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16일 ~ 1월 22일
땡스북스 금주의 책

러닝 라이크 어 걸
책세상
알렉산드라 헤민슬리 지음 / 노지양 옮김

"운동화를 신고 문을 열고 나가기만 하면 된다. 이것이 바로 달리기의 아름다움이다."

올해도 변함없이 작년보다 좀 더 나은 인간이 되고자 하는 바람과 각오로 새해를 맞이했다. 하지만 대개 그것들은 새로운 계획과 각오라 말하기엔 다소 민망한, 마치 연례행사처럼 반복되어오고 있는 것들이다. 예를 들자면 운동이나, 운동이라던가, 운동 같은 것들 말이다. 그렇게 나는 여전히 뻔뻔한 모습으로『러닝 라이크 어 걸』을 집어 들었다. 매주 월요일을 기점으로 다이어트와 운동에 대한 각오를 다져온 사람으로서 패션잡지의 다이어트 섹션을 오려둔다거나, 인터넷에 올라온 스쿼트 동영상을 스크랩해본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운동에 대한 본격적인 책을 읽어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게다가 달리기라니!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대체 왜 달려야 하느냐는 생각을 가진 내겐 이해할 수 없는 운동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따로 있었다. 바로『원스 어 러너』라는 소설 때문이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육상팀 소속의 퀜튼은 코치 델튼의 훈련 지시로 불가능이라 여겼던 한계까지 자신을 몰아붙이며 희열을 느끼게 된다. 고된 훈련으로 피오줌을 싸고 엉엉 울면서도 실력이 정점에 오른 순간 그는 생명력이 넘치고, 놀랍도록 빠르고, 불멸의 존재에 가까워진 것 같다고 느끼며 그는 삶이 지금처럼 사무치게 슬픈 순간은 다시 없을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자신의 몸을 긍정적인 의미에서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모습을 보며, 운동을 통한 순수한 기쁨과 고통, 그 성취감과 쾌감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운동 자체의 필요성 때문만이 아니라 슬럼프에 빠지거나 우울한 감정에 휩싸일 때마다 술과 자기 비난으로 탈출구를 찾고 그 후에 불어닥치는 허무함과 자괴감까지 감당해야 했던 내게 꼭 필요한 해결책이 되어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P.39
한마디로 달리기란 숙취와 정반대의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술을 마실 때 느끼는 황홀과 마법과 흥분의 지속 시간은 무척 짧다. 딱 좋을 정도의 취기는 2시간 정도 이어지고, 아주 길어야 3시간 정도면 끝난다. 그러다가 곧 속이 불편해지고 메스꺼워지면서 그 상태가 지겨워져 빨리 깨고 싶어진다. 끔찍한 숙취는 또 어떤가. 고작 몇 시간 흥청망청 즐겼다는 이유로 다음 날 하루 종일, 혹은 이틀까지도 괴로움이 이어진다. 달리기는 그 반대다. 달리면서 느끼는 고통은 짧지만 그로 인해 좋은 컨디션이 유지되는 시간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길다. 내게서 빛이 나는 것 같다. 나 자신이 천하무적으로 느껴진다. 이 정도면 다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P.8
달리는 그 길에서 나를 짓누르던, 얽히고 설킨 실타래 같던 감정이 나조차도 이해 못할 방식으로 스르르 풀려버리는 마법 같은 경험을 하기도 한다. 또 때로는 내가 상상하지도 못한 차원의 감정으로 깊숙이 들어가기도 한다.

