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16일 ~ 2017년 6월 22일
땡스북스 금주의 책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책세상
데이비드 실즈 저, 김명남 역





이것은 책?

예전 학생 하나가 이런 편지를 보냈다. “저는 앞으로 쓸 책에 대한 메모를 오랫동안 작성해 왔어요. 언젠가 그걸 구체화하겠다고 꿈꾸면서요. 그런데 메모들을 책으로 바꾸려고 시도할 때마다 결과가 맘에 들지 않아요. 사실 지금까지 내가 쌓은 것은 인용구, 재치 있는 구절, 은유로 구성된 데이터베이스예요. 책의 구조를 어떻게 잡을 것인가에 관한 메모마저도 어찌나 에너지가 넘치는지 몰라요. 원대한 희망의 개요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 대부분은 실제로 성사될 가망이 없어요. 제 책은 책을 쓰는 계획에 대한 책이 되려는 것 같을 지경이에요. 현재의 지구 중력 하에선 존재할 수 없는 가상의 문학이죠.”
나는 답장을 보냈다. “그 메모들이 책이야. 네게 장담하지.”
나 자신에게도 장담한다.


이것은 책

내가 읽은 책의 제목은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내가 쓸 책의 제목은 『이 책은 어떻게 내 삶을 구하려 하는가』


이 책은 어떻게 내 삶을 구하려 하는가

로리 무어의 『애너그램Anagrams』에서 주인공 베나 카펜터는 말한다.
: 문학의 유효한 주제는 하나뿐이다. 인생이 당신을 실망시킬 것이라는 사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말한다.
: 나는 사람들이 느끼는 덫에 걸린 듯한 기분, 외로움, 죽음의 감각을 격화시킴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을 인정하게끔 만드는 것이 작가의 일에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구원받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우선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 부정하고 싶은 것을 정면에서 바라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실즈는 말한다.
: 삶은 부조리하다. 삶에서 의미가 빠져나갔을 때, 우리는 어떻게 기능해야 하는가?

데이비드 실즈가 베케트에게 묻는다.
: 무엇으로 낮을 견디나요? 밤은 말할 것도 없고?

베케트의 대답.
: 단테를 읽고, 축구를 보고, 방귀 뀌는 것을 좋아한다.

데이비드 실즈는 말한다.
: 만일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면, 모든 것이 중요해진다.

한 번 더, 데이비드 실즈는 말한다.
: 지혜는 없다. 많은 지혜들이 있을 뿐이다. 아름답고 망상적인.

낸시 레먼은 알고 있다.
: 뭐든 시시한 것을 하나 찾아서(‘영원의 상 아래에서’ 모든 것은 시시하다) 죽도록 사랑하는 것이 삶의 열쇠라는 사실.

나는 말한다.
: 무의미하고 중요한 단테. 아름답고 망상적인 축구. 시시하고 삶의 열쇠인 방귀. 베케트가 죽도록 사랑해서 태어난 것들.




그래서, 이 책은 내 삶을 구했는가?




이 책은 ‘어떻게’ 내 삶을 구하려 하는가

이 글의 대부분에서 나는 내가 아니다. 이 말은, 이 글이 “인용구, 재치 있는 구절, 은유로 구성된 데이터베이스”라는 뜻이다. 더 쉽게 말하자면, 거의 베껴 썼다는 뜻이다. 그래도 되냐고 누가 묻는다면 한 번 더 베끼겠다. “그 메모들이 책이야. 네게 장담하지.”
훌륭한 책은 아니고, 아마도, 사실은, 궁극적으로 좋은 책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어쨌든 지루하지 않다. 내게는 그게 제일 중요하다. 나는 그저 깨어 있고 싶고, 지루하지 않고 싶고, 기계적이지 않고 싶다. 나는 내 삶을 구하고 싶다. (이 문단도 베낀 것이다.)
그래서 책으로 책을 썼다.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를 분해해 『이 책은 어떻게 내 삶을 구하려 하는가』를 조립했다. 그동안 나는 지루하지 않았다. 기계적이지 않았고, 깨어 있었다. 만약 내 삶이 구원받았다면 여기에 적힌 그럴싸한 문장에 감복해서가 아니라, 문장들을 이리 놓고 저리 놓으며 놀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 책과 놀던 시간 동안 나는 많이 웃었다.

구원은 그저 즐거웠던 시간에, 그저 즐거웠던 시간이다.


저자: 데이비드 실즈

1956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다. 브라운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1980년에 아이오와 대학 작가 워크숍에서 픽션 전공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에 첫 소설 《영웅들Heroes》을 발표한 후, 《죽은 언어Dead Languages》(1989), 《익사 지침서Handbook for Drowning》(1992)를 발표했다. 《익사 지침서》는 실즈의 전매특허와도 같은 ‘장르의 경계를 지운 글쓰기’의 시초가 되었다. 이후 그 경계는 더욱더 희미해져 실즈는 픽션과 논픽션의 중간 지대에 위치시킬 수 있는 에세이로 방향을 바꾸고, 《리모트 : 유명인의 그림자에서 살아가는 삶에 관한 사색Remote: Reflections on Life in the Shadow of Celebrity》(1996, PEN/레브슨 상 수상), 《검은 지구 : NBA 한 시즌 동안 만난 인종Black Planet: Facing Race During an NBA Season》(1999, 전미비평가상 최종심),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2008) 등을 썼다. 2013년에 비평적 회고록이자 자전적 문학론을 특유의 콜라주 형식으로 풀어놓은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를 발표했다. 이 책은 ‘《퍼블리셔스 위클리》 선정 2013년 가장 기대되는 책 10권’과 ‘아마존 선정 이 달의 책’에 뽑혔다.

2014년 현재 시애틀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며, 《뉴욕 타임스 매거진》 《하퍼스 매거진》 《예일 리뷰》 《살롱》 《맥스위니》 《빌리버》 등에 에세이와 단편소설을 기고하고 있다. 그의 저서들은 전 세계 20개 국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저자: 김명남

카이스트에서 화학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환경정책을 공부했다. 옮긴 책으로 『칼 세이건의 말』 『면역에 관하여』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리처드 도킨스 자서전』 『지도 위의 인문학』 『불편한 진실』 『문버드』 『암흑 물질과 공룡』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지구의 속삭임』 등이 있다. 2015년 『시사인』에서 ‘행복한 책꽂이? 올해의 번역가’로 선정되었다.

글, 사진: 땡스북스 이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