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25일 ~ 12월 31일
땡스북스 금주의 책

나의 우주는 아직 멀다
이봄
마스다 미리 저, 박정임 역

2015년 12월 31일을 끝으로 땡스북스를 퇴사한다. '퇴사'라기보다는 어쩐지 '졸업'이라는 단어가 더 와닿는 것 같긴 하지만… 마지막으로 쓰는 '금주의 책'이라고 하니 좀 더 신중히 골라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책을 들었다 놨다 하기를 여러 번 반복하다가 결국 이 책을 골랐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가장 좋아하는 작품. 마스다 미리의 『나의 우주는 아직 멀다』.

마스다 미리의 만화는 그림체도 간결하고 한두 시간이면 쓱 읽을 수 있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놓치고 마는 작은 행동이나 대수롭지 않은 감정을 포착해서 그것에 의미를 찾아주고 따뜻하게 쓰다듬어 준달까. 따뜻하고 소중하고 뭉클한 그런 마음이 네모난 컷 안에 담겨 있어 한 장 한 장 아껴 읽고 싶다.

『나의 우주는 아직 멀다』 역시 경력 10년의 서점 직원 쓰치다의 일기를 마스다 미리스럽게 풀어낸 만화다. 책의 판매 순위를 알 수 있는 핸디터미널이라는 기계로 자신의 인생 순위를 생각한다거나, 다른 서점에 들러 진열을 살피는 와중에도 비뚤어진 띠지를 바로잡는 장면처럼 서점 직원의 일상을 엿보는 재미가 가득하다.

P.5-9
“쓰치다 씨. 핸디터미널 좀 잠깐 빌려주세요.”
‘핸디터미널’이란 책 바코드를 삐익- 하고 찍으면 판매 순위를 알 수 있는 기계로, 책 주문량이나 진열 방식을 결정할 때 그리고 책을 반품시킬 때 유용하게 쓰인다. (중략)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 더불어 내일의 나도 핸디터미널로 삐익- 하고 찍으면 여전히 같은 순위일까. 인간의 순위를 알 수 있는 기계가 있다면 나는 어느 부근일까.”

P.20-21
“저기… 오늘은 손님이 많네요.”
“월급날은 매장이 늘 북적댑니다.”
매달 월급날이 되면 서점에 손님이 평상시보다 많다는 사실을, 입사하고 처음 알았을 때 난, 감동했었지. 착실하게 일을 하고 월급날이면 책을 사러오는 성인이 이렇게다 많다니 뭔가, 굉장히 멋지구나, 하는 생각에 울 뻔 했었지.


선물할 책을 골라달라는 손님의 부탁을 받고 열심히 추천한 책을 사 간다거나,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을 가장 먼저 읽는 기쁨을 누린다거나, 어떻게 하면 이 책의 매력을 전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진열한 책에 반응이 온다거나… 서점원으로 일하면서 뭉클했던 순간은 역시 책을 전하는 보람을 느꼈을 때다.

지난 5월, 평소 내가 응원하는 출판사 대표님으로부터 메일 한 통을 받았다. 언론에 이렇다 하게 소개가 된 것도 아니고, 저자가 유명한 분도 아닌데 두 달 만에 초판을 다 팔고 2쇄를 찍게 되었다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더니 책이 나오기 전부터 관심을 보였던 내가 떠올랐다고 했다. 처음 책을 진열한 곳도 땡스북스였고 가장 먼저 반응이 온 곳도 땡스북스였다고, 서점원의 책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책의 운명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수백만 원의 보너스를 받은 것보다 더 기뻤던 한 통의 메일.

P.68-69
“저 서점에 가는 거 좋아해요. 지금은 가라오케에 가도 기계로 선곡을 하잖아요. 기계로 바뀌고 굉장히 따분해졌어요. 두꺼운 노래방책을 팔랑팔랑 넘겨가며 골랐던 때는 ‘아, 이런 노래도 있네! 불러볼까’ 하며 자유로웠죠. 그래서 책을 인터넷으로 구입하면 조금 무미건조한 느낌. 서점을 어슬렁거리며 ‘이런 책이 있네! 읽어보고 싶어’ 하는 거 저, 좋아해요.”

오프라인 서점에는 온라인 서점의 총알 배송과 할인 혜택 같은 편리성과 효율성은 없다. 그렇지만 온라인 서점에 없는 서점원의 책을 다루는 마음이 있다. 서점은 그날의 날씨에 따라 계절의 흐름에 따라 그리고 이 공간을 꾸려가는 사람들의 생각에 따라 알게 모르게 작은 변화들로 채워진다. 『나의 우주는 아직 멀다』에서 죽은 손녀의 영전에 좋아하던 만화를 올려주려고 찾아온 할아버지 손님께 잠시 기다려달라고 말하고 꽃을 선물하는 모습이나, 그림책 코너에 어린이용 의자를 놓고 그림책을 읽어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은 오직 오프라인 서점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마음을 담아 책을 전할 수 있었던 땡스북스에서의 3년은 나에게도 소중한 시간이었다.

P.181-182
어떤 인생으로 완성해 갈 것인지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오히려 인생 쪽에서 ‘어떻게 할 거야?’ 하고 내게 묻고 있는 기분이랄까. 그 물음에 또박또박 대답하다보면 나의 인생이 된다.

‘따뜻한 책은 어떤 것일까?’, '인생의 의미는 뭘까' 하고 고민하는 쓰치다를 통해 내 삶과 마주 본다. 또다시 인생은 나에게 “어떻게 할 거야?” 하고 묻고 있다. 지나온 날들을 정리하고 새롭게 꾸려갈 날들을 준비하는 시간. 나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책으로 대답하는 인생을 만들어 갈 것이다.

그동안 정말 고마웠습니다. Thanks, thanksbooks :)



저자 : 마스다 미리
1969년 오사카 출생.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 에세이스트. 진솔함과 담백한 위트로 진한 감동을 준 만화 ‘수짱 시리즈’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화제의 작가로 떠올랐다. ‘수짱 시리즈’와 더불어 수많은 공감만화와 에세이로 많은 사랑을 받으며 3,40대 여성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고 있다.
마스다 미리의 만화 작품으로는 대표작인 수짱 시리즈(전 4종)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아무래도 싫은 사람>, <수짱의 연애> 등이 있으며, 이중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는 2014년 부천만화대상에서 해외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한 <어느 날 문득 어른이 되었습니다>, <여자라는 생물>, <나는 사랑을 하고 있어>, <잠깐 저기까지만,>, <오늘도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뭉클하면 안 되나요?> 등의 에세이를 통해 친근하고 따뜻한 언니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역자 : 박정임
경희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일본 지바 대학에서 일본근대문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출판기획과 번역을 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방랑의 미식가』, 마스다 미리의 ‘수짱 시리즈’를 비롯한 다니구치 지로의 『고독한 미식가』, 『산책』, 요코야마 히데오의 『클라이머즈 하이』, 기타모리 고의 『꽃 아래 봄에 죽기를』, 온다 리쿠의 『로미오와 로미오는 영원히』, 그리고 『미야자와 겐지 전집1·2·3』 등이 있다.

글, 사진: 땡스북스 정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