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18일 ~ 3월 24일
땡스북스 금주의 책

스트리트 페인터
미메시스
수신지 지음


약속이 없던 금요일, 퇴근 시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던 영화를 보기 위해 연초에 상상마당까지 발에 땀나도록 뛴 적이 있었다. 간발의 차로 표가 매진되자 큰 아쉬움에 휩싸였고, 집으로 그냥 가기 싫어 땡스북스 서점에 들렀었다. 들어서서 서점에 막 입고된 도톰한 두께의 <스트리트 페인터>를 보았고, 점장님 맞은편에 앉아 프롤로그를 읽은 뒤 한 권을 사서 집에 돌아가 저자에게 깊은 공감대를 느끼며 읽어 내렸었다.


- 나를 구매로 이끈 "프롤로그" -

다 읽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책은 원래 작가 수신지 씨가 올레마켓에 6개월간 연재하던 웹툰이었다. 주인공인 '아랑'은 회화과 4학년 생으로 "전공을 살리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일, 활기차게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아침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찾다가 학과 게시판 앞에 붙은 <거리의 화가> 모집 공고를 보고 '거리'라는 사회로 나가게 된다. 처음엔 '거리의 화가'에 작은 로망이 있었지만, 실기시험부터 진짜 거리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만만치 않은 사회에 발을 놓게 된 사실을 알고서 그 안에서 고군분투하며 성장하는 이야기이다.

이색적인 아르바이트에 대한 기대를 안고 시작한 아랑의 모습은 갓 나온 사회 초년생들의 모습과 똑같다고 느껴졌다. 일에 대한 기대와 적응 과정, 별다를 것 없다 생각하지만 주변의 상황에서 오는 예기치 못한 당황스러운 상황들. 그리고 정신 차리지 않으면 눈뜨고 코 베일 듯한 환경 등등.. 어리바리하게 사회에서 넋을 놓고 있다가 불현듯 자신의 위치를 생각하게 되고, 가만히 있어서는 안되겠다 다짐하며 다음 단계를 하나하나 밟아 올라가려는 모습이 주인공과 비슷한 처지의 독자들이 읽는다면 어떤 직종이던 공감을 느낄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리고 중반부에 주인공이 대학 친구인 혜인을 만나는 에피소드는 예체능 계에 있던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겪어봤을 것 같은 상황이라 내 일인 양 '아랑'의 감정에 동화되었다.

p.405
대단하다고?
나는 못할 거라고?
왜 못해.
닥치면 하지.
할 필요가 없으니까 못하는 거겠지.

p.417~423
"종일 돈 버는 일만 하다 보면 지치고 괜히 우울하기도 하더라고. 가끔 돈이랑 상관없는 작업도 하고 그런게 재미지. 학생 좋아하는 거 보니 좋네."
"혹시 전시도 하고 그러세요?"
"전시? 그럼~ 지금 하고 있잖아. 라이브 페인팅 퍼포먼스도 같이 하는 중인데. 호호호."

그날 할머니와 이런 저런이야기를 하면서 나를 슬프게 만들었던 건 네가 아니고 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나. 아랑. 아랑. 아랑이는 나를 슬프게 만들지 않을 거야.


그러나 <스트리트 페인터>는 주인공이 겪는 여러 난처한 상황들을 극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친구를 만나고서 자괴감에 빠져있다가 할머니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슬픔에서 빠져나오며 한 단계 또 성장하는 등, 어려움 뒤에 긍정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모습들이 책 전반에 걸쳐 과장 없이 그려져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이런 전개가 이 책을 '만화'가 아닌 '다큐'로 보이게 하지만, 그래서 더 위로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담담하게 어깨를 토닥여주는 친구처럼 말이다. 책을 다 읽고 덮고 나면, 심란했던 마음에 잔잔하고 따뜻한 파장을 일으켜 줄 것이다.



저자: 수신지
대학에서 서양화와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했다.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면서 주로 그림책 일러스트를 그렸고 스물일곱 살이 되던 해 겪은 암 투병을 계기로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투병기를 담담하게 그려 낸 작품 『3그램』은 서울 애니메이션 센터 지원작으로 선정되었으며 2012년 4월 프랑스에서 첫 출간되었다. 작가는 『3그램』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다수의 병원에서 릴레이 전시 <나의 병원 일기>를 열었으며 꾸준하게 만화를 발표했다. 2011년 단편 「반장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로 대한민국 창작만화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그림책으로는 『스트리트 페인터』는 그녀의 두 번째 장편 만화이다.


글, 사진: 땡스북스 김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