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14일 ~ 2017년 4월 20일
땡스북스 금주의 책

산책자
한겨레출판
로베르트 발저 저, 배수아 역




P.379-380
번역 작업은 나에게 가장 우선적으로 독서이기에, 나는 내가 번역하는 책의 번역가이면서 동시에 (외국어로 읽는, 따라서 약간 서툴고 그만큼 더 진지한) 독자라는 위치를 벗어날 수가 없다. (…) 이것은 내가 연구 번역자, 언어학 번역자, 텍스트와 거리를 유지하여 자기 컨트롤이 능숙한 번역자가 아님을 고백하는 서두이다. 또한 아무도 그 규칙을 파악하지 못하는 발저(Walser)의 스텝을 한 박자 한 박자 따라가는 이 번역이 믿기 힘들만큼 기묘했다고, 광적일 만큼 현란하게 아이러니하고, 달빛 비치는 차가운 밤이면 내면의 황야를 홀로 가로지르는 고독한 왈츠(Walzer)였다고 환희로 고백하는 서두이다.

책이 잘 읽히지 않으면 뒤에 붙은 글을 본다. 해설, 비평, 추천사, 뭐든 좋다. 그 글에서 사랑을 느낄 수만 있다면 나는 다시 읽을 수 있다.
《산책자》는 잘 읽히지 않았다. 나는 뒤에 붙은 글을 봤고, 다시 읽을 수 있었다. 그 답례로 사랑을 느낀 글을 소개하며 이 글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후의 글도 사랑을 느낀 글, 배수아의 「to be small and to stay small」을 소개하려 한다. 말하자면 《산책자》 소개를 가장한 배수아의 사랑 소개.

텍스트와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는 번역가임을 털어 놓은 배수아가 규칙을 파악하기 힘든 발저의 스텝을 따라가는 일이 기묘했다며 환희로 고백하는 문장을 보고, 나는 그녀가 발저의 글을 사랑한다고 느꼈다. 번역가지만 독자의 지위를 고수하는 사람이 환희에 차서 하는 말. 이 말만으로는 사랑을 느낄 수 없다면 이건 어떤가?

P.383
이런 것은 한 번도 읽은 적이 없어.
나는 매혹되었다. 나는 펄쩍 뛰어오를 만큼 매혹되었다.

그대로 사랑의 문장이다.
배수아는 발저의 글을 왜 사랑하는 걸까? 그녀도 말했듯 발저의 글은 규칙이 보이지 않는다. 비교적 긴 「산책」에서 잘 드러나지만 짧은 글들에서도 그 점은 드러난다. 발저는 어떤 이야기를 시작해 놓고 불과 몇 문장 만에 다른 이야기로 ‘그냥’ 넘어간다. 예고랄 게 없어서 한참 읽다가 이상해 되돌아가 다시 읽으면 그제야 문장과 문장 사이의 단절을 알아채게 된다. 발저의 글은 마침표, 혹은 쉼표 하나로 화제가 전환된다.
발저는 생각도 갑자기 뒤집는다. 무언가를 한참 비난하다 마침표, 쉼표를 기점으로 호감을 표하기도 한다. 두 사람, 어쩌면 많은 사람의 생각과 반응을 발저는 몇 문장, 적은 문단 안에 담는다. 그만큼 글은 사방으로 튀어 읽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더 읽지 못했는데,


P.383
그것은 마치, 무대에서 관객에게 즉석에서 말을 걸면서, 그 말을 글로 쓰고 있는, 그러므로 작가 자신도 다음 문장의 모퉁이를 돌면 무엇이 나타날지 미리 계산하고 있지 않다는, 우아하고 유쾌한 자포자기의 즉흥 댄스와도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마지막까지 성공한다.

그래서 배수아는 발저의 글을 사랑한다.

