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27일 ~ 12월 3일
땡스북스 금주의 책

바람이 되고 싶었던 아이
열린책들
로렌차 젠틸레 지음
천지은 옮김


나는 미신을 믿지 않는다. 다만 내가 모르는 것에는 도전하지 않을 뿐이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따뜻한 아이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인 줄 알았건만. 제목 밑에 쓰여있는 문구가 궁금증을 일으킨다. 테오의 13일. 테오에게 13일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초록색 토사물 모양으로 달라붙는 고무 찐득이를 선물로 받고 싶은 테오는 축구공이나 줄무늬 양말처럼 따분한 것들만 늘 선물로 받았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네모난 상자 안에 들어있는 선물은 "나폴레옹의 모험"이라는 만화책이었다. 영웅과 역사를 좋아하는 테오는 선물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모든 전투에서 승리한 사람’이라고 쓰여있는 문구를 본 테오는 결심한다. 나폴레옹을 만나 전투에 승리하는 법을 물어보겠다고. 테오가 바라는 것은 항상 싸우기만 하는 부모님들을 구해 행복한 가족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테오의 첫 번째 전투고, 테오는 전투에서 승리해야만 한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1821년에 죽어서 만날 수가 없다. 테오는 어떻게 그를 만날 수 있을지 계획을 세운다. 그리곤 마이너스가 되기로—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p.40
문제는 이거다.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은 정확히 어떤 사람을 말하는 거지?
줄리아는 친구들이 자기 공책을 베끼지 못하게 한다. 그러면 선생님 말씀을 잘 따랐으니 착한 아이일까? 아니면 친구들을 도와주지 않았으니 나쁜 아이일까? ...(중략)... 나폴레옹은 착한 사람이었을까, 나쁜 사람이었을까?
내 생각엔 절대로 어느 한쪽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고, 두 가지 면을 다 갖추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았다.

동생이 책꽂이에 꽂힌 책을 보고 한 말이 있다. “누나는 왜 죽음에 대한 책들이 많아?”
가득 찬 책장 속에 죽음과 관련된 책은 ‘살인 예언자’라는 미스터리 소설과 ‘자살 토끼’라는 귀여운 일러스트가 있는 만화책, 단 2권뿐이었다. 하지만 죽음과 관련된 단어가 있는 책이 있다는 것 자체가 동생에겐 큰 충격이었나 보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두렵고 무서운 존재이나 어린아이에게 죽음은 더욱 피하고 싶은, 큰 존재일 것이다. 하지만 테오는 덤덤하게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p.112
결국 누구나 각자의 문제를 안고 있다는 얘기다.

p.121
「자라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테오」

<보이후드> 속 한 장면이 생각났다. 영화 <보이후드>는 한 소년의 성장을 다룬 영화로, 무려 12년 동안 소년의 성장과정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영화 중 자식들이 다 크고 집을 나가 빈 집에 홀로 남은 엄마(올리비아)는 허무함과 쓸쓸함에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있다.“난, 그냥 뭔가 더 있을 줄 알았어.” 오직 자식만을 바라보며 치열하게 견뎌왔지만 결국 그녀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이상하게도 올리비아의 감정에 몰입되었다. 왜냐하면 11살 차이가 나는 남동생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갓난아기였던 동생을 정성껏 돌봤었다. 잠자다 일어나 우는 아이를 안았다 눕혔다 달래보고, 젖병도 삶아보고, 목도 못 가누던 아기를 씻기고, 기저귀도 갈아주고 말이다. 하지만 점점 커가는 동생을 볼 때마다 '언제 저렇게 징그럽게(?!) 컸담’, ‘빨리 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동생이 커갈수록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더 많은 것을 알지 않았으면, 계속 순수한 아이의 모습을 했으면 좋겠다며 말이다. 이대로 쭉 곁에 머물러 있었으면.




p.160-161
「테오, 바람을 한번 생각해 봐.」
바람.
「바람이 보이니?」
무슨 질문이 이렇지? 바람인데 당연히 안 보이지!
「그렇지만 나뭇잎들은 흔들릴 거야.」
「맞아요.」
「그럼 바람은 존재하는 거야. 존재하지만 보이지는 않지.」
나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말이었다.
「그걸 그릴 수 있을까?」
「학교에서 몇 번 그려 본 적 있어요. 파란 색연필로 하늘에 회오리바람을 그리면 돼요. 아주 쉬워요.」
「바람은 눈에 안 보이는데 왜 그렇게 그렸지?」
「왜냐하면, 그렇게 그리면 보이니까요.」
…(중략)...
「맞아. 그렇게 안 보이는 걸 보이게 만들 수 있지. 바람이나 말처럼. 나폴레옹도 지금은 죽어서 안 보이지만 존재하고 있는 거야. 나폴레옹을 보고 싶을 떈 눈을 감으면 돼. 그림으로 그리면 나폴레옹을 다시 살릴 수 있지. 한번 해보렴.」




p.181
「그건 걱정 마. 내가 안 보이게 되면 널 만나러 교실로 올게. 네가 만든 종이비행기가 날아다니게 만들게. 그러면 내가 네 옆에 와 있다고 생각하면 돼.」

바람이 되기로 결심한 테오는 달려오는 지하철에 뛰어들기로 마음 먹는다. 그렇기에 책이 몇 장 안남을수록 점점 다음장을 넘기기가 너무 괴로웠다. 테오가 죽음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았다. 테오가 바람이 되는 것을 보고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하철에 뛰어들기 직전 테오는 나폴레옹을 만나고 해답을 얻는다. 본인도 나폴레옹처럼 절대로 굴복하지 않고 전투에 임하면서 계속 싸우기로. 자신은 작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내 인생을 한 권의 책이라 여기며 매일매일이 책의 한페이지이고, 다음 장에는 이렇게 쓰여있을 것이다.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다 읽고나서야 이 책의 제목이 바람이 된 아이가 아니라 바람이 되고 '싶었던' 아이라는 것에 무릎을 딱 쳤다. 결말은 정해져 있었다.







저자 : 로렌차 젠틸레
1988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나고 자라며 문학과 연극에 대한 열정을 키웠다.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에서 무대 예술을 전공, 파리에 있는 자크르코크 국제연극학교에서 수학했다. 재즈 댄스와 연극 연출, 십자말풀이를 좋아한다. 최근에는 펜과 아크릴 물감으로 그림 그리기, 콜라주 제작 등에 푹 빠져 있다. 흥미와 재능을 보이는 분야가 많지만 가장 좋아하는 것은 글쓰기다. 첫 작품 『바람이 되고 싶었던 아이』로 레지움 줄리 신인 작가상을 수상했다.

옮긴이: 천지은
경기도 수원 출생.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탈리아어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옮긴 책으로 산드로 베로네시의 『조용한 혼돈』, 엘사 모란테의 『아서의 섬』, 다치아 마라이니의 『방황의 시절 』, 마리노 네리의 『늑대의 꼬리』, 루카 디 풀비오의 『다이아몬드 도그』 등이 있다.

굴, 사진: 땡스북스 정예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