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29일 ~ 6월 4일
땡스북스 금주의 책

마술 라디오
한겨레출판
정혜윤 지음

말하지 못한, 하지만 가장 진실한 가슴속 말들.
누구나의 가슴속에는 마술 라디오가 한 대씩 들어 있다.

“이 이야기들에는 여백이 아주 많아. 여백에 새로운 주석을 달듯 자신의 이야기를 채워나가길 바라. 그게 마술 라디오의 좋은 점이잖아. 그러다가 어느 순간 우리는 아주 깊게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거야. 아주 깊게 대화를 나눌 수만 있다면, 아주 깊게 들을 수만 있다면, 아주 깊게 말할 수만 있다면, 그다음에 우리에게는 아주 멋진 일이 일어날 거야. 왜냐하면 남는 것은 사랑하는 일뿐이니까.”


그녀는 이 책을 통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러나 대화를 나눠보면 흔히 볼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서 들은 이야기들을 전한다. 〈무지한 스승〉이라는 다큐를 만들다가 만난 통영 경매사와 그가 가장 좋아한다는 어부, 낚시가 인생의 세 가지 즐거움을 알게 해줬다는 빠삐용이란 별명을 가진 아이의 아버지, 후쿠시마 방사능 유출 사고 때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피해자들과 후손들을 취재하다가 만난 사람들, 비정규직 문제를 취재하다가 일본에서 만난 유아사 마코토, 여자 친구를 구하러 가는 도중에 만난 인생의 두 갈래 길을 여전히 기억하고 사는 선배, 사람이 살지 않는 산골로 간 중년 부부, 사랑이 끝난 걸 뒤늦게 깨닫고 괴로워하던 중 우연찮게 만난 음식으로 인해 새로운 길을 가게 된 한 남자, 사라져버린 라디오를 찾는 한쪽 눈이 먼 남자, 한 귀퉁이에 밀어놓았던 브람스의 4번 교향곡을 백 번 듣다가 인생에 대한 무언가를 깨달은 한 남자, 책을 읽고 가슴에 남은 글귀를 새긴 장승들을 마을 입구에 세우는 촌로(村老), 일흔여덟에 노인 대학에 간 강장군 할머니,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을 취재할 때 만난 송전탑 위 한상균 지부장, 제주도에서 만난 전설의 낚시꾼, 찬바람 맞으며 굴 캐는 간월도의 아낙들, 바람 한 점 없이 무척 더운 날 만난 재래시장 사람들, 엄마의 떡집을 물려받은 아주머니, 야채 장수 경숙이 언니, 제주도에서 만난 해녀와 해녀의 아들과 딸……. 그녀가 전해주는 이야기는 우리 자신과 주변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하고, 삶의 비밀과 진실을 발견하게 만든다.




P.50~51
사실 내 가슴속에는 라디오 한 대가 있을 수도 있어. 그것은 내가 들은 이야기들로 이뤄진 라디오일 거야. 내 가슴속이 아니라면 어디에도 존재한 적 없는 라디오일 거야.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쩐지 사람들 가슴속에도 라디오가 한 대씩 들어 있는 것 같단 말이지. 그 라디오는 자신들이 살면서 들은 이야기들, 그런데 잊히지 않는 이야기들, 잘했건 아쉽건 자랑스럽든 후회되든 잊히지 않고 반복적으로 혹은 기습적으로 생각나는 이야기들로 이뤄져 있겠지. 그 이야기들에는 애틋함이나 후회스러움, 자긍심, 그리움, 소망이 섞여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도 복잡한 느낌을 줄 거야.




P.23
하지만 돌이켜보면 박스팝은 나에게 도움이 되었어. 나는 반복적인 질문에 대해서 좀 알게 되었을 수도 있어. 질문은 같아도 대답은 다양하더라는 말이 아니야. 질문은 같아도 예상을 벗어나는 말은 늘 있었어. 우리의 타인에 대한 상상력은 늘 우리를 배신해. 타인은 우리의 상상력보다 클 수 있어. 나는 예측할 수 없음에 열광하게 되었어. 반복적인 질문을 몇 천 번이나 던져본 다음에 말이야.

이 마술 같은 이야기들은 놀라운 삶의 지혜를 들려준다.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깨닫게 해준다. 또한 그녀가 읽어온 책 속 이야기들과 섞이면서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P.48
내가 이 대화를 소개하는 이유는 ‘듣고 묻는 자’, 이게 라디오 피디이기 때문이야. (......)
이렇게 묻고 듣고 다니면서 알게 된 것이 있어. 인간은 어떤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란 거야. 확신에 가득 찬 사람이 아니라 의심하고 동요하면서도 찾고 추구하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만이 생생하게 살아 있었어. 인간은 어떤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사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야. ‘인간은 대답을 추구하는 질문’이란 말이 있어.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 살게 하고 움직이게 하고 이것이 삶의 형태를 만들어.




