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24일 ~ 2017년 3월 30일
땡스북스 금주의 책

혼자가 더 편한 사람들의 사랑법
북하우스
미하엘 나스트 저, 김현정 역

초식남, 건어물녀, 3포 세대. 지금 우리 청춘을 손쉽게 지칭하는 또 다른 단어이기도 하다. 언젠가부터 연애는 우리에게 큰 사치가 되었고, 사랑에 목숨 걸기엔 걸리적거리는 현실적 조건이 너무 많다. 사랑이 밥 먹여주냐? 라는 우스갯소리에 웃음조차 나오지 않는 오늘날의 우리는 당장의 생존조차 보장이 안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캠퍼스 낭만 대신 입학과 동시에 취업을 고민하고, 그렇게 들어간 직장에선 돈을 모으기 위해, 일에서의 자아를 찾기 위해 사랑을 유보한다. 끝없이 경쟁하고 완벽함을 요구하는 이 ‘헬조선’에 사는 나는 기껏해야 일본이나 중국 정도가 우리랑 비슷하다고 알고 있었지, 지구 반대편의 이야기까지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럴 여유가 없었으니까.

그런 내게 독일 칼럼니스트가 쓴 이 책은 무척 신선했다. 제목부터 나를 사로잡은 이 책은 베를린의 청춘들이 왜 연애를 못(안) 하는지 그들의 가치관과 일상을 사회, 심리적으로 분석하여 유쾌하게 풀어낸 에세이다. ‘유럽은 우리랑 좀 다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머쓱해질 정도로 책 속의 베를린을 서울로 바꾸면 우리, 아니 나의 이야기였다.

이 책은 저자가 서두에 못 박아둔 대로 명쾌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지침서는 아니다. 뭐, 이런 거다. “여어, 너희가 왜 연애를 못(안) 하는지 알려줄게. 여기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 한 번 봐봐. 어때? 너 이야기 아니야? 소름이지! 인정? 네가 이거 읽고 뭔가를 좀 깨달았으면 다행이고, 아니면 어쩔 수 없고. 그래도 이 책을 집어 들었다는 건 최소한 네가 사랑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다는 거 아냐? 사랑해라. 사랑합시다!!” 정도로 요약해볼 수 있겠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거의 다 읽었을 때쯤 실제로 남자친구가 생겼다. (사이비 종교 간증 글 같지만 정말로 책 속의 여러 구절이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

위에서 말한대로 책의 골자는 간단하다. 우리가 연애를 못(안) 하는 세대가 된 이유를 분석한 뒤, 그럼에도 사랑하라고 말하는 책이다. 책에서도 파트가 잘 나뉘어져 있지만 독자로서 받아들인 내용을 내가 일상에서 느꼈던 바와 잘 버무려(?) 정리해보았다.


-우리가 연애를 못(안) 하는 이유- (당신 혹은 당신 주변의 사람을 대입해서 읽어보시라.)

하나, 나는 특별한 존재다.

P. 62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전념하고 있다. 그리고 각자 자기를 브랜드화한다. ‘자기의 개성을 가장 잘 살리는 상징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지금처럼 몰두하는 세대는 없었다.

우리는 지구상에 인간이 나타난 이래 자아실현의 욕구가 최대치인 인류라고들 한다. 나는 특별하고 개성이 넘치는 존재다. 자아를 발견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고, 나의 것을 포기할 생각이 없으며, 고로 남에게 맞추고 희생하는 일이 자신 없고 솔직히 좀 피곤하다. 내 꿈을 이루기 위해선 구속받지 않아 야하고, 연애도 마찬가지다. 연인에게 질투나 화가 나지만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에 쿨한 모습만 보여야 한다.


P. 45
연애를 할 능력과 준비가 되었다는 것, 이것은 고통받을 준비도 되어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나 고통받을 준비를 하지 않는다. (중략) 나는 나 자신을 희생할 정도로 여자를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둘의 관계가 아주 자연스럽게 발전되고 서로 잘 맞물려야 한다. 상대가 나에게 그 어떤 에너지도 빼앗으면 안 된다. 만약 그렇게 되면 나는 곧바로 거리를 둔다. 그리고 그 상대와 함께하면 처음부터 삶이 얼마나 피곤할지 곧바로 생각하게 된다.

