은 작은 고양이가 있어서였다.
반년 전만 해도 나는 지인이 자신의 고양이 사진을 눈앞에 들이밀고, 뛰어난 미모의 고양이를 발견해도 "고양이는 별로~" 라며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의 고양이를 만난 뒤부터는 내 고양이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고양이는 어떻게 지내는지, 이 매서운 추위 속에서 길고양이들은 모두 안녕한지가 늘 궁금하고도 걱정스러운 영락없는 애묘인이 되어버렸다. 그러던 와중 나는 내 고양이만큼이나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여백이’를 만나게 되었다.


* 책 싸개를 벗겨내어 펼치면 2016년 달력이 되고


* 책 싸개에 가려졌던 귀여운 여백이와 그의 친구 악어 인형을 만날 수 있다.
(참고로 책에서 볼 수 있는 여백이의 사진은 충격적으로 귀엽다.)


서른을 한 해 남긴 스물아홉의 시작에 봉현(저자)에게 불쑥 찾아온 아기 고양이는, 이웃 주민의 고양이가 낳은 아기 고양이들 중 유난히 작고 말랐던 아이였다. 그래서 더 마음이 가던 그 아이가 봉현의 후드 모자 안으로 쏙 들어간 순간, 봉현의 인생에는 여백이 생겼다.



(여백이 아님 / 히로가 처음 집에 온 날)

나 역시 저자와 같이 스물아홉에 묘연을 만났다. 주택 가의 화단에서 이틀째 홀로 울다가 구조된 아기 고양이. 하얀색 털에 까만 포마드 머리가 인상적이었던 파란 눈의 너를 보자마자 나는 입양을 결정했다. 사실 여백이에 대한 봉현의 기록들이 내가 히로를 만나서 겪게 된 감정들과 일치되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와 히로의 이야기를 덧붙여보고자 한다.
(도서 <여백이>에 묻어가는 자매품: <나히로>)


p.14-15
여백이 있는 인생을 바란다면. 아, 여백이라는 이름은 어떨까. 고양이 여백이와 함께 살면 어떨까. 내그림에도 여백이 있고, 내 글에도 여백이 있고, 내 방안에도 여백이 있고, 내 삶에도 여백이 있다면. (...)

하루에도 수십 번을 여백아, 여백아, 하고 부르고 사랑한다면 내 삶에 여백이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름 없던 아기 고양이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여백이’가 되었고, 내 인생에는 여백이 생겼다.

여백이. 발음도 의미도 참 예쁜 이름이다.
내 고양이에겐 '옥상달빛'의 노래 <히어로>의 가사인 '나만의 히어로'를 줄여서 '나' 씨 성에 '히로'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는데, '여백이'의 작명 과정을 보니 내가 너무 막 갖다 붙였나 싶다. 어쨌든 간에 여백이와 나히로. 누군가의 인생엔 여백 같은 존재로, 또 다른 이의 인생엔 작은 영웅으로 남을 테지.


p.17
고양이와 함께 산다는 것, 생각보다 더 어렵고 귀찮다. 하지만 생각하지 못했던 만큼의 위안과 따뜻함을 얻는다. 돈과 노력이 드는 걸 감안하고도 키울 만큼 좋은 이유가 뭐냐고 물어본다면 글쎄, 아직은 답하지 못하겠다. 나는 아직 서툴고, 알아갈 시간이 필요하다. 그냥, 좋네요. 귀여워서요. 예쁘니까요. 그런 이유가 다일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여백이와 함께하는 동안 그 이유를 찾아보기로 했다. 여백이 있는 나의 시간은, 어떤 시간일지.

나름의 각오를 다지고 결정한 일이긴 하지만 서로에게 적응하는 기간이었던 초반엔 후회되는 날이 더 많았다. 나 하나 감당하기도 힘든 처지에 괜히 신경 쓸 일만 더 늘렸네 싶었다. 혼자 지내는 것에 익숙해져 있고, 그럼에도 혼자만의 시간이 늘 부족하다 느꼈던 내게 히로는 예상보다 더 강력한 방해꾼이었다.

컴퓨터를 할 때 키보드 위에 앉아버리거나, 휴대폰이나 책을 보고 있으면 놀아달라 냥냥거릴 땐 물론이고, 그저 누군가가 내 방에 함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신경이 쓰여 두통이 도질 지경이었다. 낯선 손님이 집을 방문하기라도 한 것처럼 식사는 만족스러우신지, 어디 적적하진 않으신지 내내 눈치를 보게 되고 혹 잠이라도 깨울까 발뒤꿈치를 들고 다니는 버릇도 쉽게 고쳐지질 않았다. (알고 있다. 이것은 나의 문제라는 것을) 게다가 새벽부터 어찌나 발가락을 깨물어대던지... 어르고 달래고 빌기까지 하다가 결국 화를 내고, 그러다 또 "미안.. 미안..."을 중얼거리게 되는 '선짜증 후사죄'의 아침 풍경은 익숙해질 줄을 몰랐다.


p.43
나는 요즘 너를 위해 무엇을 해줄까 고민하고 네가 혹시라도 아플까 걱정을 해. 밥을 먹어도 네가 생각나고, 길을 걸어도 네 표정이 떠올라. 버스에 타면 네 사진을 봐. 집에 가기 전에 네가 좋아하는 간식을 사가야지, 집에 돌아가면 너를 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야지, 그렇게 너를 생각하면 행복해져. 나는 요즘, 조금 더 많이 행복해졌어.

