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3일 ~ 4월 8일
땡스북스 금주의 책

방랑
포토넷
레몽 드파르동 저, 정진국 역

내가 선 자리를 알 수 없을 때
익숙한 곳에서 벗어나
나를 둘러싼 세계를 바라본다.
내가 설 자리를 찾는다.
방랑


이곳저곳에 '세계적'이라는 수식어가 난무한다. 매체에는 '국제적'이라는 사진가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면 그들의 흔적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레몽 드파르동은 지난 수십 년간 위험한 분쟁 지역의 최전방에서 이름을 날렸던, 그럼에도 아직까지 여전히 활발히 작업하고 있는 '전설' 가운데 한 사람이다. 사진의 거의 모든 분야를 두루 경험한 그가 노년에 이르러 자신의 익숙한 자리 - '결정적 순간'이 치열하게 강요되던 그 자리 - 를 떠나 외부가 아닌 자신의 내부를 사진기로 바라본다. 익숙한 곳을 떠나는 일, 방랑을 위해 떠난다.

평생 동안 세상을 바라보았고 지금 자신을 바라보는 이 대가는, 자신의 생각을 전하기 위해 사진평론가나 문인들의 손을 빌지 않고 스스로 담담한 어조로 글을 써 내려간다. 사진과 나란히 흐르는 글은 사진의 주요한 쟁점들 대부분을 자연스럽게 짚는다. 그는 불편한 중형 카메라, 감도 낮은 코닥 베리크롬 팬 흑백필름, 구경 작은 어두운 광각 렌즈, 세로 화면, 거리 두기 등의 장치를 통해 자신의 앞에 펼쳐진 세계를 그저 바라보며 그 속에서 자신이 설 자리를 찾는다. 그는 차라리 중요하지 않은 순간에 감탄하며, 특별한 순간이 아니라 차라리 평범한 순간, ‘미미한 시간’을 파고든다.

그의 방랑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새삼 돌아보게 된다. 드파르동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에게서 멀어지고 빗나간 것들이다."

"결정적 순간은 없다. 일상의 순간뿐이다."

P.16
방랑이라는 모험은 바로 그 시간을 현재진행형으로 온전히 살게 해준다. 내게는 '현재'가 문제였다.

P.40

방랑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가능한 오래 '현재'를 살 수 있어야 한다. 이 점이야말로 가장 긍정적 성과다.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나 자신을 볼 수 있고, 나 자신을 수긍한다. 


p.92

내 작업은 '거울'과 동시에 '창문' 같은 것이다. '창문' 같은 면이 바로 통로다. '거울' 같은 면은 내 자리를 지시한다는 사실에 있다. 


P.112
나는 고발하러 찾아다니지 않는다. 비난하려고 찾아다니지도 않는다. 증명하려고 찾아다니지도 않는다. 여러분에게 내가 보는 방식을 보여준다. 내게 주어진 한때에 내가 보는 세계, 그 세계의 일부를. 


P.124

사막에서, 걷고 생각하고 하다 보면 우리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따져보게 된다. 우리에게서 멀어지고 빗나간 것들이다.



P.132

방랑을 하다 보면 어린 시절로 돌아가곤 한다.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간다.

P.174

나는 화면의 바깥을 암시하는 수법도, '거울'과 '창문'도 버린다. 죄의식도 주제도 순간도 인정도, '퍼포먼스'처럼 사진가를 혼란스럽게 흔드는 모든 것을 버린다. 사실과 덧없는 것에 매달려 작업한다는 복잡한 기분, 죄의식과 후회 또는 너무 뒤늦은 원망, 즉 이것저것을 놓쳤다는 안타까움 말이다. 


P.175

이렇게 나는 일관된 나 자신을 찾았다. 나 자신을 되찾은 듯해서 행복하다. 《방랑》 덕에 난생 처음, 나는 현재를 제대로 살았다. 


P.177
《방랑》은 내가 지금 누구인지를 말한다. 내 있는 그대로, 나는 시간 속에서 또는 시간을 넘어서 과거에서 현재로 건너온다. 나는 현재의 중요성을 발견한다. 현재는 순간과 다르다. 내게는 현재가 절실하다. 지금 있는 그대로. 그것이 바로 나다. 이미지에서 나오는 신선한 이야기다. 자각自覺이다. 번민과 열등감과 고통에서 벗어나는 차분한 공간의 충만함이다. 나는 원래 나대로가 된다.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다. 과거에 그랬던 바로 그대로. 나는 나 자신이다.


P.188 [역자 후기] 중
드파르동은 이 책을 준비하면서 방랑하는 동안 크게 변했다. "텅 빈 것을 채우려고" 안달하지 않았다. 사실상 원숙한 자기 미학에 도달했다. 현실 속에서, 현실에 묶여 있을 수밖에 없는 사진 작업을 하면서 그 실망스런 현실과 또 그것을 제대로 사진에 담았는지 의심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을 벗어나려 괴로워했다. 현실과 자신에 대한 환멸을 끊임없이 뿌리치려고 계속 걸었다.



저자 : 레몽 드파르동
프랑스 빌프랑슈 쉬르 손 출생. 사진가이자 영화감독, 시나리오 작가, 언론인. 다큐멘터리 사진과 영화의 거장으로 꼽힌다. 통신사 [달마] 소속 사진가로 활동한 후 1966년 질 카롱과 공동으로 사진전문 통신사 [감마]를 설립했으며, 1979년부터 [매그넘] 회원으로 일했다. 종군기자로서 베트남, 알제리 전쟁부터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분쟁 지역을 가장 오래 취재한 백전노장이다. 영화 분야에서 혁신적 수법을 개발한 이후, 지금은 사진의 새로운 장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1980년대 이후 텔레비전과 인터넷 등 다양한 통신매체의 보급으로 주춤하는 신문보도사진에서 사진의 참신한 활용을 모색하던 언론의 대변혁기에 중요한 몫을 했다. 2006년 유럽 사진의 전당 개인전을 비롯해 프랑스 국립도서관 '레몽 드파르동의 프랑스', 그랑 팔레 '그토록 포근한 순간' 등 수차례 대규모 개인전을 열었으며, 《코르시카》《정치인 사진》《여행자의 행복한 고독》 외에 수십 권의 사진집을 펴냈다. 《방랑》은 그의 원숙기를 대표하는 첫 번째 사진집이다. [사진기자들] [사막의 포로] [응급실] [단신] 등의 영화를 제작했다. '국가 사진대상', '세자르 단편영화 최고상', '세자르 다큐멘터리 영화 최고상', '루이 들뤽 상'의 여러 권위 있는 상을 받았으며, 2010년 프랑스 정부가 제정한 '올해의 문화 인물'에 선정되었다. 



역자 : 정진국
미술평론가, 사진가. 《사진가의 여행》《포토 루트 유럽》《유럽 책마을에서》《여행가방 속의 책》 등 사진 에세이집을 내놓았다. 옮긴 책으로는 《세계사진사》《논쟁이 있는 사진의 역사》《매그넘매그넘》 등이 있다.



글: 포토넷 편집부
사진 구성: 땡스북스 이기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