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24일 ~ 7월 31일
땡스북스 금주의 책

창을 순례하다
푸른숲
도쿄공업대 쓰카모토 요시하루 연구실 저
이정환 역
이경훈 감수

"순례하다"라는 말이 주는 힘
"순례하다"는 종교의 발생지, 본산(本山)의 소재지, 성인의 무덤이나 거주지와 같이 종교적인 의미가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방문하여 참배하다란 뜻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말은 '성지'라는 단어와 세트로 생각되어 앞의 대상을 좀 더 진중하고 가치 있는 존재로 만드는 힘이 있다. 여기서 '성지' 대신에 '창'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으니 낯설면서도 이 책이 '창'을 어떻게 바라보며 이야기할 것인지가 보이는 듯했다.


저평가된 창문의 재발견을 위한 답사
산업 혁명 이후, 대량 생산 체제가 가속화 되면서 생산성을 높히고 효율 외의 것들을 철저히 배제하는 논리가 퍼졌다. 그 중 건축요소에서 '창문'이 가장 제품화가 이뤄졌다. '창문'이 제품화가 되면서 희생된 요소는 무엇일까. 책에서 '창'은 밖의 소통을 도모하는 역할을 하는 데, 제품화로 인해 단순한 부품으로 전락하게 되면서 이 성격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더 닫히고 고루한 요소가 되어버린 것이다. 건물을 볼 때 '창'의 역할은 상당하다. 어떤 재료로 건물이 이루어지고 분위기를 내며 주변 환경과 어떻게 이루어지냐를 평가하는 데에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그 건물의 인상을 결정한다고 해야할까. 예쁘게 잘 만들어진 옷에서 작은 단추 하나를 잘 못 달아 그 가치와 인상을 확 깎아버릴 수 있듯이 말이다.
저자 쓰카모토 요시하루는 '근대 건축에서 낮게 평가되어온 창의 가치를 재발견' 하기 위해 답사를 기획했고 '창이란 그곳에 모인 다양한 행동이 미치는 범위'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제품'의 관점에서 '행동'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보며 이야기하며 그동안 간과했던 창문의 본질과 역할을 환기시켜주려 하고 있다.

p.28
창은 기후와 풍토, 사회적 종교적 규범, 건물의 용도 등 그 장소가 요구하는 조건에 대해 매우 실천적으로 응답하는 동시에, 그곳에 한데 어울려 있는 다양한 요소의 섭리에 의해 형성된 새로운 세계와 만날 수 있는 상상력을 부여한다. 우리는 그 상상력 안에서 자신의 경계를 초월해 세계와 일체화되는 듯한 시적인 체험을 할 수 있다.

p.107
현대에는 에어컨 시스템 덕분에 실내를 쾌적한 상태로 기온을 유지할 수 있게 된 반면 외부의 변화를 느낄 수 없는 밀폐된 공간으로 만들어버린다. 하지만 유리가 없는 창은 건물 안팎의 중간 영역이 되어 베란다나 로지아, 복도 등을 외부와 소통시켜준다. 그늘이 만든 시원한 장소는 안과 밖 경계 지점에서 휴식처가 되고, 이런 장소들이 거리에 반복적으로 배열되면 일상의 활동이 거리까지 넘쳐 오가는 사람들의 존재도 대범하게 수용할 수 있는 너그러움을 낳는다.



행동의 관점
저자는 앞서 말한 '행동의 관점에서 창을 자연 섭리의 영향을 받는 창은 <빛과 바람>, 창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사람들과 함께 삶을 이루는 창은 <사람과 함께>, 하나의 범주에서 모으기에는 불가능하지만 다양한 리듬을 만드는 창들은 <교향시>라는 장으로 분류했다. 하위 제목들도 '빛이 모이는 창', '조각하는 창', '일하는 창', '중첩하는 창' 등 비전공자도 쉽게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건축용어를 최소화하고 이해하기 쉬운 분류를 했다. 창을 잘 표현한 사진과 도면 스케치도 있어 전문용어나 구구절절한 표현 없이도 읽는 이로 하여금 창의 공간을 머리로 그리도록 도와준다. 이러한 전체적인 책의 구성이 각 창을 공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끔 단계가 잘 되어있다고 느껴졌다. 전문가적인 측면에서는 많이 아쉬울 수도 있을 것 같으나 나와 같은 독자에게는 읽는 것보다 더 많은 경험을 가질 수 있게 설계된 인상이다.



