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25일 ~ 3월 31일
땡스북스 금주의 책

도토리 자매
민음사
요시모토 바나나 저, 김난주 역

이 책의 주인공은 '누구에게든 메일을 보내고 싶은데, 아는 사람에게는 보내고 싶지 않을 때 마침 딱 좋은 존재'라는 컨셉으로 홈페이지를 만들어 고독한 이들의 사연에 답장하는 도토리 자매다. 이 독특한 설정 하나에 이끌려 무작정 10여 년 만에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을 펼쳐 들었다. 워낙 설정에 혹했기에 다양한 사연을 기대했으나, 나(구리코)의 시선에서 삶을 바라본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었다. 책을 관통하는 이야기는 그리 대단치 않았지만, 문장 하나하나가 깊이 와닿은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쌍둥이도 아닌 두 살 터울의 자매 이름을 도토리(돈코의 '돈'+구리코의 '구리'= 일본어로 도토리)로 짓는 유별난 자식 사랑을 보여줬던 부모님은 하루아침에 교통사고로 허무하게 떠난다. 큰 상실을 겪은 자매는 친척 집을 전전하며 성장했고, 타인을 돕는 데 능숙하다는 장점을 살려 <도토리 자매> 홈페이지를 통해 타인의 사연을 들어준다. 언뜻 보면 그들이 도움을 베푸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도토리 자매도 이 소통을 통해 자신들을 치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P. 50
사람들은 두서없는 대화가 사람의 삶을 얼마나 지지해 주고 있는지 자각하지 못한다.

그녀들은 긴 답장도, 명쾌한 해결책도 아닌 간결하고도 무심하게 답장을 쓴다. 하지만 상대는 진심을 알아보고 자매에게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보낸다. 이 책은 평소 갖고 있던 여러 생각을 다시 돌아보게 했다. 고민은 꼭 친한 이에게 말해야 한다는 생각, 대화는 꼭 의미있어야 한다는 생각, 어릴 때 상처를 겪으면 비뚤어질 거라는 생각, 상처는 꼭 잊고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 등등. 특히 상처를 대하는 자세는 정말 좋아서 상처받은 이들에게 읽어보라고 강권하고 싶을 정도였다.


P. 55
지금까지 다소 충격을 받은 경험은 있지만, 내 영혼의 심지는 짓눌리지 않았다.
그리고 사고방식이 조금 이상해졌다 해도, 거기에 집착만 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상처도 아물고 또 어디서든 행복이 쏙쏙 생겨난다.
그것은 아마도 생명력과 같은 것이리라.
그러니까, 어렸을 때 여러 가지로 힘든 일이 있었다고해서 자신이 비뚤어진 것은 아니다. 가령 약간 비뚤어졌다해도, 조금씩 펴 나가면 펴질 것이다.


P. 74
야스미 님.
우리도 사고로 부모님을 잃었습니다.
그 슬픔이 아무는 일은 절대 없겠죠.
그것은 마치 불치병을 안고 살아가는 것과 똑같은 일이지만, 줄곧 이 병을 안고 살아간다, 이것이 나다, 부모님을 잊지 않고 함께 안고 가자,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편해졌습니다,
그리고 하루 일과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일도 조금씩 늘어났습니다.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또 언제든 메일 주세요. - 도토리 자매


도토리 자매는 인생에서 완벽한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다. 불완전한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고 보듬는다. 여기에 나온 모든 관계 또한 미완성이다. 자매는 부모님을 잃었고, 그 충격으로 나(구리코)는 내면으로 깊이 침잠한다. 언니는 진정한 사랑을 두려워하고 늘 시작만 하는 사랑을 한다. 나와 무기는 서로의 첫사랑이었으나, 이어지기는커녕 무기가 얼마 전에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들은 이 미완성의 관계를 완전한 모습으로 만들려고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소설은 결코 미완성으로 끝나지 않는다. 미지수지만 충실히, 여행하듯 '다부지게' 살아가겠다는 도토리 자매의 다짐으로 끝을 맺는다. 그들의 인생은 未완성이 아니라 美완성인 것이다. 그들은 이미 인생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들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100% 행복만 있어야 행복한 게 아니라 불행이 있기에 행복이 더 반짝반짝 빛난다는 걸 깨달은 사람들. 연꽃이 진흙탕에서 피어나듯 그들도 큰 상실과 고통 속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꽃 같았다.

우리네 인생도 모두 미완성이다. 결코 완벽한 것도 없고, 완벽해질 수도 없다. 저마다의 빈 바구니에 '또롱또롱 소리가 날 것만 같은 도토리(P. 19)'를 한알 한알 채워나갈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



저자 : 요시모토 바나나
요시모토 바나나는 1987년 데뷔한 이래 ‘가이엔 신인 문학상’, ‘카프리상’ 등의 여러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일본 현대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 꼽히고 있다.특히 1988년에 출간된 『키친』은 지금까지 200만 부가 넘게 판매되었으며, 미국, 독일, 프랑스 등 전 세계 30여 개국에서 번역되어 바나나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 주었다. 열대 지방에서만 파는 붉은 바나나 꽃을 좋아하여 ‘바나나’라는 성별 불명, 국적 불명의 필명을 생각해 냈다고 하는 그는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에 수많은 열성적인 팬들을 두고 있다. “우리 삶에 조금이라도 구원이 되어 준다면, 그것이 바로 가장 좋은 문학”이라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작품은, 이 시대를 함께 살아왔고 또 살아간다는 동질감만 있으면 누구라도 쉽게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는 『키친』, 『도마뱀』, 『하드보일드 하드 럭』, 『티티새』, 『막다른 골목의 추억』 등이 출간, 소개되었다.

역자 : 김난주
1987년 쇼와 여자대학에서 일본 근대문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이후 오오쓰마 여자대학과 도쿄 대학에서 일본 근대문학을 연구했다. 현재 대표적인 일본 문학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며 다수의 일본 문학을 번역했다. 옮긴 책으로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 『하드보일드 하드 럭』, 『티티새』, 『막다른 골목의 추억』 등과 , 『겐지 이야기』, 『모래의 여자』 등이 있다.

글, 사진: 땡스북스 손정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