발저는 평생을 매우 가난하고 외롭게 살았다고 한다. 스위스 방언, 정규 교육을 마치지 못한 점, 장난이 심하고 남들이 당황스러워할 만한 언행 등 때문에 그는 베를린 문학계에서 멀어지다 점차 홀로 남은 듯하다. 발저의 문장에 가난과 고립이, 나아가 죽음이 묻어나는 건 그래서일까. 그럼에도 발저의 글은 문장이 문장을 배신하기에 가난, 고립, 죽음을 배신하고 기쁨, 충만, 희망도 넘실댄다. 물론 그것들도 다시 배신 당하지만.
배신을 거듭하며 나아가는 문장들. 어쨌든 살아가는(살아지는) 시간들. 그 끝에 배수아가 제목으로 뽑은 “to be small and to stay small"이 있었던 것 아닐까.

P.394-395
그의 사후 발견된 500여 장의 종이에는, 크기가 최대 3밀리 정도인, 해독 불가능할 만큼 깨알처럼 작은 글씨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 사람들은 비밀암호로 기록한 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일기가 아니었고, 암호도 아니었다. 그의 최후의 작품에 해당하는 그 미세 필체의 원고 《마이크로그램》 중에는 그의 마지막 소설인 《도둑》도 포함된다. 그것은 평생 동안 자기 자신과 자신의 글을 최대한 작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의 - to be small and to stay small(《야콥 폰 군텐》 중에서) - 상징적인 흔적이었다.

“최대한 작게 만들기 위한 노력”을 발저의 삶과 엮고 그의 문장과 엮은 뒤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만, 그것은 타당한가?
나보다 발저를 배는 사랑할 배수아는 글 어디에서도 발저 글의 의미나 효용을 따지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독자로서 느낀, 자신도 잘 설명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고백했을 뿐이다. 그녀를 따라 나도 《산책자》를 《산책자》로 남기고 내가 느낀 아름다움만을 고백해 본다.


P.349
나는 하나의 내면이 되었으며, 그렇게 내면을 산책했다. 모든 외부는 꿈이 되었고 지금까지 내가 이해했던 것들은 모두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바뀌었다. 나는 표면에서 떨어져나와 지금 이 순간 내가 선함으로 인식하는 환상의 심연으로 추락했다. 우리가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 우리를 이해하고 사랑한다.

사랑을 따라가다 보면 사랑에 가 있기 마련이다.


저자: 로베르트 발저
독일어권의 한 세기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스위스의 국민작가이다. 1878년 4월 15일 스위스 베른 주 비엘에서 태어났다. 가난 탓에 14세에 중학교를 중퇴하고 오랫동안 하인, 사무보조, 사서, 은행사무원, 공장노동자 등의 직업을 전전했다. 틈틈이 글을 써서 신문과 잡지에 발표했고, 1904년 첫 책 《프리츠 코헤르의 작문》을 출간한다. 이후 작가로서 어느 정도 성취를 얻었지만 지성인 사회에 쉽게 어울리지 못하고 독일과 스위스를 오갔다. 1차 세계대전 발발 후 처지는 더욱 궁핍해져 끊임없이 이사를 다니다 자살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결국 1929년 스스로 베른의 발다우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1933년 절필을 선언하고 걷기와 도보여행, 종이봉투 붙이기 외에는 활동을 하지 않았다. 발저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모티프이자 실제 삶에서도 큰 부분을 차지한 것이 바로 ‘쓰기’와 ‘걷기’다. 산책길에서 발견한 하찮고 작은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내던 작가 발저는, 1956년 크리스마스 아침 산책을 나간 길에서 홀로 눈밭에 쓰러져 죽은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대표작으로 <산책>, 《벤야멘타 하인학교-야콥 폰 군텐 이야기》 등이 있다.

역자: 배수아
소설가이자 번역가이다. 지은 책으로 《밀레나, 밀레나, 황홀한》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바람 인형》 《철수》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에세이스트의 책상》 《올빼미의 없음》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서》, 프란츠 카프카의 《꿈》, W. G. 제발트의 《현기증. 감정들》 《자연을 따라. 기초시》, 막스 피카르트의 《인간과 말》, 사데크 헤다야트의 《눈먼 부엉이》, 마르틴 발저의 《불안의 꽃》,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비트겐슈타인의 조카》 등이 있다.

글, 사진: 땡스북스 이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