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23일 ~ 2017년 6월 29일
땡스북스 금주의 책

먹고 마시고 그릇하다
어떤책
김율희 저





작정하고 ‘그릇하다’라는 이름을 단 그릇 산문집이라니. 다채로운 외형을 갖고 묵직하게 손에 잡히는 게, 꼭 책 자체가 그릇인 것 같다. 분홍 소시지와 노브랜드 만두가 주식이 된 사람은 이 그릇을 품고 다니는 동안 반성과 참회의 시간을 가졌다.





나는 최근 한량의 역할에 충실한 나머지 완벽하게 불규칙하고 무절제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어쩌다 가끔 특별한 기분을 내고 싶을 때는 에릭 카레(삼시세끼 어촌편 시즌3 참조)를 10인분 정도 만들고, 후식을 위해 원두를 요란하게 갈며 가족들에게 잠깐 생색을 낸다. 다만 그렇게 정성으로 카레와 커피를 만들어도 매번 마무리가 산뜻하지 않은 건 우리 집에 그 귀한 양식을 담아낼 멋들어진 그릇과 컵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책의 내용을 곱씹는 동안 깨달은 이치다. 과연! 나는 지금까지 투박한 식기에 음식을 담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던 거다. 그러면서도 왜 따로 ‘마음에 맞는’ 그릇을 들이지 않았느냐 하면 이유는 단순하다. 나는 엄마의 집에 얹혀 살고 있다.

p.73
나는 그저 내게 필요한 것을 적정한 가격에 골라 오래 쓸 수 있는 이 집의 책임자가 되고 싶다.



내가 사는 집은 무분별한 살림살이들로 어수선하다. 죄다 버리고 새로 시작하자 말하는 내게, ‘너 나가서 혼자 살면 그때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라는 매정한데 그럴듯한 반응이 돌아온다.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다짐한다. 독립하면 적어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물건은 집에 들이지 않겠다. 그리고 내 취향에 맞게 모습을 갖춰가는 공간은 다시 내게 좋은 영향을 주지 않을까 기대한다. 공간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도 변할 거라고. 물론 취향이 잡혀있지 않다면 모두 요원한 일이 되고 만다.


p.109
사물의 가치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은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인 능력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또 다른 차원이다. 좋은 옷, 좋은 책, 좋은 소품, 좋은 그림, 나아가 좋은 사람을 알아채는 것은 유행을 좇아 될 일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일도 아니다.






제대로 차려 먹는 건 어렵다. 천천히 무리하지 않고 씹어 삼키는 것도 어렵다. 나는 항상 늦장을 부리다가 빠듯하고 급하게 움직인다. 아주 조금만 시간을 내서 품을 들이면 투자한 에너지보다 더한 풍요와 여유를 누릴 걸 아는 데도 고쳐지지 않는다. 스스로를 돌볼 줄 모르는 사람이라는 게 부끄럽기도 하다. 이대로는 독립의 때가 와도 제대로 된 내 집의 책임자가 되지 못 한다. 그런 위기의식이 갑자기 명치를 치고 지나갔다.

집 주인이 됐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새 나라의 어른이 되진 않을 것이다. 새 나라의 어른이라니 써놓고도 뭔지 모르겠고 될 의지도 없으나 1인 가구가 된 미래의 나를 생각하면 좀 착잡하다. 미래의 나는 설거지가 귀찮아서 식판을 살 수도 있다. 아니야... 그러지 않기로 해. 아직 늦지 않았으니까 시간을 들여 더 나은 사람이 되어 가는 일에 대해 생각하자.

p.153
오래된 찻잔은 쓰기 전에 예열이 필요하고, 세척할 때에도 찬물이나 뜨거운 물보다는 미지근한 물로 헹구는 게 좋다.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 조금씩 생각에 변화를 주어야지 느닷없이 행동했다가는 탈이 난다.



그릇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다. 그만큼 우리 생활과 가까이 붙어 있다는 뜻이겠지. 이 책의 부작용으로 이제 아무 그릇이나 쓰고 싶지 않아졌다. 물론 이 집에 있는 한 내게 선택권은 없지만 그릇 보는 눈은 기를 수 있을 거라 장담한다. 미래의 내가 식판 사려는 것을 꿈도 못 꾸게 할 눈. 느린 호흡으로 차근차근 풀어내는 온화한 문장들이 더불어 내게 남긴 태도도 있다. 오래 고민하고 답을 내리는 단계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나의 몸 상태와 기분을 헤아리는 선택을 한 번 두 번 거듭한다. 자기 안의 소리에 집중하는 삶은 세상을 사는 또 다른 즐거움이 된다.


p.101
세계에 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게 세계를 맞추기 시작하니 결핍보다는 만족이 늘었다. 나 스스로가 만족스러우니 타인을 대할 때도 혹시나 나를 흉볼까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



p.235
살림이란 결국 나의 요구와 욕구를 아는 것에서 출발해 나에게 맞는 물건들로 공간을 꾸리고 정갈하게 관리하며 스스로를 충족시키는 일이다.






저자: 김율희

혼자살이 10년차로, 잘 먹으면 잘 사는 것, 못 먹으면 못 사는 것이라는 단순한 가치관을 지녔다. 어릴 때부터 식탐이 많았고 동네 수입품 가게에서 그릇 구경하는 걸 좋아했다. 열 살 때, 수련회에서 처음 급식을 경험하고 그 2박3일을 매점의 쿠크다스와 마가렛트로 버티며 '나를 위한 한 끼 식사'를 제법 진지하게 생각했다.

밥벌이를 시작하며 수프그릇, 샐러드볼, 주물냄비, 주서기, 찻잔과 찻주전자를 하나둘 갖추었는데, 주변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혼자 사는데 그게 다 필요하냐" "살림은 결혼하고 들이면 된다"는 말을 들으며 이번에는 '1인가구의 식사'를 생각했다. 이후로 좋아하는 음식을 어울리는 그릇에 담아 사진 찍고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꼭 '1인가구'라는 해시태그를 단다. 1인가구도 손수 지은 밥을 정성스럽게 차려 스스로를 대접하는 오롯한 사람들임을 알아 주었으면 싶어서.

20대 초반은 홈쇼핑 엠디로 패션과 뷰티 상품을 기획했고, 20대 후반은 방송사 편성피디로 계획하고 예측하는 일을 했다. 서른한 살, 눈칫밥은 이제 그만 먹자는 생각으로 사회생활에서도 '홀로'서기를 감행해 지금은 그릇과 패브릭, 가구를 취급하는 쇼핑몰을 운영 중이다.

글, 사진: 땡스북스 고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