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18일 ~ 9월 24일
땡스북스 금주의 책

스위스 방명록
마티
노시내 지음

지난 5월 유엔 산하기관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158개국을 대상으로 조사?발표한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는 스위스다. 해외 주재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머서의 삶의 질 조사와 홍콩상하이은행(HSBC)의 해외 거주자 조사에서도 외국인이 정착하기 좋은 나라, 삶의 수준이 높은 나라로 스위스가 꼽혔다. 많은 사람이 입을 모아 스위스를 살기 좋은 나라라고 말한다. 눈 덮인 융프라우, 무장영세중립, 직접민주주의, 스위스은행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며 자연이 아름다운 나라, 풍요롭고 민주적인 나라로 기억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스위스에 누가 살았는지, 그들이 무엇을 일궜는지 거의 알지 못한다.

P.447
여행자이면서 여행자가 아닌, 보편성 속에서 살면서 특별한 시선을 버릴 수 없는 관찰자의 입장은 나에게 ‘사이’, 그러니까 앞에서 얘기한 ‘치즈의 구멍’으로 접근하는 문을 열어주었다. 그래서 나는 거기서 서성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가 못 보고 지나치는, 혹은 스위스가 좀처럼 안 보여주는 보물을 챙겨 컴퓨터 화면 위에 살살 펼쳐놓기 시작했다. 그 보물들 뒤에는 늘 ‘인간’이 있다는 것도 당연하지만 새삼스런 깨달음이었다.


전작 『빈을 소개합니다』에서 특유의 따뜻한 시선으로 이방인과 현지인 모두가 놓쳐버린 ‘오늘’의 빈을 소개한 저자 노시내는 사람들이 스위스에 대해 알고 있(다고 믿)는 것들 안에 이미지만 가득하고 ‘사람’이 빠져 있다는 게 마음에 걸려 이 책을 썼다. 저자는 스위스가 일종의 ‘통로’나 ‘유명인의 묘지’로 여겨진다면서, 사람들의 행적을 좇는 여정에 오른다. 스위스 곳곳에서 그들의 흔적을 마주할 때마다 자리에 멈추어 서서 한사람씩 호명해낸다. 미국에서 8년, 일본에서 4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4년, 그리고 지금은 스위스 베른에 옮겨가 2년째 머물고 있는 저자의 독특한 이력이 이번에도 빛을 발한다. 노시내는 영원한 여행자이면서 성실한 시민으로, 소속된 내부자이면서 바깥에 선 관찰자로, 누구도 몰랐던 스위스 사회의 감추어진 이면을 들여다본다.



이 책의 표지 사진은 ‘크로넨할레’(P.249) 와 더불어 취리히 지역의 역사적 명소로 꼽히는 ‘카페 오데온’의 내부다. 카페 오데온은 1911년 여름에 문을 연 유겐트슈틸 카페로, 1차 세계대전 후부터 외국에서 피신 온 망명 인사들의 단골집이었다. 1918년 오스트리아의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가 서신만 몇 번 교환했던 제임스 조이스를 처음 만난 곳이기도 하다.(P.258)
다양한 국적과 재능을 가진 다다 멤버들이 카페 오데온을 아지트 삼아 모이던 때, 레닌도 그가 살던 집(슈피겔가세 14번지)과 가까운 이곳에서 망명 동지들을 접선했다. 게다가 1916년 오픈한 다다의 공간 카바레 볼테르(슈피겔가세 1번지)가 레닌이 살던 집과 한길에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상상이 든다.


스위스에 관한, 그러나 스위스의 것만은 아닌 책

저자는 이 책을 ‘스위스에 관한 책이면서 동시에 스위스 문화가 온전히 스위스의 것만은 아님을 상기시키는 책’이라고 말한다. ‘폐쇄주의, 고립주의, 제노포비아와 같이 문화를 싱겁게 하고 썩기 쉬운 고인 물로 만드는 생각들’을 경계하며, ‘국경을 넘나드는 외부자, 경계인, 신유목민들이 사회와 문화에 간을 맞추고 창조적 이종교배를 가능케 하는 존재’임을 강조한다.
프리드리히 니체, 헤르만 헤세, 리하르트 바그너, 블라디미르 레닌, 제임스 조이스, 토마스 만 등과 같은 명사들이 인생의 결정적 순간을 스위스에서 보내고, 후대에 길이 남을 유산을 남길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그들을 맞아주고 감싸주고 영감을 부어준 자연, 그들을 찬양하거나 힐난하면서 받아주기도 밀어내기도 했던 ‘사람들’, 와중에 서로가 알게 모르게 공유했던 공간과 사유들, 그 모든 교류가 켜켜이 쌓였기 때문이 아닐까.




저자 : 노시내
저자 노시내는 연세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조지워싱턴 대학에서 정책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가까운 이들은 공부강박증이라고 놀리지만 지금도 책방이나 도서관에 가면 가슴이 뛰고 기분이 좋아진다.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다는 생각에 압도당할 때는 아무거나 들고 읽기 시작하는 활자중독자다. 유학을 떠난 이래 햇수로 18년째 타국생활 중이다. 미국에서 8년, 일본에서 4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4년, 지금은 2년째 스위스 베른에 머물며 글을 짓거나 옮기고 있다. 『일본의 재구성』 『자본주의를 의심하는 이들을 위한 경제학』 등의 책을 옮겼고 『빈을 소개합니다』를 썼다.


글: 마티 편집부
사진 구성: 땡스북스 최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