그녀는 이 책 《마술 라디오》를 통해 그녀의 마음속에도 이야기의 왕국이 있다는 것을, 잊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자신의 마음속에 수천 개의 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 주인공들 모두를 하나하나 엄청나게 귀하게 여긴다. 이 책을 통해 그녀는 마음속 주인공들과 함께 한바탕 방송을 만들고 있었는지도 모르며, 이야기를 통해 그녀는 할머니가 되고 어부가 되고 야채 장수가 되고 해녀가 되었던 것도 같다. 이 책에서 정혜윤은 그녀가 하려는 이야기들을 듣는 순간 다 듣기도 전에 잊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직감으로 알고 있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들 안에 진실로 진실로 이루고 싶은 세 가지 소원이 다 들어 있다고 말한다. 더불어 에필로그에서는 오랫동안 라디오 피디로 살아오면서 인생에서 소중한 몇 가지를 배웠다고 이야기해준다. 완벽함과 한계와 믿음과 상상력과 반복과 시간에 관해서, 또다시 살기 위해서 필요로 했던 스스로의 마술에 대해서 들려준다.




P.151
“나는 그때 네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어. 나는 삶에서 뭘 느끼고 싶어 할까? 내 마음의 주파수가 있을까? 내가 삶에 짓눌리지 않고 추구하는 어떤 멋이란 게 있을까? 그런 게 있다면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나? 내 인생의 질문. 그것은 ‘내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 그거였어. 나는 행복해지고 싶었지.”




정혜윤은 누구든 적어도 한 사람에게라도,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자신의 존재를 열어 보여야 한다고 믿고, 속 시원히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결국 이 책은 우리 보통의 인간 존재의 이야기, 우리 보통의 인간 존재가 만드는 마술 같은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이 책에는 책 속 이야기와 대화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더하여 채우고, 그것으로 다시 대화를 나누고 또 채울 수 있을 정도로 여백이 많다. 그녀는 그 여백들을 같이 채워나가길 바란다.




P.291
‘살아가는 것을 쉽게 해주진 않지만 더 괜찮게 여기게 해준다!’라는 그녀의 말을 들으니 이런 질문이 들었어. 왜 우리는 감동적인 이야기, 진실되고 놀라운 이야기에 마음을 움직일까? 그런 삶을 살아낸 사람들에게 감탄할까? 그 이야기들은 대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나는 이것이 우리 마음의 균형 잡기라고 생각해. 이런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우리는 우리 마음의 어두움을 걷어내고 밝음 쪽으로 향해. 우리는 추락도 하지만 비상하기를 꿈꾸는 존재이기도 해. 인간은 지극히 사소한 말이나 행동에도 산산조각나지만 또 지극히 사소한 계기로도 자신을 일으켜 세울 줄도 알아. 바로 그런 전환의 순간에 균형점이 되는 이야기들, 사람들이 주위에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구원이야.







저자: 정혜윤
CBS 라디오 피디. 원래 기자가 되고 싶어서 언론사 시험을 계속 보다가 동생이 PD로 대신 원서를 내어 우연찮게 PD의 길로 입문하게 되었다고 한다. 「양희은의 정보시대」, 「정재환의 행복을 찾습니다」, 「최보은의 서울에서 평양까지」, 「김어준의 저공비행」,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 「공지영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 「이상벽의 뉴스매거진 오늘」, 「행복한 책읽기」, 「김미화의 여러분」 외 다수의 국내외 특집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제40회 한국 방송대상 라디오 작품상, 2012 방송통신위원회 방송대상 우수상, 2013 방송통신위원회 방송대상 우수상, 제10회 한국 방송프로듀서상 작품상, 제18회 한국 방송프로듀서상 작품상,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 이달의 프로듀서상 등을 수상했다.

'지상에서 가장 관능적인 독서기'라는 부제를 단 『침대와 책』으로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이 책은 온라인서점 YES24의 웹진에 최고의 조회수를 얻으며 독서광들의 호응을 얻어낸 칼럼 '침대와 책'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침대 속에서 책을 읽으며 호기심과 설렘으로 충만했던 저자의 독서기를 수록한 작품이다. 또한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로 독서광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저널리즘에 발 딛고 문학적 풍요로움을 향해 나아가는 저서『그의 슬픔과 기쁨』에서, 저자는 ‘르포르타주 에세이’라는 장르를 통해 ‘인간의 깊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밖의 저서로는 『침대와 책』,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런던을 속삭여줄게』,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 『여행, 혹은 여행처럼』, 『삶을 바꾸는 책 읽기』, 『사생활의 천재들』 『마술 라디오』등이 있다.

글: 한겨레출판 편집부
사진 구성: 땡스북스 최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