<조각하는 창> 인도 자이살메르


<바람 속의 창> 인도 자이뿌르의 화와마할 궁전 동쪽

내가 경험했던 창
의 페이지는 책을 읽으면서 반가운 페이지였다. 3년 전, 인도를 여행했을 때 갔던 자이살메르와 자이뿌르의 창이었다. 인도를 여행하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이 땅이 넓은 만큼 다양한 기후와 문화를 기반으로 다양한 형태의 건축물을 한 나라가 가졌다는 점이었다. (물론 같은 범주에서 종류가 많다는 느낌이었다.) 그 중 환경과 건축물 때문에 인상 깊었던 자이살메르의 궁전이 많이 소개되어 반가웠다. 어마어마한 더위를 자랑한다는 것을 알고 갔던 인도였지만 내심 남부에서 중부로 올라오면서 나아질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날씨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었고, 특히 자이살메르는 사막 지역이어서 내리쬐는 태양은 남부 못지않았으며 날리는 먼지와 더위에 쓰러질 지경이었었다. 황량한 사막과 더불어 모든 건물들도 모두 모래 색인 사막 도시는 너무나 답답했다. 소 한 마리 겨우 지나갈 만한 골목을 기준으로 빽빽하게 모래색 건물들이 채워져 있었다. 눈을 어디에 둬도 같은 색상이고 도시 외곽이나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야 시야가 트였다. 그렇지만 여전히 황량하기 그지없는 풍경이었고 내리쬐는 태양에 숨이 막혔었다. 이 좁고 빽빽한 도시는 위의 사진과 같은 어마어마한 조각으로 이루어진 창과 외벽의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바람도 통하지 않을 것 같은 이 압도적인 건물들은 외부에서 안을 보기 힘들었지만, 내부에서는 창이 비스듬한 경사를 가지고 있어 밖을 살펴볼 수 있었고 살인적인 햇빛은 적정하게 차단되면서 바람길은 뚫려 있어 외부에서 보는 것만큼 숨 막히지 않았다. 외부의 숨 막히는 광경과 대조되게 내부는 오히려 확장된 공간이란 느낌을 받을 수 있었고 더위에서 보호받는 느낌을 받아 인상적이었다.



또한 <사람과 함께>의 '일하는 창'에서는 우리가 쉽게 만나던 공간이 소개되어 있었다. 거리에서 자주 마주치는 분식점의 창이었다. 비단 분식점만이 아니라 길거리의 가게들이 종종 이런식으로 있는 것을 본 적 있을 것이다. 쇼윈도 겸 조리공간인 이 공간을 아름답다거나 특별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일하는 창'으로 소개되어 마주했을 때는 이 공간이 가진 '이야기'를 순간적으로 읽게 되었다. 이렇게 사람이 사는 환경과 창이라는 공간이 얼마나 밀접하고 이야기가 많은지 단편적으로 말해주는 페이지가 아닐까 싶다. 다른 많은 외국의 창들도 그 나라에서 살고 밀접하게 지내는 사람이 보는 느낌도 이러할까. 오래 옆에 살던 이웃의 새로운 내면을 보는 것 같았다. 단조로운 일상에서 종종 새로운 점을 찾고 싶고 깨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하지만 일상적인 공간을 새롭게 보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이 책은 위와 같은 사람들에게 '창문'이라는 관점을 제시하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p.357
나아가 이 책은 창이 건물의 얼굴이며 표정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흔히 건물에 대해 차가워 보인다거나 따뜻해 보인다, 답답하다 혹은 얌전하다고 표현하는 것은 대부분 창의 처리 때문이다. 창은 건물의 인상을 만들고 거리와 도시의 느낌을 결정한다. 각 지역의 기후와 풍토부터 사람들의 성향과 관습, 사회적 규율까지 이해할 수 있는 언어 이전의 단서인 것이다.





