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29일 ~ 9월 11일
땡스북스 금주의 책

경관, 공간에 남은 삶의 흔적

정기호

전통을 바라보는 눈
우리 전통 건축의 아름다움을 말할 때 주변 자연 경관과 잘 어우러지고 소담스럽다고 한다. 그리고 전통 마을에도 아름다움이 있다고 하지만 일반인의 시점에서는 그저 "시골 농촌 마을"로 보인다. 그저 그렇게 전통 건축물을 보다가 문득 왜 그런 시선으로 보는지, 어떻게 어우러지기에 아름답다고 하는지 궁금해진다면 그때 가볍게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


P.9
나와 교수님의 개인적인 관계를 넘어 우리 전통 건축과 전통문화를 바라보는 외국인의 객관적 시선입니다. 1980년대 우리의 일상과 조선시대부터 있어 온 우리의 전통 경관에 현재의 우리 모습을 겹쳐 보며 그간 우리가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변화의 시간 속 삶의 흔적
외국인 교수님을 모시고 다니던 길을 28년이 흐른 후의 현재 모습과 나란히 함께 볼 수 있도록 되어있다. 서울이, 한국이 얼마나 빠르고 많은 변화를 겪은지는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이렇게 사진을 통해 보니 새삼 변화를 느낀다. 하지만 제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는 모습들이 그 속에 있다. 많은 것들이 바뀌어도 그대로 그 자리에 있는 것을 보았을 때의 느낌이란 낯설면서도 반가움이 들었다. 시간 속에서 옛 흔적이 남아 있는 것. 그것을 찾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P.34
양팔을 벌린 듯 크게 둘러 흐르는 능선 아래로 서울 사대문 안이 소담하게 들어 서 있다. 길게 파노라마를 이룬 장관을 앞에 두고 왼쪽으로 비스듬히 바라볼 수 있는 뾰족한 모습의 북악산 아래가 경복궁과 광화문인데, 조선의 정궁과 그 정문이다. … 남대문에서 크게 휘어지는 선형으로 보신각까지 이어지는 대로가 종로와 만나면서 모양으로 사대문안의 대로를 이루었다. 세종로는 남쪽으로 다시 서울시청과 남대문 방향으로 이어지는데 오늘날의 태평로다.

P.61
경복궁 일곽을 담은 사진들을 한 자리에 펼쳐 놓고 보니 각 사진에서 산과 건축이 이루는 경관, 즉 외부공간에 비쳐오는 자연과 인공의 조합으로 일구어 놓은 극명한 대비가 보인다. 향원정의 작은 몸체는 북악의 좌우 능선을 어느 시점에서도 막아서지 않겠다는 듯이 다소곳하고, 비우고 들어올린 경회루 하부로 투명한 내부공간을 뚫고 멀리 인왕산 능선이 투시되어 스며들고 있다. 근정문이 막혀 있던 시절, 근정전을 가장 잘 보여 준다 하여 인기가 있었던 포토 존이나, 사정문을 들어서면서 천추전 쪽으로 비스듬히 비껴가는 시선으로 와 닿은 장면은 근정전과 북악 능선이 만들어 주던, 건축과 자연이 주고받던 교감의 선율에 시선이 맞춰진 것이 분명하다. 건축물이 아니라 건축물 외부의 자연에 의해 실존되고 있는 한국 건축의 특성에 주목하신 게 분명했다.
어쩌면 그 모든 것들은 감상자의 눈에 비친 자의적 해석일 수 도 있다. 사진을 읽으면서 사진을 촬영한 교수님의 생각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건축을 주변 환경과의 관계로 읽어 내는 것은 건축을 감상하는 중요한 방법이지 않은가.


전통 마을
서울 시내와 경주 등 "전통 건축"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궁이나 안압지 등을 거쳐 답사는 조선시대 전통 마을의 흔적을 따라간다. 조선 전기 마을인 양동과 하회, 후기 모습인 매곡 마을이 소개된다. 솔직히 시골 마을의 아름다움은 그저 느리게 흐르는 삶과 낮은 집들로 인한 트인 하늘 등 도시와 대조적인 자연 모습을 말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런 점도 맞지만 마을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더 넓게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흔한 농촌 마을과 다른 모습을 가진 특이한 형태의 양동과 유명한 전통 마을 하회, 그리고 산수정이 맞이해 주는 매곡 마을을 좀 더 심층적으로 바라보게 도와준다. 세월이 많이 흘러 현재와 과거가 녹아든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며 어떻게 이 마을이 주변과 어우러져 멋진 경관을 선사하는지 볼 수 있다.