내 일도 힘들고 막막한데 연인의 힘듦까지 받아들이기엔 솔직히 버겁다. 우리는 만나면 늘 행복한 일만 있어야 하고, 긍정의 에너지만 나눠주어야 한다. 나는 마음의 상처도 많아서 상처받는 연애를 다시는 하기 싫다. 상처 많고 우울한 사람은 아예 만나고 싶지 않다. 아, 내게 긍정적인 에너지와 무한한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 어디 없나?


둘, 베를린이라는 도시에서의 과도기적 삶.

젊은이들이 기회의 땅이라고 몰려드는 대도시(베를린이자 서울). 이곳에서 청춘들은 꿈을 유예한 채 과도기적 일상에 익숙해진다. P. 88 이 지인은 낙관적이다. 항상. 그는 5년 전부터 이 영화 시나리오 작업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요즘 나는 그의 원래 계획이 시나리오 작업이 아니라, 이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인상을 받는다. 라는 저자의 생각처럼 우리는 꿈을 향해 오랜 시간 달려가고 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대도시로 모여든 이 청춘들 사이에서 내 꿈은 언제 이룰 수 있을지 막연함에 눈물이 난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지는 오래되었고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야”라는 말로 많은 것을 미룬다. 연애도, 결혼도, 그 외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사회에서 원하는 스펙을 갖추느라 정신이 없고 ‘마음 편히 취업 준비를 하려면 아르바이트를 하나 더 늘려야 하는데’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정부는 탁상공론식 말을 남발하기에 여념이 없고,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소리를 아직도 하고 있다.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현실을 유보하는 건 당연한 일이 되었다.


셋. 정보화 사회, 문명의 발달.

방 안에서 검색 조금만 해도 연애할 상대방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인스타그램부터 페이스북은 물론이거니와 구글링을 통해 과거까지 탈탈 터는 일은 예삿일이 되었다. 그런가 하면 만남 자체를 인터넷으로부터 시작하는 경우도 많다. 소개팅 어플부터 각종 SNS 메시지까지, 이렇게 간단할 수가! 주변 사람한테 아쉬운 소리 할 것 없이 손쉽게 만남이 성사된다. 그 안에서 상대방은 너무 멋지고 아름답고 매일 전성기를 갱신하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만난 상대방과 연애를 시작하면 박 터지는 싸움이 시작된다. 내 연락은 무시한 채 좋아요를 누른 상대방의 활동내역과 마지막으로 접속한 시간이 보인다. 메시지를 읽은 표시가 나에게 보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문자 타이핑하는 것까지 실시간 중계가 된다. 숨 막힌다. 인터넷이, SNS가 없었다면 생기지 않았을 일들이 나를 화나게 한다. 마지막 헤어짐은 메시지로 통보한다. 끝. 차단을 먹이고 가끔 차단을 풀어 상대방이 여전히 SNS를 하는지, 나를 저격하는(혹은 떠올리는) 구질구질한 글을 쓰지는 않는지, 프로필 사진을 자주 바꾸지는 않는지 유심히 관찰한다. 그러다가 상대방이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음을 발견하고 그날은 집에서 펑펑 운다.


넷, 완벽한 사랑에 대한 환상

나는 완벽에 가까운 이상적인 관계를 추구하는 편이다. 고로 나의 이상형도 확고하다. 듬직함에 내가 기댈 수 있고, 적당히 무심하면서도 센스 넘치는 사람. 좋은 날을 기념할 줄 알고, 가끔은 손편지도 쓸 줄 아는 사람. 운동을 좋아하되 중독이어서는 안 되고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 인간관계를 소중히 여길 줄 알고 이성에 한 눈 팔지 않는 사람. 내게 미쳐있어서 나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아주 능력 좋은 사람. 쓰고나니 부끄러울 정도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다. 어느날 이런 사람이 내 앞에 짠!하고 나타났으면 하고 바랐다. 그리고 이 말도 안 되는 조건에 조금이라도 해를 미치는 점을 발견하면 그걸 받아들이거나 해결하려 들지 않고 연인 선상에서 제외해버린다. 얼마나 숱하게 교각살우를 범해왔는지.

우리는 상대방의 아주 일부만 보고 사랑에 빠지고 나머지는 환상으로 채운다. 환상 속의 상대방은 내 완벽한 사랑을 함께 실현할 완벽한 파트너처럼 느껴진다. 상대방과 공통점을 하나씩 찾을 때마다 천생연분 같고 결혼까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완벽한 사람(사랑)은 저자의 말대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걸었던 기대의 크기만큼 실망이 돌아온다. 수없이 많은 다툼 끝에 헤어진 후, 다음 사람은 완벽한 벤츠가 올 거라는 기대를 한다.


