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3일 ~ 6월 9일
땡스북스 금주의 책

서울 건축 만담
아트북스
차현호, 최준석 저

아-아-아↗아↘ 우리의 서-울, 우리의 서-울!
영화 ‘선생 김봉두’에서 김봉두가 시골 아이들을 모아놓고 부르는 노래다. 서울에서 뇌물을 받던 선생 김봉두는 시골로 좌천되어 아이들을 데리고 상경할 궁리만 한다.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아이들을 모아놓고 이 노래를 합창하는 장면, 나도 그 아이들 중 하나였나 보다. 정확히 7년 뒤에 나는 학업을 빌미로 서울에 상경했고, 서울 톨게이트를 지나치며, 한강에 누워, 남산을 오르며 늘 뿌듯해했다. 등본 주소는 지금도 전남 XX지만 ‘마음만은 서울 사람이야~’랄까. 서울에서의 삶은 조금은 벅차기도, 조금은 삭막할 때도 있지만, 여전히 나는 서울이 좋다.

이 책은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서울에 사는 게 좋고, 서울이 신기한 사람. 서울을 뺀질나게 걷고 또 걸으며 옆 사람에게 이 건물, 저 건물을 보며 아는 척하고 싶은 사람이 산책할 때 나누기 좋은 이야깃거리를 담은 <서울 건축 만담>은 두 건축가가 김연수, 김중혁 작가의 대담집에 영감(혹은 용기)을 얻어 써 내려간 ‘건축과 도시 이야기를 빙자한 에세이’다.



차현호, 최준석 이 두 건축가는 오래된 친구지만 건축에 대한 견해나 스타일은 완전히 다르다. 한 건축물을 보더라도 둘의 생각이 완전히 달라서 읽는 내내 균형 잡힌 생각을 할 수 있었고, 다양한 시선으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챕터를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나누는 이 둘은 서로의 의견을 지지하기도 하고 때로는 장난을 곁들여 냉철하게 꼬집기도 한다. 진짜 만담 같은 만담을 지켜보는 느낌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건축이 무엇이냐? 물으면 늘 “예술이지!”라고 대답해 놓고는 일상 속 건축물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낡았다, 새 거다 딱 이 두 가지로 생각하거나 건물주가 최고라며 자본의 어떤 밑천 정도로 여겼던 것 같다. 내가 겉으로는 건축에 대해 아는 척 번지르르하게 이야기하고 속으론 얼마나 1차원 적인 생각을 했는지 깨달은 나는 읽는 내내 부끄러웠다. 왜냐하면, 이 두 건축가의 열정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건축, 공간, 그리고 삶에 대하여 이 둘은 진지하게 논의하고 치열하게 고민한다. 서울의 건축물과 서울이라는 도시의 변화에 대해 자신만의 생각이 있고 그들의 관점을 피력하는 점이 무척 멋있었다. 건축에 대해 뜨거운 열정으로, 궁극적으로는 삶을 이야기하는 이들. 옳은 방향을 추구하는 이 건축가들이 있어(비단 이 둘 뿐만 아니라 옳은 방향을 지향하는 건축가들이 무척 많으리라 생각한다.) 앞으로의 서울이 무척 기대되기 시작했다.


P. 202
소설가 이탈리아 칼비노는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 도시를 두 가지로 묘사하는데 나는 그의 묘사를 '도시를 보는 두 가지 관점'으로 정정하고 싶다. 하나는 도시의 고정된 형태, 즉 건물과 구조물을 관찰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과 그들에게 일어난 사건을 관찰하는 것이다. 어떤 대상을 묘사하는 방법은 대상을 제대로 보는 방법도 되고, 대상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가는 방법도 되지 않을까.



P. 351
지을 수 없는 것은 지울 수 없는 상태로 두는 것, 그것이 최선임을 부정하지 않는 게 진정한 치유의 시작이다. 이런 생각을 공간으로 만들 수 있는 수준은 되어야 선진국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서울은 나에게 회색 도시였다. 살기 좋지만, 어딘가 나는 항상 이방인인 듯했고, 때로는 밀려오는 막막함에 한숨으로 밤을 새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을 통해 다시 본 서울은 너무나 따뜻했고, 서울의 어떤 공간이, 서울이라는 도시 자체가 위로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 해 보았다.

생각해보니 이곳에서 접한 맛집이나 뮤지컬 등은 좋아하는 게 확고했지만 좋아하는 공간에 대해서는 고민해 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책을 덮고 가만히 누워 내가 좋아하는, 추억이 담긴 서울의 공간들을 떠올려보았다.

1. 서울 미술관 석파정
눈이 쏟아지던 날 우연히 들어갔던 곳이다. 서울미술관을 관람권을 끊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인데, 폐장시간이 다 되어 온전히 우리 일행만 석파정을 거닐 수 있었다. 흥선대원군이 아들 고종을 보내 신하에게서 뺏다시피(!)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정말 그럴만했다. 서울 도심 안에 이렇게 고요하고 아름다운 곳이 있다는 게 놀라웠고, 정말 ‘설국’이라는 다른 세계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사람들에게는 봄, 가을이 절경이라고 많이 알려졌지만 나는 단호하게 눈이 쏟아지는 날 가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2. 땡스북스
이 책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공간이 사람의 사고방식을 지배한다.’ 땡스북스가 가장 적합한 예가 아닐까 싶다. 나에겐 직장이면서도 다른 이들은 책을 통해 휴식과 영감을 얻기 위해 방문하는 곳이다. 흐르는 음악, 탁 트인 창문, 매일매일 꾸준한 관리로 얻은 쾌적한 이 공간에 앉아있으면 일도 즐겁고 생각의 폭도 넓어짐을 느낀다. 내 직장이 누군가가 좋아하는 공간이라는 것, 최소한 한국에서는 참 복 받은 일 아닌가 싶다. 나는 여전히 출근하는 게 즐겁다.