저자인 헤민슬리는 갑작스러운 제부의 수술, 여동생의 출산, 조카의 탄생 등이 몰아친 드라마틱한 열흘을 보낸 후 '로열 파크 하프 마라톤'에 참가하게 된다. 출발과 동시에 눈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들을 바라보며 달리던 그녀의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유 모를 그 눈물은 점점 흐느낌으로 바뀌고 있었고, 마지막 지점에선 아예 엉엉 소리내어 울며 결승점을 통과하게 된다. 모두 다 해결되었기에 잊었다고 생각했던 일이지만, 그 시간 동안 억눌러온 감정들과 긴장감이 달림과 동시에 물밀 듯이 되살아난 것이다. 그 어마어마한 슬픔을 달림으로 소화해가며 그녀는 힘차게 뛰는 심장과 함께 생명의 경이로움에 대해 감격한다. 건방진 소리일지 모르지만 나는 이 프롤로그를 읽으며 달리기가 그녀에게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 얼추 짐작할 수 있었다. 단 한 번도 스스로 달려본 적이 없었던 내가 그녀의 달리는 이야기를 읽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딘가를 달리고 있는 모든 러너들에게는 비밀이 하나 있다. 그들이 달리는 것이 사실 몸 때문이 아니라 마음 때문이라는 것이다."

P.7
저 무지개 끝에 있는 진짜 보물은, 집을 나서면서 과연 오늘은 내 앞에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얼마나 달릴 수 있을까, 몇 분을 더 달릴까, 몇 개의 가로등을 더 지나칠까, 한번에 몇 킬로미터까지 갈까 알지 못하는 데서 오는 기대 섞인 떨림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길 위에서 달리기를 더 잘하는 법이 아니라 인생을 더 잘 사는 법에 대해 배우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달리기'라는 것이, 아니 어쩌면 모든 종류의 운동이 몸을 단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단련하기 위함임을 알게 되었다. 운동을 제대로 하거나 알고 있는 이들은 이미 몸소 느낀 점이겠지만, 나는 이제야 비로소 운동이 단순한 '육체적 훈련'이 아닌 '정신적 치유'의 활동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누구나 러너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움직이도록 만들어졌다. 우리는 달리게 되어 있다. 달리기는 세상에서 가장 쉬운 스포츠다."
- 빌 로저스

헤민슬리 역시 평범한 여자였다. 친구들과 놀기를 좋아하고 맛있는 음식 먹기를 즐기며, 달리기를 자학적인 취미로 여기던 30대의 싱글녀가 6년 동안 1500킬로미터를 달리고, 5번의 마라톤을 완주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물론 그녀에게도 계기는 있었다. 실연을 당한 어느 여름, 지독한 우울증에 시달리며 걷기를 시작한 그녀는 그 시간을 통해 자신을 괴롭히던 수만 가지 생각 속에서 풀려나게 되고, 가벼워진 마음과 숙면을 얻으며 '걷기'를 넘어 '뛰기'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달리기를 결심한 그녀 역시 시작과 동시에 달리기로 한 것을 후회하게 된다.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가 가슴과 허벅지, 엉덩이를 민망하게 출렁대며 뛰는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았고, 얼마 뛰지도 않았는데 벌써 통증이 느껴지는 신체 부위에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결국 그녀의 첫 번째 달리기는 '수치, 고통, 분노'로 이루어진 3종 세트와 다음날 아침의 부서질 듯한 고통만을 남기고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가족들과의 자리에서 남동생이 런던 마라톤에 참가하겠다는 말에 이미 수차례 마라톤을 완주한 경험이 있던 아빠가 헤민슬리에게도 마라톤 참가를 권유하게 된다. 말도 안 된다며 자신은 못 달린다는 그녀의 말에 아빠는 "안 달리는 거지. 넌 충분히 할 수 있어."라고 말한다. 아빠의 흔들림 없는 목소리에 그녀는 자신을 달리지 못하게 하는 것은 자신 말고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다음날 식구들 앞에서 '런던 마라톤' 참가를 선언한다.


