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22일 ~ 8월 28일
땡스북스 금주의 책

길 위에서 (On the road)
민음사
잭 케루악 (Jack Kerouac)

길에 선 청춘들의 초상
비트세대를 알게 된 것은 50년대 활발하게 활동하던 미국 시인 앨런 긴즈버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킬 유어 달링스(Kill your darlings)' 덕분이었다. 영화에 대한 줄거리는 거두절미하고 화면 속 비트세대의 작가들의 거침없고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분방함에 왠지 모를 매력을 느꼈다.
비트세대라는 용어는 잭 케루악이 처음 사용했다고 하는데 그 말인 즉슨 제2차 세계대전을 직접 체험한 세대로서, 전후 50년대와 60년대에 삶에 안주하지 못하고 사회로부터 매정한 대접(beating)을 받았던, 사회와 문화구조에 저항한 문학가, 예술가 그룹을 의미한다.
혹자는 그들이 세계적인 규모로 문화 혁명을 일으켰다고 말하기도 하고, 혹자는 그들을 비트닉스(beatniks)라는 조롱조로 놀리기도 했다. 그들에 대한 평가가 어떻든 간에, 비트세대는 사회비판적이고 과거와 미래 따위에 얽매이지 않는 찰나주의적인 관점을 갖고 있었고, 잭 케루악과 앨런 긴즈버그와 같은 주요인물은 자유롭고 비구성적인 창작을 지향했다. 때문에 작가가 작품에 대한 구상이나 수정없이 적어내려가는 방식이 그들의 시와 소설에 과감히 드러나 있다.

P.103
"소실리토에는 이탈리아인이 많을 거야라니!" 그는 턱에 숨이 차도록 소리쳤다. "와하하, 하하!" 그는 자기 가슴을 쾅쾅치고 침대에 쓰러지더니 거의 바닥을 구르다시피 했다. "파라다이스가 한 말 들었어? 소실리토에는 이탈리아인이 참 많을 거야? 아하하, 와하하! 와우! 휘!" 그는 너무 웃어서 홍당무처럼 빨개졌다. "나를 아주 잡는구나, 파라다이스. 너는 세상에서 제일 웃긴 녀석이야. 드디어 왔구나, 마침내 여기에 온 거야. 창문을 타고 넘어서 말이야. 너도 봤지, 리 앤. 내가 시킨 대로 창문을 타고 넘어 들어왔다고. 우후후! 하하!"


시인 엘런 긴즈버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잭 케루악의 소설 <길 위에서>는 그의 처녀작 이후 두 번째 장편소설이며, 그의 미국횡단 경험을 쓴 자전적 소설이다.
이야기는 주인공인 대학생이자 작가인 샐 파라다이스가 과거나 미래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지금을 위해 사는 청년 딘에게 자극받아 뉴욕에서 미 서부로 여행을 떠나면서 시작된다.
정확한 목적지없이 서부로 가겠다고 결심한 뒤, 히치하이킹하기도 하고, 폭우가 쏟아지는 날엔 얇은 천막에서 잠을 청하기도, 짧지만 강렬한 로맨스와 마주치기도 한다. 막무가내로 떠난 그의 여정이 안쓰러울 정도로 고되긴 하지만 거침없는 문장들을 읽다보면 현대인의 반복되는 일상과 틀에 맞춰진 삶의 방식이 얼마나 획일적이고 관습적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P.256
차를 몰고 떠날 때, 벌판에 서 있는 사람들이 점점 멀어지다가 결국엔 작은 점이 되어 사라져 버리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ㅡ너무도 거대한 세계가 우리에게 덮쳐 오는, 그것이 이별일까. 그럼에도 우리는 하늘 아래 펼쳐질 또 다른 광기 어린 모험을 향해 돌진한다.