3. 산책코스 (광화문 - 인사동 - 현대 사옥 - 창경궁 - 혜화동 - 한성대입구 - 성북천)
날씨 좋은 날, 혹은 여름밤 별일 없으면 종종 걸어 다니는 코스다. 차가 조금만 덜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지만 그런 건 아무 것도 아닐 만큼 좋다. 광화문 높은 담을 지나서 인사동 길을 걷는다. 창경궁 쪽으로 꺾는 길을 가장 좋아하며, 혜화동이라는 이름이 주는 옛 분위기를 좋아한다. 성균관대 뒤편으로 걸어 내려와 한성대입구역을 지나서 동네 앞 개울 같은 편안한 느낌의 성북천을 따라 걷는다. 동네 친구들과 하염없이 걷는 이 길과 그때의 공기가 무척이나 좋다.

4. 청계천
오래전 추억이 있는 곳이다. 한 남자가 있었는데, 내심 나는 그날 이 사람이 고백하지 않으면 이 관계를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한 마지막 기회(?)였다. 청계천을 걷고 걷다가 어느 돌 위에 앉았던 것 같다. 뒷머리를 긁적이며 나와 만나보고 싶다던 사람. 그 사람이 ‘잘할게.’라며 손을 내밀었고, 나는 오래오래 이 손을 놓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예감대로 그렇게 몇 년을 함께 보냈고 지금은 놓아버린 손이 되었지만, 청계천은 여전히 나에게 소중한 장소다. 나에게만이 아니라 지나간 사람에게도 소중한 장소였으면 하고 작게 바라본다.


P. 358
우리가 책을 읽고 영화를 보듯 건축이 충분히 흥미있게 읽히기를 바라며, 때로는 국영수처럼 재미는 없더라도 삶의 필수 과목으로서, 우리 삶의 아주 가까운 자리에서 신변잡기의 일상을 담는 존재임을 보여주고 싶었다. 원래 건축이란 게 이런 하찮고 자잘한 우리들의 일상을 담는 것 아니던가?

저자의 말처럼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과 영화를 말하듯이 일상 속 건축물에 대한 이야기가 활발하게 이어지면 좋겠다. 이 책에서 얻은 지식을 토대로 서울을 열심히 누리고 열심히 돌아다녀야지. 그리고 이제는 누군가를 만나거든 이렇게 물어야지. “서울에서 제일 좋아하는 곳이 어디에요?” 라고 말이다.

덧, ‘야근하는 직장인을 위한 밤 산책 안내서’를 내고 싶다고 하셨는데 이 계획 꼭 성취하시길 간절히 기원한다.





저자 : 차현호
어린 시절 울산 바닷가에서 석유화학공업단지를 보며 뛰어놀다가 화학공학과로 대학에 진학했다. 천직인 줄 알고 화학을 공부하며 잘 지내던 어느 날, 친구 따라 건축 전시회에 갔다가 건축에 매료되어 화학을 배신하고 덜컥 건축을 업으로 삼았다. 미술이나 음악처럼 대중이 즐길 수 있는 건축의 형식은 무엇일까 하는 고민에 빠져 있으며, 건축이라는 생태계와, 물만 먹고도 살아가는 건축가라는 특이한 종을 알리는 일에 관심을 쏟고 있다. 선진엔지니어링에 근무하며 한국터널지하학회 지하개발위원회 도시부문 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펴낸 책으로 『자전거 건축 여행』이 있다.

저자 : 최준석
건축사. 건축사사무소 NAAU를 운영하면서 주택, 어린이집, 기숙사, 기업사옥 등 다양한 건축설계를 진행 중이다. 서른여덟 살 때 집이나 글이나 ‘짓는’ 건 매한가지라는 소소한 깨달음을 얻은 후, 본업인 건축설계 틈틈이 글짓기에도 즐겁게 공을 들이고 있다. 건축은 ‘삶을 담는 그릇’이라는 정의를 여전히 신뢰하기에 겉모양이 현란한 외향적?건축보다는 삶을 위해 소소한 배경으로 존재하는 내성적 건축을 좋은 건축이라 믿는다.
2010년에 첫 책 『어떤 건축』을 출간한 후, 2012년에 『서울의 건축 좋아하세요?』를 펴냈다. 『파운드』 『노블리스』 『싱글스』 『루엘』 『에스콰이어』 『모터스라인』 『월간 에세이』 『좋은생각』 『포스코신문』 『LG하우시스』 『현대엠코』 『쌍용자동차』 등 다양한 매체에 글을 쓰고 있다. 축구 관람, 아침 조깅, 심야영화를 사랑한다. 엄마 같은 아내, 애인 같은 두 딸과 화목하게 살고 있다.

글, 사진: 땡스북스 손정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