그렇게 그녀는 달리기에 익숙해지면서 행인들의 시선에도 점점 무뎌지고, 인터넷을 통해 초보 러너들의 정보를 공유해가며 달리고 또 달렸다. 한달이 지난 후 체중계의 눈금과 함께 그녀의 달리기는 고문에서 기쁨 쪽으로, 느리지만 확실하게 옮겨가고 있었다. 물론 시행착오도 많았다. 올바른 호흡을 하지 않고, 페이스 조절법도 잘 알지 못해서 온 몸이 아프기도 했고, 달리다가 화장실을 찾는 일, 러닝 타이츠가 찢어지는 일들도 종종 일어났다. 자신에게 잘 맞는 운동화도 너무 작은 운동화를 신고 10마일을 달린 탓에 엄지발톱 두 개가 짙은 남색으로 변한 것을 보았을 때에서야 장만하게 되었다. 그렇게 그녀는 여러 과정을 거쳐 새 운동화와 적절한 스포츠 브라, 질좋은 압박양말 등 이상하고도 놀라운 스포츠웨어까지 천천히 섭렵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P.101~102
나는 달리기를 하면서 세상이 더 작게 느껴졌고 내 두 발로 갈 수 있는 영역이 늘어났다는 것이 좋았다.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의 왼쪽에서 성큼성큼 올라갈 수 있다는 것, 일정한 호흡과 힘찬 다리로 원하는 곳이 어디건 더 빨리 쉽게 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나만의 내밀한 기쁨이 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 몸이 변하면서 내 몸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내 관점도 바뀌기 시작했다. 내 안의 남성적인 면이 발달하기 시작했고, 치열한 면도 약간은 생겼다. (...) 또 하나 놀라웠던 건 나의 이 새로운 지식과 넘치는 기개 때문에 내가 소외감을 느끼게 된 것이 아니라 이를 계기로 오히려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 새로 얻은 자신감은 여자 친구들과의 관계에도 자연스레 적용되었다. 그들에게 존중받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계획을 세웠으면 반드시 지켰고 시작을 했으면 끝까지 해냈다. 나는 내 안의 남성적인 면을 껴안으면서 더 나은 여성이 되어갔다. 그럼으로써 내게 목표와 꿈이 있고 그것을 성취하는 데 어떤 끈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P.105
나의 시선은 점차 세상 밖으로 향했다. 달리면서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다 내가 그 길에서 무엇을 보는지를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내 몸의 변화보다 계절의 변화를 지켜보는 것이 더 흥미로워졌다. 이제 내게 달리기란 마라톤을 반드시 완주해 나를 증명하기 위한 것도, 아빠를 감동시키거나 남자들에게 괜찮은 여자로 보이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나는 내 자신을 이해하고 내 자신에게 집중하기 위해, 내 인생 모든 영역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상기시키고 그 목표를 이루도록 스스로 채찍질하기 위해 달렸다.


드디어 그녀의 첫 목표였던 '런던 마라톤' 당일. 기능성 원단의 스포츠웨어에 숫자 하나씩을 달고 있는 사람들이 채링 크로스에 파도처럼 밀려들고 있었다. 길가에서 응원하는 이들의 쏟아지는 함성에 흥분을 감출 수 없었던 그녀는 시작 지점에서 얼마 가지 않아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창피함과 함께 다리와 어깨, 팔꿈치, 손가락까지 통증이 저며오기 시작했다. 응급처치 후 다시 열심히 달려보았지만 내리는 비에 몸은 무거워지고, 머릿속으론 포기에 대한 온갖 합리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자신을 향해 외치는 가족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딸 파이팅! 지금 잘하고 있어. 동생하고 그렇게 많이 차이 안 나! 계속 달려라, 우리 씩씩한 딸! 동생을 따라잡아서 남자들에게 우리 집안 여자들의 힘을 보여주자!”
“힘내, 계속 가. 고통 앞에서 웃는 거야!”

사람들이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그 몇 초 동안이, 그녀를 응원하기 위해 그들이 내내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내가 할 수 있다고 믿어주고 설사 하지 못하더라도 거기 날 위해 있어줄 거라는 믿음이 그녀를 달리게 한 것이다. 그렇게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그녀는 생각했다. '다음에는 더 빨리 뛸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미 그녀는 러너의 세계에 발을 디딘 것이다.


