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4일 ~ 11월 10일
땡스북스 금주의 책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
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김남희 지음

당장 내일도, 오늘도 모르고 한 치 앞의 일을 해치우기 급급한 내게 계획이 딱 하나 있다.
몇 년 뒤 다가올 서른을 반가이 맞는 의식을 치를 것. 바로 장기간 배낭여행이다.
너무 소소해 보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매우 큰 다짐과 같고, 이를 행하기 위한 계획도 (나로서는) 꽤 구체적이다. 먼저 2018년 가을, 내가 어디에 있던 모든 걸 정리한다. 다음으로 함께 하기로 했던 친구들과의 스케쥴을 다시 의논한다. 셋째로 무조건 배낭 하나 들고 떠난다. 마지막으로 남쪽 모든 나라를 6개월간 훑으며 서른을 맞이하고 봄에 돌아온다.
이 계획을 세우게 된 배경에는 학생 때 경험한 배낭여행의 기억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 기억은 짙은 추억이 되었고, 시간을 거듭할수록 '그런' 여행을 하기란 어려워질 것 같은 생각과 함께 갈증이 심해졌다. 함께 여행했던 사람들 모두 같은 생각이었고, 다 같이 휴학계를 내던 그 단결력으로 30대를 낯선 곳에서 함께 맞이해보자며 입을 모았다. 결혼 생각이 있다면 다녀와서 하라고 서로 푸쉬하면서 신이나 계획을 세웠다.

이런 여행의 목적지가 왜 남쪽 나라냐 묻는다면, 대답은 단순하다. 물가가 저렴해 장기 여행이 부담스럽지 않고 가까우며, 춥지 않아 짐도 간편해서다. 게다가 계획 없이 다녀도 좋고 편히 지낼 수 있어 보였다. 이런 나에게 이 책의 제목은 눈을 끌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첫 문장이 다음과 같았으니 읽지 않고서야 배기겠는가.

4p
삼십 대에 사표를 쓰고 세계일주를 떠난 건 내가 세상에 태어나 내린 결정 중에 가장 잘한 선택이었다. 혼자 20킬로그램이 넘는 배낭을 메고 사나흘에 한 번씩 잠자리를 바꿔야 하는 유목민의 삶. 그 이상 내게 어울리는 삶은 없었다.
...
가끔이라도 짐을 가볍게 해서, 한곳에 오래 머물며, 몸에 무리가 덜 가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저자 김난희는 이십 대에 여행을 시작해서 삼십 대에 일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여행작가가 되었다. 그녀가 200일간 추운 겨울을 피해 남쪽 나라에 가서 보낸 날들의 기록을 담은 책이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이다.
이 책에 소개된 장소들은 모두 내 비행기 표 조희 리스트에 있는 나라였다. 하나하나 다 이유가 있었다. 발리는 단순히 휴양 및 서핑이 궁금해서이고 라오스는 루앙프라방과 블루 라군 때문에, 치앙마이는 작년부터 너무 가고 싶다 노래 부르던 곳이었고 스리랑카는 인도 여행하면서 만났던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머리에 박혀 잊혀지지 않아서였다.

저자처럼 여행을 하는 분이었는데 스리랑카는 슬펐다고 한다. 너무 멋진 자연을 가진 곳이지만, 그곳의 친절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어린나이에 나와 일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유독 느꼈다고 한다. 어느 남쪽 나라를 가던 흔히 보는 광경이지만, 혼자 그 마음을 즐기며 여행하다가 많은 한국인 관광객을 마주치면서 극명하게 대비되는 모습을 보고 더 마음 아팠다하여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이 책에서도 힘들지만 마음이 풍요로운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전반적으로 소개되어있다. 그중 친절을 베푼 사람이 한국에서 일하고 싶다며 저자에게 부탁하는 대목에서 그 이야기가 생각났고, 주변 친구에게 그런 연락을 했던 인도인도 떠올랐다. 모두 절박한 상황에서 그런 것이겠지.
안타깝지만 내 앞가림도 못 하는 나라에서 그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겠는가. 이렇게 타지 사람들이 일상을 잊고 휴식을 위해 '슬로우 라이프'를 하겠다며 이런 남쪽 나라에 몰리고..이런 상황이 계속 반복되면 풍요로웠던 그들의 마음도 점차 관광지의 인도인처럼 변해버릴까 걱정된다. 이미 분위기가 많이 변한 곳도 많다고 들었는데 다음 책 내용이 이를 파고드는 것 같다.

p167
"당신이 어제 오늘 보여준 게 내가 찾아와 망치기 전의 삶 그대로가 맞습니까?"



