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9일 ~ 12월 15일
땡스북스 금주의 책

커튼
민음사
밀란 쿤데라 저, 박성창 역

‘밀란 쿤데라’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떠오르는 책이 있다면 무엇일까? 아마도 가장 먼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생각날 것이다. 90년도에 처음으로 이 책이 한국어로 번역된 이래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밀란 쿤데라’라는 공식은 말 그대로 공식이 되어 그의 대표작처럼 회자된다. 그만큼 그의 소설세계나 작품관은 수십 년 전에 출간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안에서만 이해되는 것 같다. 우리는 그의 소설을 많이 읽고 또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이 질문은 던져볼 겨를이 없었다. “소설가 쿤데라에게 소설이란 무엇일까?” 여기, 존재도 가벼움도 아닌 소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야기가 그 답이 되어줄 것이다. 바로 쿤데라의 세 번째 에세이 <커튼>이다.

쿤데라는 <소설의 기술>, <배신당한 유언들>, <커튼>, <만남> 총 네 권의 에세이를 기술한다. 이 에세이들은 그의 소설에 대한 생각을 알아보는 데에 아주 좋은 참고서지만, 에둘러 말하기의 진수를 보여주는 그의 계략 때문에 갈피를 잡기가 쉽지 않다. 끝도 없이 나열된 소설들이 우리의 기를 죽이기도 한다. 더군다나 이들은 국적도 시대도 상이해, 아무 기준도 없이 한데 그러모아져 있다는 인상만 준다. 이들을 묶어내는 하나의 맥락을 감히 제안해 본다. 바로 발견의 역사를 이어온 ‘근대 유럽 소설’이다.


P.29~30
“소설가의 야심은 이전 선배들보다 나아지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보지 않았던 것을 보고 그들이 말하지 않았던 것을 말하는 데에 있다.”

쿤데라는 근대 유럽 소설의 선두에 <돈키호테>를 둔다. 돈키호테의 모험을 통해 진정한 근대적 의미의 개인을 구현해냈기 때문이고, 그리하여 유럽이 근대를 맞이할 수 있었으며 소설을 구축해낼 수 있었다. 권선징악, 기사도, 신화 속 예정된 숙명을 변주했던 기존 문학의 관습을 거부하는 몸짓, 즉 드리워진 커튼을 찢는 행위를 통해 돈키호테가 탄생한 것이다. 쿤데라는 세르반테스의 파괴적 행위, 소설 예술의 발견에 동참한 소설이 바로 ‘근대 유럽 소설’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커튼>의 숱한 소설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돈키호테>에서 시작한 ‘근대 유럽 소설’의 역사를 이어온 것이다. 즉, <커튼>은 그들의 발견에 대한 이야기이다.


P.180
그는 선해석의 커튼에 수놓인 진실들을 그대로 베끼지 않았다. 세르반테스와 같이 용기 있게 그 커텐을 찢었다.

쿤데라가 이리도 구구절절 근대 유럽 소설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쿤데라는 늘 ‘동유럽 출신 작가’, ‘프랑스로 망명한 체코작가’와 같은 편협한 이해가 와해되길 원했다. (그는 <우스운 사랑>이 파리에서 출간된 후, 1979년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품을 정치적으로 독서하는 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숱한 해명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그의 소설들을 정치적으로 해석한다. 많이 지쳤던 모양인지 80년대부터 인터뷰와 방송출연을 일절 거부한다.) 그는 자신의 소설이 이 커다란 맥락 안에서 이해되고 제 가치가 발휘되길 원하는 것이다. 국가, 정치적 상황, 사생활에 말미암은 소설이 아닌, 여태껏 숨겨진 것들을 찾아내려는 발견자-소설가의 소설로 말이다. 쿤데라가 사르트르의 일명 ‘철학 소설’을 비판한 연유도 여기에 있다. 사르트르에게 소설은 자신의 사상을 더 널리 알리기 위해 소용된 도구였기 때문이다. “오직 소설만이 할 수 있는 말”(P.95)을 할 때, 비로소 진정한 소설의 역사를 이어갈 수 있기도 한 것이다.

