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27일 ~ 7월 3일
땡스북스 금주의 책

실내인간

이석원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하여 평생을 반대 방향으로 달려온
한 남자의 이야기

4년 전, 서른여덟의 작가 이석원은 첫 산문집 "보통의 존재"를 통해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정밀하게 한 인간의 내면과 일상의 풍경을 보여주었다. 그가 꺼내놓은 내밀한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잊고 있었던 외로움과 심연을 맞이했고, 그의 이야기가 곧 자신의 이야기와 같음을 느꼈다.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랐을 때 머릿속에는 이 말 한마디가 맴돌았다. ‘우리가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결국에는 보통의 존재로밖엔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그 사실은 특별하지 않은 삶을 사는 우리들에게 위로가 되었고 평범한 생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게 했다. 그렇게 ‘보통의 존재’에 대해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했던 작가 이석원이 4년 만에 장편소설 『실내인간』으로 돌아왔다.


스스로를 밀실에 가둬버린 남자의 고백,
우리는 무엇으로 우리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을까?

이석원의 글은 빠르게, 그리고 선명하게 읽힌다. 4년간 치밀하게 설계된 이야기에 재미를 더하는 독특한 사건, 사고들. 그러면서도 "보통의 존재"가 그랬던 것처럼 독자를 순간순간 멈춰 서게 하는 짙은 여운들.


“정말 사랑했던 사람하고는 영원히 못 헤어져.
누굴 만나든 그저 무덤 위에 또 무덤을 쌓는 것뿐이지.”

이야기는 실연의 상처를 입은 주인공 용우가 낯선 곳으로 이사를 가 앞집에 사는 한 남자를 알게 되면서 시작된다. 활달하지만 의존적이며 유약한 성품을 지닌 용우는 안 그래도 상처투성이인 상황에서 돌과 같이 단단한 성품에 낙천적이며 유머까지 넘치는 남자의 등장에 열광하며 친형처럼 따르게 된다. 『실내인간』은 바로 용우가 만난 이 사내 김용휘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소설은 용우의 시선으로 본 한 사람의 기상천외한 삶을 통해 자신이 쌓은 탑에 갇혀버린 한 존재의 허망한 모습을 속도감 있는 서사와 섬세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P.19
“뭐 그건 잘 모르겠고, 하여간 옥상만 안 쓰면 된다 그래요.”
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까짓 옥상 안 쓰면 그만이지. 조금 의아하긴 했지만 나는 그길로 부동산 사무소로 달려가 계약을 했다. 집주인은 오지 않았지만 등기부 등본은 대출 하나 받은 것 없이 깨끗했고, 어쨌든 서울에서 계속 살 수 있게 된 것이 기뻤다. 여전히 난, 서울을 벗어나게 되면 그애와 정말로 멀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었기에.


P.56
“죽도록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지고 나면 다른 사람과 하는 첫번째 섹스에서 사람은 아득한 슬픔을 느끼지. 난 삼 년 전에 이별을 했거든. 좋아했어. 정말 많이. 그런데 헤어졌어. 헤어지는 데 이유가 있나? 있다 해도 그건 누구도 알 수 없는 거야. 난 내 몸 위에 포개져 있는 여자의 벗은 몸을 보면서도 그녀와 내가 왜 헤어졌어야 했는가를 생각하고 있었지. 아니 오히려 더 또렷해졌다고 할까? 난 궁금했어. 도대체 왜 이런 곳에서 이 낯선 여자와 내가 한 침대에 있는 거지? 왜 넌 날 이렇게 내버려두는 거지?”

P.64
“고통을 견디는 법은 한 가지밖에 없어. 그저 견디는 거야. 단, 지금 아무리 괴로워 죽을 것 같아도 언젠가 이 모든 게 지나가고 다시 내 마음이 편안해지는 순간이 오리라는 믿음. 그거만 저버리지 않으면 돼. 어쩌면 그게 사랑보다 더 중요할지도 몰라.”
“내가 그런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아저씨.”
“믿어. 믿으면 아무도 널 어쩌지 못해.”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나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다. 소설은 자신이 알고 있다고 믿는 누군가의 모습이 사실은 진짜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면서, 아니 어떤 게 진짜인지조차 모르는 상황에 이르게 되면서 독자들을 웃을 수도 슬퍼할 수도 없는 상태로 몰아간다.
그리고 묻는다. 우리가 옳다고 믿으며 살아가는 것, 소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살아가고 있는 것들이 과연 얼마나 옳고, 의미 있는 것인지를. 또한 사람이 다른 누군가를 이해한다고 믿는 것이 얼마나 착각인지를, 그리고 정말로 사랑했던 사람을 잊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를.


P.140
이런 그에게 제롬은 어느 날 ‘실내인간’이란 별명을 붙여주었다.
“실내인간? 실내에만 있으려고 해서?”
“아니.”
녀석은 말했다. 그런 게 아니라, 자기가 정해놓은 틀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가려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그러면서 녀석은 그에 대한 정신과적인 해석도 덧붙였다. 그는 자기가 익숙한 곳, 다시 말해 자신의 능력과 자신감이 최고로 발휘될 수 있는 공간에만 있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완벽한 자기만의 금을 그어놓고, 행여 벗어나게 되어도 우산을 쓸지언정 바깥에선 온전히 머물려 하지 않는 거라나?




글: 달 편집부
사진: 땡스북스 최보명


저자 : 이석원
1971년 서울생. 서른여덟이 되던 해 어느 날 사랑과 건강을 한꺼번에 잃고 삶의 의미에 대해 반추하다 남은 생을 글을 쓰며 살아가기로 결심, 2009년 겨울 산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