저자: 도쿄공업대 쓰카모토 요시하루 연구실 : 쓰카모토 요시하루, 곤노 치에, 노사쿠 후미노리
현재 아틀리에 바우와우의 공동소장을 역임하고 있는 쓰카모토 요시하루塚本由晴는 1965년 일본 가나가와 현에서 태어나 도쿄공업대 공학부 건축학과를 졸업했다. 1987년에서 1988년까지 파리벨빌건축학교에서 수학했고 1994년 도쿄공업대에서 공학박사를 취득 후, 2000년부터 동대학에서 준교수, 2015년부터 교수로 재임하고 있다. 2003년과 2007년 하버드대 객원교수, 2007년에서 2008년까지 UCLA 객원 준교수를 맡았다. 《펫 아키텍쳐 가이드북Pet Architecture Guide Book》, 《메이드 인 도쿄Made in Tokyo》 등 도시 리서치북의 저자로 해외에 널리 알려져 있으며, 개인 주택을 중심으로 한 건축 작품과 일본 국내외 설치 예술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건축가이다. 곤노 치에金野千惠는 1981년 가나가와 현 출신으로 2005년 도쿄공업대를 졸업했다. 2005년부터 2006년까지 취리히연방공대에서 수학, 2011년 도쿄공업대에서 공학박사를 취득했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콘노KONNO의 대표로 설계 활동을 시작했고 2015년 일급건축사 사무소TECO를 설립했다. 2013년부터 일본 공업대 조교로 재임 중이다. 작품으로는 〈코요우 로지아 하우스〉, 〈요시카와 케어〉, 〈바다 산책〉이 있다.
노사쿠 후미노리能作文德는 1982년 도야마 현 출신으로 2005년 도쿄공업대를 졸업한 뒤, 2010년부터 노사쿠 후미노리 건축사무소를 설립해 건축가로 활동하고 있다. 2012년 도쿄공업대에서 공학박사를 취득하고 현재 동대학원 조교로 재임 중이다. 작품으로는 〈홀hall이 있는 집〉, 〈스틸 하우스〉, 〈다카오카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도쿄공업대 연구실에서는 건축 설계, 학술 논문, 도시 리서치 등 다방면에서 폭넓은 연구를 하고 있으며, 《창을 순례하다》는 학생들과 함께 세계 28개국을 다니며 조사하고 얻은 성과를 정리한 결과물이다.


역자: 이정환
경기도 청평 출생으로, 경희대학교 경영학과와 인터컬트 일본어학교를 졸업하였다. (주)리아트 통역과장을 거쳐 동양철학 및 종교학 연구가, 일본어 번역가, 작가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수많은 책을 번역했는데, 디자인서로는 하라 켄야의 『백』, 『디자이너 생각 위를 걷다』『도쿄대학 학생들은 바보가 되었는가』 『준비된 행운』등이 있으며, 소설로는 『공포, 공포, 공포』, 『위대하고 멋진 개 이야기』, 『단서』, 『충신장』, 『스푸트니크의 연인』, 『플래티나 데이터』가 있고, 경제경영서로는『손정의, 21세기 경영전략』『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인간경영』, 『오다 노부나가의 카리스마 경영』, 『파뤄 로지컬 싱킹』 등이 있다. 저서로는 『개운술』,『침묵의 승부사 1,2,3』, 『관상』, 『사주』, 『우리 아기 이름 짓기』,『얼굴을 보고 사람을 아는 법』등이 있다. 역학 칼럼니스트로도 활동 중이다.


감수: 이경훈
1963년 경기도 백령도의 섬마을에서 태어났다. 스물넷에 뉴욕으로 건너가 Pratt Institute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졸업 후, 미국과 한국에서 건축사자격증을 취득하고 미국건축가협회(AIA) 정회원이 되었다. 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신탄진 고속도로 휴게소, 헤이리 랜드마크하우스 등의 건축 작업을 하는 틈틈이 Pratt Institute와 국민대, 경희대, 홍익대 등에서 강의를 했다. 2003년부터 국민대학교 건축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 외에도 여러 하위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건축 작업과 글쓰기를 해왔으며 『세컨드 모더니티의 건축』『통섭지도: 한국건축을 위한 아홉 개의 탐침』등의 책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글, 사진: 땡스북스 김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