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30일 ~ 2017년 1월 5일
땡스북스 금주의 책

고흐 씨, 시 읽어 줄까요
사계절
이운진 지음


나는 시를 제대로 읽어 본 적이 없다.

오로지 대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읽어낸 시들만 내 머릿속에 빼곡했다. 당연하게도 입시가 끝나고 그 시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머리 속에서 사라졌다. 대학에 들어가 4년 동안 전공에 파묻혀 지냈고, 취직 후 지금까지도 시는 나와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어릴 적엔 시를 좋아했었다. 어머니 때문이었다.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아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어머니는 문학에 깊은 애정을 가지셨다. 아직도 책을 읽으면 반짝반짝하고 나보다 더 소녀 같은 눈을 빛내신다. 그 모습을 보면서 덩달아 나도 좋아했다. 어머니 생신에 꽃과 여러 시집에서 골라서 모은 시를 손으로 써서 책으로 묶어 드리기도 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이 시를 읽으면서 엄마가 행복하길 바라며 행복, 사랑, 희망에 관련된 예쁜 시들을 삐뚤빼뚤한 손글씨로 써내려가며 느꼈던 설렘이 아직 남아있다.
이런 모습들이 남아있어서인지, 즐기진 않지만 '시'를 보면 자연스럽게 어머니가 생각난다.
최근 들어 '시'에 관련된 책들이 보인다. <고흐 씨, 시 읽어 줄까요>도 따뜻한 색감의 표지와 함께 '시와 그림의 만남'이라는 부제가 눈에 들어왔다. 청소년기부터 그림에 관심이 커지면서 어머니와 관심사가 자연스럽게 나뉘었었는데, 부제가 마치 우리 둘의 만남을 말하는 느낌이었다.

p.7
물론 시 한 편, 그림 한 점으로 일상의 매 순간이 봄날의 꽃밭이 되진 않았지만,
시와 그림은 내가 삶에 표시하는 눈금을 행복이라고 속이지 않아도 헛된 하루가 아니었음을 믿도록 해 줘.


<고흐 씨, 시 읽어 줄까요>를 펼쳤을 때 다소 당황했었다. 친구에게 편하게 말하듯이 글이 쓰여 있었다.
이런 문체의 글을 '책'으로 접해본 적이 처음이어서 굉장히 낯설었다. 그래서 책 소개를 찾아봤더니 의도는 알 수 있었다.
시와 그림을 즐길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책들 사이에서, 좀 더 솔직하고 독자의 삶에 더 밀접하게 다가가기 위해서였다.
그래도 본문을 좀 더 읽어봤다면 덜 당황했을까? 마치 처음 보는 사람이 내게 툭툭 치듯이 친한 척을 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본 책의 내용을 굉장히 사적인 이야기를 꺼내며 시작한다. 아버지에 대한 유년의 기억, 생일 선물, 반려동물의 죽음 등..
이런 이야기를 대화하듯이 읽다 보니 처음 들었던 거부감은 사라지고 자연스럽게 내 이야기도 마음속으로 하게 되었다. 난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했지? 내 기억에 남는 생일은? 슬펐던 감정들 등등.. 이 일상의 감정들을 끌어와 저자가 위로받았던 시와 그림에 접목해준다.
그간 시와 그림을 안내하는 책들은 다소 설명적이거나 진중한 자세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마음을 갖게 했지만, 이 책에서는 시와 그림을 편하게 해석해준다. 아주 쉽고 편하게 읽어내리는 법을 툭툭 뱉어내듯이 말이다. 어머니가 종종 너도 문학이랑 좀 더 가까워져 보라며 읽은 책이나 음악 이야기를 하시는데, 너무 어렵고 멀게 느껴졌었다. 이를 말했을 때, 공부하는 것처럼 말고 계속 관심을 가지고 가까이만 하라고 하셨는데 그런 방법이 이 책에서 소개해주는 깊이 정도일까. 이 정도라면 친근하게 다가갈 것 같다.




p.30
시인도 이에 화답하듯 "세상이 다 꽃밭"이라며 벅찬 마음을 시에 풀어 놓았어. 어떻게 그런 아름다운 선물을 생각해 냈는지 이 시를 읽을수록 놀라게 돼. 그리고 나도 선물을 고르는 기준을 다시 생각하곤 해. 꽃밭에 심어 주는 꽃 같은 선물은 무얼까, 그 사람에게 오랫동안 즐거움을 안겨 주는 선물은 무얼까 하고 말이야.

p.38
두꺼운 스웨터 _ 문태준
엄마는 엄마가 입던 스웨터를 풀어 누나와 내가 입을 옷을 짜네 나는 실패에 실을 감는 것을 보았네 나는 실패에서 실을 풀어내는 것을 보았네 엄마의 스웨터는 얼마나 크고 두터운지 풀어도 풀어도 그 끝이 없네 엄마는 엄마가 입던 스웨터를 풀어 누나와 나의 옷을 여러날에 걸쳐 짜네 봄까지 엄마는 엄마의 가슴을 헐어 누나와 나의 따뜻한 가슴을 짜네




이야기 전개 방식처럼 책의 전체 흐름도 자연스럽다. '시'와 '그림'을 좀 더 보편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공통요소가 무엇일까.
저자도 나처럼 부모님과 일상, 생일 그리고 사랑이라고 생각한듯하다. 이런 따뜻하고 말랑한 이야기들을 시작으로 세 가지 파트로 나뉘는데, 개인의 삶과 가까운 행복한 이야기와 슬픔, 그리고 개인에서 확장된 사회 이야기로 나뉜다. 개인적으로 이중 두번째 파트인 "가장 밑바닥 감정의 기록"이 와 닿는다. 그 이유는 아래에 나오는 <버려진 개> 때문이다.

