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2일 ~ 8월 8일
땡스북스 금주의 책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큐리어스
윤성근 저


책의 여행을 좇아가다

책의 순환주기가 짧아졌다느니 대형마트가 동네 상권을 위협하는 것처럼 자본력과 유통망을 갖춘 온라인 서점이 동네 헌책방 시장을 위협한다느니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지만, 알라딘 중고서점이 생긴 후로 중고책(헌책)을 접하기가 좀 더 편해진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값이 싸다는 걸 차치하고서라도 헌책방은 그곳만의 매력이 있다. 그건 바로 책이 여행하는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헌책방에서 책을 뒤적이다가 이따끔 발견하게 되는 영수증이나 누군가의 메모를 발견할 때면 보물찾기에 당첨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책의 여행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에서일까. 나 역시 책을 살 때 책을 펼치자마자 보이는 면지 귀퉁이에 짧은 글을 쓰는 습관이 있다. 책을 산 날짜와 장소, 그리고 그 책을 산 이유나 느낌 등을 짤막하게 적어 넣는 것이다. 단지 몇 글자 적어 넣었을 뿐인데, 그러고 나면 이 책은 세상에 쏟아진 많고 많은 책 중에서 오롯이 나만의 추억이 담긴 특별한 책이 된다.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는 그런 추억의 조각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의 주인장인 저자가 책을 정리하다 의미 있는 글씨를 발견하면 사진을 찍고 간단히 생각을 덧붙여 모아둔 것을 책으로 엮은 것으로, 주로 1980-90년대에 남긴 젊은이들의 메모가 눈에 띈다. 그때 사람들은 무언가를 기념하고 기록하기 위해 책에 글씨를 남긴 것일까? 책 속에는 누군가에게 썼지만 부치지 않은 편지, 돌이키면 낯이 붉어지는 고백, 왜 살아야 하는지 묻고 어떻게 살 것인지 번민하던 청춘의 흔적들이 서툰 손글씨 그대로 담겨 있다.

P.14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인터넷으로 가격을 비교하며 책을 산다. 그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반드시 서점에 가서 눈으로 보고, 손으로 느껴본 다음 산다. 그보다 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책과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헌책방에 모인다. 헌책방은 오래된 책을 사는 곳 이상으로 큰 의미가 있다. 그곳은 책과 사람이 만나 사랑을 나누는 장소다.

종이책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이유

바랜 색과 닳아버린 귀퉁이, 아날로그적인 매력이 더해진 헌책에 남겨진 메모에는 흐르는 세월이 더해준 시대적 가치들이 꼼꼼하게 배어 있다. 종이책의 위기가 대두되는 요즘,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는 오로지 종이책이라서 가능한 면면들을 보여준다.

P.105
손으로 쓴 글씨는 이렇게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그것은 마치 휴대폰 문자메시지나 이메일로 연애편지를 쓰는 게 좋으냐, 혹은 손으로 꾹꾹 눌러 쓰는 게 좋으냐 하는 문제와 같다. 누구라도 연인에게서 받는 편지는 손글씨이길 바란다. 이것이 바로 종이책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세월이 흘러도 빛바래지 않는 마음

SNS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기프트콘으로 축하의 선물을 전하는 요즘, 쉽고 편리하긴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 역시 가볍고 빠르게 잊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그래서일까. 마음을 담아 꾹꾹 눌러쓴 손글씨와 상대방을 취향을 생각하며 어렵게 고른 책으로 전하는 마음은 세월이 흘러도 빛바래지 않고 반짝반짝 빛이 난다. 어렵고 느려서 좋은 것이 있다면 바로 이런 마음이 아닐까.

P.224
예전에는 책을 사면 어느 한 귀퉁이에 뭔가를 적었다. 선물을 할 때면 받는 사람에게 온 마음을 담아 보내는 글을 함께 적어 보내곤 했다. 자주 책을 읽다가 생각나는 것들을 짧게, 때로는 길게 여백에 적어두기도 했다.

나를 고뇌하고 시대를 번민하던 청춘의 흔적들

책을 읽으면서 유독 눈에 많이 띄는 것은 1980-90년대를 살았던 청춘들이 저마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들이었다. 2013년을 사는 지금의 20대가 짊어진 가장 큰 고민이 ‘어떻게 하면 스펙을 잘 쌓아서 좋은 직장에 취업할 수 있을까’라면, 그 시절의 20대는 자신과 사회의 존재에 대한 탐구에 힘을 쏟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P.181
그때의 청춘들은 누구나 시인이었다. 좋아하는 시 몇 편쯤 외울 줄 알았고 노트 한 귀퉁이에, 아끼는 책 한 켠에 자작시 몇 줄쯤 부끄러움 없이 끄적일 줄 알았다. 그때 그들은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산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나는 누구인지 실체도 정답도 없는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들이 남긴 메모를 읽다 보면 책 속의 숨은 또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느낌이 든다. 마음속에 품고 있던 오랜 고민을 책을 읽으며 충분히 숙성시켜 두었다가 글로 쓰며 정리하는 사유의 시간을 거쳐 남겨진 문장들이기에, 짧지만 마치 한 권의 집약된 책을 읽는 것처럼 강렬하게 남는 건 아닐까.

또 하나의 메모를 더하는 마음으로

시집도 좋고 소설책도 좋다. 누군가에게 선물하기 위한 책도 좋고 내가 읽기 위한 책도 좋다. 어떤 마음으로 그 책을 샀는지, 책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또박또박 책 속에 흔적을 남겨보자.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에 또 하나의 메모를 더하는 마음으로.

P.171
<데미안>의 구절을 그대로 옮겨 적은 메모다. 생각해보면 인터넷에 올리는 것과 책에 적는 것은 매우 다르다. 블로그나 SNS에 올리는 것은 드러냄을 전제로 한다. 누군가와 함께 읽고 공감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조용한 시간에 혼자 앉아 손글씨로 쓰는 것은 오롯이 자신을 위한 것이다. 오늘날 책을 읽으며 자기를 보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어쩌면 책 읽기를 통해 무엇을 얻어내려는 마음은 욕심일지도 모른다. 한 자 한 자 베껴 적바림한 글씨를 보며 이 책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의 마음에 조금씩 다가가본다.

P.227
어떤 이들은 꼭 책에 글을 쓴다. 책을 고르는 모습도 아름답지만 책에 맑은 마음을 담는 모습은 더 아름답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동네 책방에 들러 시집 한 권을 사자. 첫 장에 짧은 글을 써서 지금 힘들게 살아가는 이에게 주자. 뒷날 그 책이 헌책방에서 누군가의 손길에 닿으면 그 삶에게도 힘을 주리라.
- 은종복(풀무질 일꾼) 추천사 중에서




저자: 윤성근
저자: 컴퓨터 회사를 다니며 서른 살 즈음 사표를 내고 출판사와 헌책방 직원으로 일했다. 2007년 여름, 은평구 응암동 골목길에 간판도 없이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열었고 여전히 거기서 일하고 있다. 읽고 글 쓰는 것 말고도 이런저런 일에 관심이 많은데 최근엔 박원순 서울시장의 집무실을 디자인한 사람으로 많이 알려져 조금 부끄럽다. 레고나 플레이모빌을 모으고 수동 카메라, 폴라로이드 사진 찍기도 즐긴다. 지은 책으로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매진)>, <심야책방(이매진)>, <침대 밑의 책(마카롱)>이 있다.

글, 사진: 땡스북스 정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