더불어 이 책을 읽으며 스리랑카에 관해 이야기해줬던 분에게 보여주고 싶은 구절도 있었다.
나도 개인적으로 마음에 담고 다녀야겠다고 생각한 내용이다. 타인의 삶을 쉽게 연민해서는 안 된다.

p154
낯선 나라를 여행하다 우리는 종종 이해할 수 없는 장면과 마주친다. 내가 살아온 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 내 상식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런 순간에 단정적으로 평가하고 불평하는 것은 쉽지만 왜, 어째서라는 질문을 던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 어려움을 감수해야 지금 여기에서 유럽에는 없고 스리랑카에만 있는 것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좋은 여행자의 기본은 질문하는 능력과 겸허한 태도라는 사실도.

p226
세월을 이기는 것이 없다는 진리를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단지 버티어왔다는 이유로 사랑받는다. 삶도 그런 것인지 모른다. 단지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한 존재는 이미 가장 큰 것을 이룬 셈이다. 그것만으로 우리 모두는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

p180
나도 할머니처럼 살다 가고 싶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내 몫의 천국 하나를 만들고 싶다. 저마다 쌓아 올린 그 하나하나의 천국이 합쳐지면 세상이 조금은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오늘 할머니의 작은 집이 나에게 말한다. 우리는 아름답지 못한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지만 아름다운 사람으로 남을 수는 있다고.



작년부터 내가 가고싶다고 노래 부르던 여행지인 치앙마이를 시작하는 글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었다.
"자신의 젊음의 고장으로 돌아가서 자신이 스무 살 적에 사랑했거나 강렬하게 즐겼던 것을 마흔 살에 다시 살아보겠다고 하는 것은 커다란 광기, 거의 언제나 벌을 받게 마련인 광기다." 카뮈는 그의 아름다운 산문 <여름>에서 이렇게 썼다.

아직 이십 대를 벗어나지도 않았지만 벌써 돌아가고 싶다 하는 내가 들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추억하는 그때의 '나'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란 걸 알고 있지만 말이다. 이것도 광기일까? 내 생각엔 미련과 희망이 섞인 바람인 것 같다. 주변 모든 것들이 혼란한 요즘, 자신을 보듬는 것조차 힘들어 좋은 기억만 남은 과거에 대한 미련과 다음에 이를 다시 누리겠다는 다짐이 섞인 바람이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하루하루 다시 내 앞가림을 해가는 것 같다. 나중에 카뮈의 말처럼 벌을 받게 되더라도, 말랑말랑한 기억과 나태한 공기가 흘렀던 그 시간을 다시 즐기고 싶다. 그 순간을 더 좋고 번듯한 마음으로 맞이하기 위해 '여행자'인 내 모습과 '현실'에서의 나를 잘 단련해야겠다고 하나 더 다짐하며 글을 마치고 이 책을 다시 곱씹어 봐야겠다.




저자: 김남희
여행작가. 대학 졸업 후 2달간 혼자 유럽 여행을 떠난 게 시작이었을까. 직장인 신분에 1달 휴가를 받아 한 나라씩 돌던 게 시작이었을까. 삼십 대에 사표를 쓰고 집 전세보증금과 적금을 털어 배낭을 메고 도보여행을 떠난 이후로 도보 여행가, 여행에세이 작가의 길을 걸어오고 있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 외로운 이들과 만나던 그녀는, 이제 단 한 사람과 옥상 텃밭을 가꾸며 ‘책 읽고 글쓰는’ 심심한 날들을 꿈꾼다. 가난해도 아낌없이 제 것을 나눠주던 길 위의 사람들처럼 그녀도 빈약할지언정 수입의 일부는 여행하는 나라의 아이들을 위해 쓰고 있다.

저서로는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 《유럽의 걷고 싶은 길》, 《일본의 걷고 싶은 길》, 《외로움이 외로움에게》, 《삶의 속도, 행복의 방향》, 《라틴아메리카 춤추듯 걷다》 등이 있다.

글, 사진: 땡스북스 김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