p.82
개의 처지와 상황을 이해하고 나면 비로소 시인이 붙인 제목이 이해되는 것 같아. 개가 꼬리를 흔들어야지 "꼬리는 개를 흔들"다니, 처음엔 이 무슨 말장난일까 싶었거든. 주인을 향해 사람들을 향해 반가운 마음으로 흔들던 꼬리를 더는 흔들 일이 없어졌을 때, 그 상실감은 개를 위태롭게 흔든다는 말이었어. 아, 이제야 제목도 시도 개의 마음도 선명하게 읽히네.

p.85
그림의 힘은 이런 데 있었어. 그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면서 내가 겪는 아픔에 마땅한 의미를 부여해 주는 것. 그리고 그림 속에 숨겨진 화가의 눈길이 나도 너와 같단다, 하고 불쑥 나를 끌어안아 주는 것 말이야. 어떤 날은 개를 생각하게 하고 어떤 날은 절망에 빠진 나를 바라보게 하면서 더 많은 것에 연민을 갖게 했어.

p.128
모진 말을 듣거나 슬픈 일이 있을 때 우리 가슴에는 상처가 생겨. 그리고 우리가 모른 척하는 사이, 그것은 가슴속에서 뼈처럼 딱딱하게 굳어지지. 눈물을 흘려서 그 딱딱한 상처를 씻어 내지 않으면 가슴을 짓누르는 돌덩이가 될지도 몰라. 내가 울어야 한다고 말하는 건 바로 이런 이유에서야. 상처의 진물이 다 빠지고 마음의 응어리가 녹게끔, 눈물로 씻어 내길 바라는 거지. 진하고 아픈 상처의 눈물이 아니라 맑은 눈물이 흘러나와 “더 이상 우려낼 게 없을 때”까지 시원하게 울고 나면, 그래, 이제 괜찮아, 라는 혼잣말이 나와. 비로소 눈물의 힘이 나타나는 거지. 다 울고 난 뒤 포근한 피로에 안겼을 때의 기분은 또 얼마나 따스한지. 그러니 상처를 아물게 해 줄 곳이 하나도 없을 때는 눈물에게 나를 맡겨 보는 거야.

<버려진 개>에서 소개해주는 프란시스 고야의 <모래에 묻히는 개>와 고영민 시인의 <꼬리는 개를 흔들고>가 너무 슬프게 다가왔다. 종종 '동물농장'을 보는데 유기견에 대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사람이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동물들을 통해 위안을 받으면서도, 이를 나쁘게 풀어내는 사람들 이야기를 볼 때마다 화가 났다. 더불어 아무리 작은 생명이라도 함께 살기로 했으면 그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데 버리고 도망가는 사람들도 너무 많다. 강아지들은 그런 것도 모르고 하염없이 주인을 기다리는데 이 모습을 볼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비단 tv 속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주변만 봐도 쉽게 위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특히 나는 본가가 있는 지역에 가면 길을 돌아다니는 유기견이나, 외부에서 방치되는 강아지들이 보인다. 제 3자이고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기때문에 바라보기만 하면서 느꼈던 알 수 없는 죄책감이나 슬픔이 있었다. 이런 감정들이 <버려진 개>에서 울컥 올라왔다. 이기적인 사람들 때문에 아픔을 겪는 작은 동물들.. 이런 모습이 줄어들어야 할 텐데 말이다.



저자와 대화하듯 읽고 나니 어머니를 위해 옮겨 적었던 시집 중에 시 하나가 생각난다. 시 전체가 생각나는 것은 아니고 그 시가 주는 행복감이 짙어 그 기분 좋음이 아직도 남아있다. 내가 전달해드린 그 시집이 부모님 댁 어딘가에 아직 있을 텐데 확인하고 싶어졌다. <고흐 씨, 시 읽어 줄까요>는 이처럼 자연스럽게 '다음'을 독자가 찾아갈 수 있도록 하는 가벼운 시와 그림 입문서인 것 같다. 2017년에는 그림과 시로 마음을 풍요롭게 채우고 싶거나 위로받고 싶다면, 이 책으로 첫걸음을 내딛어도 좋을 것 같다.

지은이: 이운진
나라는 존재의 작은 맥박을 들려주고 싶었으나, 세상에 늘 지곤 했다. 눈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슬픔이 쌓이면서 시를 쓰는 날이 시작되었다. 힘찬 삶을 꿈꿨던 만큼 지쳐 가던 시절, 화실을 동경하던 어릴 적 마음으로 그림 보는 사람이 되어 시와 그림 사이 어디쯤을 여행하듯 지냈다. 때로는 시가 밤하늘을 그려 주고 때로는 그림이 침묵을 읽어 주었다. 그곳에서는 슬픔도 멋진 동반자였다. 나에게 슬픔을 쓰는 건 슬픔을 포옹하는 일임을 알게 해 준 시와 그림 속 목소리들, 그것을 글로 옮겼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아도 되는 여행처럼 오늘도 마음이 부르는 풍경 속으로 간다. 그동안 시집 『모든 기억은 종이처럼 얇아졌다』, 『타로 카드를 그리는 밤』과 에세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질 너에게』를 펴냈다.

글, 사진: 땡스북스 김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