자, 당신은 몇 가지 공감을 했는가? 사찰당한 것 같아서 소름이 끼침과 동시에 깊은 한숨이 나왔을 것이다. 1번부터 4번까지 모든 문제가 유기적으로, 아주 긴밀히 연결되어 총체적 난국이기 때문이다. 나의 연애는 더욱 요원한 일이 된 것만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사랑하라고 말한다. 답이 너무 간단하다고? 말했잖나. 이 책이 어떤 지침을 주진 않을 거라고. 그러나 답이 간단하다고해서 간단히 넘겨버릴 문제가 아니다. ‘사랑’이란 살면서 가장 중요한 가치임에도 언제든 간과하기 쉬우니까. 그리고 사랑이 없는 세상은 정말 끝이 난 거나 다름이 없으니까. 진부한 표현이지만 마치 산소 같은 존재랄까.


P. 251
옮긴 이의 말
하지만 저자는 이런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사랑과 연애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는 ‘진정한 사랑을 할 때 우리가 이 사회의 변질된 산물이 아닌, 본래의 인간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게’되며, ‘사랑은 이기주의를 버리고 사회적 화합을 도모할 수 있는 우리의 기회이자 해결책’이라고 말한다. 또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더 나은 인간이 되어야겠다는 강한 자극’이 생겨나며, 우리가 이러한 ‘사랑의 가능성을 이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점점 사람의 가치가 스펙으로 결정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하는 이 시대에 사랑이라는 감정은 마치 판도라의 상자 저 밑바닥에 깔려있던 희망이라는 자리에 대신하고 있는 것 같다.

사랑이라는 가치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기에 이 책을 펼쳐 들었고, 행여나 ‘사랑하지 말고 혼자 사는 게 최고다. 싱글 라이프 만세!’라는 내용일까 봐 내심 마음 졸이며 읽었다. 현실에 없는 황당하리만큼 완벽한 사랑을 추구하던 내 어리석음을 마주했고 무척이나 찔렸다. 남자친구를 만나고부터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매일 다짐 한다.

연애불능세대인 우리가 많이 읽었주면 좋겠다. 나는 서점에 오는 2, 30대 청춘들에게 이 책을 권할 것이다. 연인과의 사랑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서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하여, 새삼스럽지만 이렇게라도 다시 새겨야 할 가장 기본적인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니까. 저자가, 그리고 내가 여기까지 이야기한 사랑을 이성 간의 사랑에 한정짓기보다 더 넓게 확장하여 가족, 친구,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여겨주면 좋겠다.


P. 47
서로에 대한 지나친 기대치와 경직된 생각을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다른 사람의 삶으로 걸어들어갈 수 있다.

새로운 사람이 눈 앞에 나타났을 때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진심으로 다가갈 수 있길 바라며,
그 어떤 상황이 와도 사랑이라는 가치를 포기하지 않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저자: 미하엘 나스트
1975년 동베를린에서 출생. 정확한 분석력과 뛰어난 통찰력으로 시대를 대변한다는 평을 듣는 독일의 인기 칼럼니스트이다. 음반제작회사 두 곳을 세웠고, 여러 광고 에이전시에서 일했으며, 아트 디렉터로도 활동했다. 남다른 관찰력으로 사회 현상을 읽어내는 능력이 뛰어나며 그가 쓰는 칼럼은 수백만 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할 정도로 높은 인기를 얻는다. 2007년에 인터넷 커뮤니티 마이스페이스에서 자신의 블로그 ‘대도시 칼럼’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블로그가 놀라운 성공을 거두자 마이스페이스는 그의 글들이 더 많은 주목을 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2008년 그의 칼럼 8편이 <베를린 학교Berliner Schule>라는 제목의 오디오북으로 발표되었다. 2009년에는 첫 번째 책 『잘난 베를린 사람Der bessere Berliner』이 로볼트 출판사에서, 2014년에는 또 다른 책 『사랑일까 아니면 사라질까?Ist das Liebe, oder kann das weg?』가 울슈타인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역자: 김현정
이화여자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독일 예나대학에서 수학했다. 현재 번역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기획 및 전문번역가로 활동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세계를 바꾼 가장 위대한 101가지 발명품>,<거짓말 하는 사회>,<비트겐슈타인> 등 다수가 있다.

글, 사진: 땡스북스 손정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