P.225
딘과 메릴루와 에드가 자는 동안 나는 사우스캐롤라이나를 지나 조지아 주 메이컨을 통과했다. 밤중에 나만 홀로 깨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신성한 도로의 하얀 차선을 벗어나지 않게 조심조심하면서 달렸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어디로 가고 있는거야? 곧 알게 되겠지. 메이컨을 통과하고 나자 나는 기진맥진해서 운전을 교대해 달라고 딘을 깨웠다. 우리는 바깥 공기를 쐬기 위해 차에서 내렸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문득 주변이 온통 향기로운 풀밭과 신선한 분뇨와 따듯한 물로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자 우리 둘은 기쁨에 취해 멍해졌다. "남부에 왔다! 겨울을 벗어났어!" 희미한 새벽빛이 길가에 돋아난 푸른 싹들을 비췄다. 나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모빌 시로 가는 기관차가 울부짖으며 어둠을 가로 질렀다. 우리도 그렇게 했다. 나는 셔츠를 벗어 들고 기뻐 날뛰었다.


P.102
그날 아침 밀시티에서 만났을 때, 그는 여느 이십 대 중반의 젊은이처럼 지치고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승선 날을 기다리며 빈둥거리다가 먹고살기 위해 협곡 저쪽 막사에서 특수 경비원 일을 하고 있었다. 그의 여자인 리 앤은 험한 입으로 매일같이 레미에게 욕을 퍼부어 댔다. 그들은 일주일 내내 동전푼까지 아끼며 지내다가 매주 토요일이면 외출해서 세 시간 만에 50달러를 써 버리곤 했다. 레미는 요상한 군모를 머리에 쓴 채 반바지 차림으로 판잣집 주변을 돌아다녔다. 리 앤은 머리에 세트를 만 채로 동네를 활보했다. 그런 차림으로 그들은 매일같이 서로에게 고함을 질러 댔다. 나는 태어나서 사람들이 서로 그렇게 많이 으르렁대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토요일 밤이면 그들은 서로에게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근사한 할리우드 커플처럼 시내로 나갔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지 6개월이 흘렀다.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희생자들이 있고 여전히 정부는 책임을 회피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일상은 반복되고 있고 외적으로는 물 흐르듯 잘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내면적으로 모든 것이 무너져가고 있다. 이성과 논리는 급속도로 붕괴되고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무력감과 나약함을 느끼고 있다.
1950년대 비트세대가 히로시마 원폭 투하와 냉전, 쿠데타, 대학살을 목격하고 인류 스스로의 폭력과 파괴에 싫증과 역겨움을 느껴 체제 저항과 찰나주의를 추구한 것은 역사의 흐름상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내일을 보장받지 못하는 부패한 사회에서 우리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 거침없이 써내려간 그의 소설이 조용하고 무거운 여운을 준다.

P.29
거기서 난생처음으로, 오랫동안 동경해 왔던 미시시피 강을 보았다. 여른 안개 속의 미시시피 강은 가물어서 수위가 낮았고 지독한 냄새가 났다. 미시시피 강은 미국의 몸을 씻어 내리는 강이니, 이건 아마도 미국의 벗은 몸 냄새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 : 잭 케루악
1922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서 태어났다. 1940년 콜롬비아 대학교에 입학하나 학업을 중단하고 갖가지 직업을 전전하다 2차 세계대전에 해군으로 참전한다. 종전 후 대학교를 자퇴하고 작가 윌리엄 버로스, 닐 캐시디, 앨런 긴즈버그 등과 함께 미국 서부와 멕시코를 도보로 여행한다. 이때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길 위에서』가 1957년 출간되자 당시 젊은이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얻으며 케루악은 소위 '비트 세대'를 주도하는 작가로 단숨에 자리매김한다. 형식에 구대받지 않은 즉흥적인 문체, 거침없이 역동하는 재즈와 맘보의 리듬, 끓어오르는 에너지와 호기심으로 가득한 이 작품은 이후 문학과 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소설의 가치관에 감흥을 받은 젊은이들은 도취의 세계를 찾아 전국을 방랑하면서 1960년대 히피 운동을 탄생시키는 도화선을 만들었다. 이어 그는 『달마 부랑자』, 『외로운 여행자』, 『빅 서』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1969년 4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글, 사진: 땡스북스 최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