P.159
관가정 앞의 은행나무 두 그루와 그 아래 슬레이트 지붕을 인 작은 가옥이 있었던 곳은 초가집으로, 몇 그루 미루나무가 나란히 서 있었던 곳에는 좋은 수형의 소나무가 세련된 모습으로 들어서 있다. 소나무의 세련된 식재, 과연 소나무 낙락장송을 식재한 게 전통인지는 판단이 서지 않지만 아무튼 전통적 모습으로 되돌아가고자 한 이런 일은 장차 양동의 마을 경관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고심으로 이어지게 했다.

P.171
걸어서 다니면 서울시내에도 그런 곳은 얼마든지 있다. 워낙 지하철로 다니거나 차를 몰고 다니고, 과밀한 차량 교통에 우리의 시각적 감각이 무뎌져서 그렇지만 안국동에서 경복궁 쪽으로 바라보면 눈앞에 생각보다 훨씬 높은 고갯길이 펼쳐진다. 삼청동, 화동의 정독도서관 그 언저리에서 길게 남쪽으로 흘러내리던 산줄기가 이루는 고갯길이다. 멀리 경복궁 동남 모서리의 동십자각이 지붕만 보이다가, 서서히 걸어와 고갯길 정상에 서면 눈 아래로 동십자각과 광화문 그리고 경복궁 일대가 펼쳐지고 있는걸 확인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이 모두 첫 대면이 이루어지는 장소와 경관 이미지가 어우러지는 곳이다.



위의 사진은 저자가 교수님 사진에서 찾아낸 최고의 장소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처음 사진을 봤을 땐 "최고"라는 수식어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사진 속 산수정의 위치와 의미, 매곡 마을의 배경을 알고 난 후에 왜 최고의 드라마틱한 조경이라는 말을 하였는지 가슴 깊이 이해했다. 이토록 전통 마을을 그저 '시골 마을'로 보지 않게 되는 경험은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큰 인상을 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왜"라는 이유를 알게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새삼 깨닫게 도와준다.

P.187
예전에 누군가가 허공을 배경으로 한 기념사진을 가지고는 파리 에펠탑에서 찍은 기념사진이라고 우기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장소'를 이룬 곳의 사진, '장소'는 정자나 여타의 특정한 시점장일 경우가 많은데, 대개의 경우 거기서 조망되는 전경을 사진으로 담아 온다. 그리고는 그 장소에 대해 이야기한다. 장소를 사진으로 설명하는 경우는 대개가 강의실이나 강연장에서 일이다. 해당 장소를 가 보지 않아 잘 모르는 사람들을 상대로 장소의 그림 없이 거기서 조망되는 대상만 가지고 이야기하는 꼴이 된다. 정작 중요한 것은 장소인데.

P.189
교수님이 원하신 그림은 그 장소, 산수정의 모습이었다. 산수정 뒷산에서 담은 한 장의 전경사진에는 멀리 매화에 날아드는 학의 그림을 바라보는 산수정을 모두 담아 놓을 수 있었다. 장소를 이야기하되 장소마저 포함한 조망 경관을 담은 사진, 매곡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이미지이자 매산이 그렸던 이상화된 경관의 그림도 그런 것이었을 것 같다.


이 책을 읽은 후 주변 경관의 아름다움을 보는 시야가 확장되었다. 단어의 뜻을 사전적인 의미로 알고 있을 때와 체감하여 깨달음을 얻어 몸으로 알게 되는 느낌을 책을 읽는 짧은 시간에서 느꼈다. 우리 건축물과 경관을 보는 시야를 넓히고 싶다면 이 책으로 전혀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저자 : 정기호
성균관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학부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조경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후, 독일 하노버대학교 건축과에서 우리 전통마을의 경관을 인문학적 관점으로 해석한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서 본 ‘집과 마을과 경관’》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독일, 여행의 시작》(사람의 무늬, 2013)이 있으며, 공동 저서로 《유럽 정원을 거닐다》(글항아리, 2013), 《한국정원답사수첩》(동녘, 2008), 《퇴계: 고인도 날 못보고 나도 고인 못뵈》(태림문화사, 2002)《소쇄원, 긴 담에 걸린 노래》(태림문화사, 1998) 등이 있다.
이 책은 유학시절이던 1986년, 지도 교수였던 란트체텔 교수님과 우리나라 답사를 다니면서 나눈 이야기를 바탕으로 교수님께서 찍으신 사진에 덧붙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글, 사진: 땡스북스 김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