선배들의 발견을 이어 받아 앞으로의 발견을 책임질 계승자-소설가로서, 쿤데라는 자신의 성찰을 내보이고, 자신의 소설로 마무른다. 그가 어떤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지, 무엇이 숨겨져 있었고 무엇을 발견했는지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소설의 위기를 끊임없이 논하는 시대, 소설의 해체를 시도했던 누보로망의 시대를 겪었던 한 소설가가 소설에 어떤 가능성을 내다보고 있다는 사실만을 찔러놓겠다.


P.244
“나는 서글픈 마음에 사로잡혀 이런 상상을 해 본다. 예술이 절대로 말해진 적 없는 것을 찾기를 그만두고 다시 유순해지는 날이 오겠지. 그날이 오면 예술은 반복을 아름답게 만들고 개인이 기쁜 마음으로 순순히 획일적인 존재가 되도록 돕기를 요구하는 집단의 삶에 봉사할 테지. 왜냐하면 예술의 역사는 덧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술의 지저귐은 영원하다.”

어쨌든 이 책의 핵심은 커튼에 가려 숨겨졌던 것을 들춰내는 일이 바로 소설가의 일이라는 것이다. 쿤데라는 에세이를 통해 현대 소설가로서 어떤 글을 쓰려하는지를, 내심, 또 분명히 비치고 있다. 그러므로 <커튼>은 다른 세 에세이와 더불어 그의 소설론이자, 자유로운 성찰이며, 앞으로의 글쓰기 기획이다.



저자 : 밀란 쿤데라
1929년 체코의 브륀에서 야나체크 음악원 교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1963년 이래 ‘프라하의 봄’이 외부의 억압으로 좌절될 때까지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운동’을 주도했으며, 1968년 모든 공직에서 해직당하고 저서가 압수되는 수모를 겪었다.

하지만 쿤데라는 『농담(La Plaisanterie)』이 불역되는 즉시 프랑스에서도 명작가가 되었다. 그 불역판 서문에서 아라공은 “금세기 최대의 소설가들 중 한 사람으로 소설이 빵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임을 증명해주는 소설가”라고 격찬했다. 2차 대전 후 그는 대학생, 노동자, 바의 피아니스트(그의 아버지는 이미 유명한 피아니스트였다.)를 거쳐 문학과 영화에 몰두했다. 그는 시와 극작품들을 썼고 프라하의 고등 영화연구원에서 가르쳤다. 밀로시 포만(Milos Forman), 그리고 장차 체코의 누벨 바그계 영화인들이 될 사람들은 두루 그의 제자들이었다.

작품으로 『농담』, 『삶은 다른 곳에』, 『불멸』, 『배신당한 유언들』, 『이별의 왈츠』, 『느림』, 『정체성』, 『향수』 등이 있다. 그의 작품들은 거의 모두가 탁월한 문학적 깊이를 인정받아서 메디치 상, 클레멘트 루케 상, 유로파 상, 체코 작가 상, 컴먼웰스 상, LA타임즈 소설상 등을 받았다. 미국 미시건 대학은 그의 문학적 공로를 높이 평가하면서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시인, 소설가, 희곡작가, 평론가, 번역가 등의 거의 모든 문학 장르에서 다양한 창작활동을 하고 있으며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작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다.

역자 : 박성창
서울대 불문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파리3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 『우리 문학의 새로운 좌표를 찾아서』, 『비교문학의 도전』, 『글로컬 시대의 한국문학』 등과 역서로 밀란 쿤데라의 『커튼』,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등이 있다. 2008년 프랑스 문학 잡지《NRF(La Nouvelle Revue Francaise)》에 한국 현대 문학을 소개했다. 2012년 현재 계간 《세계의 문학》 편집위원이며 서울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글, 사진: 땡스북스 제갈승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