책의 2부에서는 "달리기를 하면 무릎이 망가지나요?", "달리기를 하면 가슴이 처지나요?" 등 달리기에 대한 궁금증에 대한 답변과 달리기를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에 대한 친절하고 상세한 조언이 실려있다.


물론 그 후 그녀에게도 마라톤에 대한 싫증과 권태, 회의감 등의 고비가 찾아왔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달렸고, 그녀의 주변인들에게 달리기를 전파하였다. 그녀는 말한다. "달림으로써 우리는 한번 해보겠다는 결심을 하고, 자신의 기대를 넘어서며, 가끔은 그 기대를 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힘을 얻는다. 당신이 가진 줄 몰랐던 가족 간의 사랑과 유대를 발견하게끔 해주고, 당신이 가고 싶은 곳에 갈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도록 스스로를 훈련하게끔 한다. 달리면서 당신은 처음 보는 사람과 스스럼없이 얼싸안을 수 있고, 가장 사랑하는 이들을 온전히 이해하게 된다."라고.
달리기는 상상 이상의 쾌감과 자신에 대한 믿음과 기대 못한 우정을 얻을 수 있는 원천이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부록처럼 선사하는 유연한 신체와 명징한 정신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자, 이제 충분한 자극도 받았고 기초 지식까지 확실히 흡수하였다.
어떻게 달리기를 하게 되었냐는 질문에 "내가 그렇게 하겠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던 그녀처럼 우리 또한 스스로 결정을 내릴 때가 왔다.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보자. 매일 보았던 길과 풍경들이 우리에게 또 다른 세상을 선물할 것이다.

“레이스를 끝내는 순간은 나를 정의내리는 순간이었다. 내가 그 압력을 견뎌낼 수 있다면 나는 앞으로 내가 원하는 대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었다.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다.”
- 줄리아 체이스 브랜드



저자 : 알렉산드라 헤민슬리 Alexandra Heminsley
출판계에서 6년간 일한 뒤 현재는 프리랜서 기자, 방송인,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영국판《엘르》의 객원 에디터로 주로 책 관련 리뷰를 쓰고 있다. 그 외에도 《그라치아》 《레드》 《인디펜던트 온 선데이》 등의 잡지 및 신문에 기고하고 있으며, BBC라디오2의 교양 프로그램〈클라우디아 윙클먼의 아트 쇼Claudia Winkleman Art’s Show〉 작가로 활동 중이다. 코스타 문학상 심사위원을 지냈다. 실연의 공포를 솔직하고 재미있게 파헤친 《엑스 앤드 더 시티 : 차여봐야 비로소 사람이 된다Ex and the City : You’re Nobody Till Somebody dumps you》와 《행 더 디제
이 : 음악 목록에 대한 대안적인 책Hang the DJ : An Alternative Book of Music Lists》(공저) 등의 책을 썼다. 2007년 달리기를 시작해 런던 마라톤, 샌프란시스코 나이키 우먼스 마라톤 등에 참가하며 다섯 차례 마라톤을 완주했다. 현재 영국 브라이턴에 살면서 달리기로 얻은 긍정적인 삶의 에너지를 수많은 예비 러너들에게 전파하고 있다.

역자 : 노지양
자유 방목형 전문 번역가.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KBS 라디오 ‘유열의 음악 앨범’, ‘황정민의 FM 대행진’ 등에서 방송작가 활동을 했으며 현재는 전문 번역가로 일하고 있다. 번역서로는 『CEO의 저녁 식탁』, 『믿는 만큼 이루어진다』, 『성찰』, 『낯설지 않은 아이들』, 『결혼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보헤미안의 파리』,『좋은 것에 집중하라』, 『스타일 중독자들』, 『남자매뉴얼』, 『레이첼 조의 스타일 시크릿』,『마음에게 말 걸기』,『네가 있어 행복해』『세상 모든 행복』, 『스틸 미싱』, 『고양이 제시, 너를 안았을 때』,『나는 왜 패션을 사랑하는가』등이 있다.

글, 사진: 땡스북스 최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