하지만 그런 불편함과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너는 참 귀여웠다. 그거 하나 참지 못한 내가 죄스러울 정도로 예뻤다. 배우자 얼굴이 잘나면 숨만 쉬어도 이벤트라더니 이게 바로 그것인가 싶었지만, 사실 히로의 미모보다도 내가 오롯이 책임져야하는 '내 새끼'라는 의미로 모든 게 다 용서되는 게 아닐까. 매일 나의 작은 방에서 내가 주는 밥을 먹고, 내가 오기를 기다리는, 내가 하나하나 돌봐줘야 하는 작은 존재이니까.


히로가 내 무릎에 올라와 자리를 잡을 때면 그 평화로움과 아늑함에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러다 꿈꿔본다. 만약 나중에 집을 옮기게 된다면, 그곳은 히로가 더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널찍한 공간이었으면 좋겠다고. 햇빛을 싫어하는 나이지만, 히로가 있는 곳만큼은 따스한 햇살이 쏟아지고 바깥 풍경이 잘 보이는 큰 창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상상은 자꾸자꾸 뻗어 나가 그 언젠가 히로와 내 아이가 함께 있는 장면까지 도달하게 되면 괜스레 가슴이 뭉클해져 잠든 히로를 더 꼭 안아주곤 한다.


여백이를 향한 봉현의 애정은 사진과 글에서도 그득하게 느껴지지만, 그녀만의 따듯한 그림 속 여백이는 더 사랑스러웠다.
문득 궁금해졌다. 고양이가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글은 읽지 못한다 해도 그림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여백이가 봉현의 자신을 향한 사랑을 그림을 통해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봉현이가, 그리고 여백이가 부러워졌다.

그림 솜씨도 없는 나는 히로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너무 많다.

어디 아픈 데는 없니? 불편한 건 없니?
혼자 있을 때 많이 외롭니? 친구가 필요하진 않니?
사료는 어떠니? 어떤 간식을 가장 좋아하니?
가장 기쁠 땐 언제니?
내가 너를 정말 사랑한다는 걸 알고 있니?
평생 곁에 있을 거라는 것도?
...
나를 만나서 행복하니?

꿈속에서라도 한 번쯤 시원하게 대답해주면 좋으련만.
너는 고롱고롱 잘도 자는구나.


p.150
엑스레이에 찍힌 여백이의 심장은 아주 컸다. 저 작고 마른 몸에 심장이 저만큼이나. 폐에도 물이 차 있었다. (...)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라고 묻는 나에게 의사 선생님은 별다른 이야기를 해주지 않으셨다. 그 의미를 잘 알 수 있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곁에 두라는 것이었다. 일찍 눈치를 챈 편이라 급한 위기는 넘겼지만,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오늘 잘 지내다 내일 죽을지, 한 달이 될지 1년이 될 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여백이는 심방 중격 결손증과 삼천판 역류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다. 특이 케이스라 예후도 기대 수명도 알 수 없고, 명확한 치료법도 연구도 없다고 한다. 그런 여백이의 아파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봉현의 마음이 어땠을까. 그 작고 약한 몸으로 수많은 검사를 받고 약을 삼켜내는 모습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저린데...


p.183
네가 곁에 있다는 당연한 행복을 깨닫는 순간, 무섭도록 두려워진다.

히로 역시 아팠던 날들이 있었다. 히로를 데려온 지 일주일쯤 지났을까, 히로가 이상했다. 내가 퇴근하고 돌아올 때면 늘 문 앞으로 마중을 나오고, 밥그릇 역시 싹 비어 있어야 했는데 모든 게 아침 그대로였다. 그렇게 다음날까지 뛰어놀지도, 잘 먹지도 않는 히로가 걱정되어 달려간 병원에선 좋지 않은 진단 결과를 받았다. 생각보다 심각한 병일 수도 있지만, 우선은 경과를 지켜보기로 하자며 히로를 데려오는 길에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감정들이 올라왔다. 겨우 일주일을 함께 했을 뿐인데, 그 순간엔 히로가 마치 내 전부인 것처럼 느껴졌다. 귀찮다며 괜히 데려왔다고 후회할 때는 언제고, 갑자기 히로 없이는 못 산다며 버스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내가 우스웠다. 그렇게 며칠을 눈물 콧물을 쏙 빼가며 보냈지만 정말 다행스럽게도 히로의 건강은 점점 호전되었고, 세 번째로 받은 혈액검사에선 모든 게 회복된 정상 수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라고 하시던 부모님의 말씀이 결코 거짓말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경험한 후여서일까. 아기일 때는 여백이가 마냥 귀엽기만 했는데, 지금 여백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와 눈물이 난다던 봉현의 말처럼 히로는 내게 이전과는 또 다른 의미의 사랑이 되어버린 듯했다.



다행히도 SNS를 통해 확인한 여백이는 잘 지내고 있는 듯 보인다.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여백이가 하루빨리 건강해지길 바란다. 만약 그게 내 욕심이라면 여백이가 살아있는 동안 봉현과 함께하는 나날들이 모두 행복하고 편안하기를. 그리고 너무도 많은사람들이 너를 예뻐하고 응원하는지 여백이가 모두 느낄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



저자 : 봉현이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2년 동안 홀로 세계를 여행한 이야기를 담은『 나는 아주, 예쁘게 웃었다』를 쓰고 그렸다. 사람들에게 그림 그리는 즐거움을 알려주는 드로잉 수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보통의 일상은‘ 봉현의 일기그림’을 통해 남기고 있다. 서울에서‘ 여백’이라는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다.


글, 사진: 땡스북스 최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