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17일 ~ 7월 23일
땡스북스 금주의 책

시티오브뉴욕
서해문집
최이규, 음성원 지음

이 책, <시티 오브 뉴욕>은 ’아는 만큼 보인다’라며 뉴욕 여행을 위해 자신만만하게 샀던 책들 중 하나였다. 그리고 나는 그 수많은 책 중에 단 한 권도 제대로 읽지 않은 채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캐리어에 깍두기(?)처럼 던져넣은 자그마한 빅셔너리의 가이드북 'new york'만을 분신처럼 갖고 다니며 거기에 소개된 주옥같은 장소들을 찾아다녔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 두 달이 되어가는 요즈음, 알 수 없는 향수에 <시티오브뉴욕>을 다시 펼쳤고 잠시 잊고 있었던 그 곳에서의 기억들을 다시끔 정리해 보려고 한다.

입국 심사가 까탈스럽기로 악명 높은 디트로이트 공항 입국심사장에 막 도착했을 때, 나는 내가 미국에 왔다는 것을 그다지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16시간이나 걸려 지구 반대편을 날아왔는데 내 눈앞의 광경은 인천공항의 내부와 다른 구석이 전혀 없었고 곳곳에서 영어가 아닌 중국어와 일본어가 들려왔다. 싱거운 기분마저 들었다. 하지만 심사를 위해 서있던 내 앞의 몇 사람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세컨드 인터뷰를 하러 파란 유니폼을 입은 험상궃은 표정을 한 스태프와 동행하는 것을 보고나서 심장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미혼 여성인데다가 출장이 아닌 여행을 목적으로 2주 이상 방문하는 것은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어서일까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들여보내주지 않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막상 눈앞에 펼쳐지니 긴장감이 몰려왔다. 그러나 장기간 비행으로 퉁퉁 부운 얼굴이 그다지 의심스럽지 않았던 걸까. 묻는 질문에 최대한 밝은 표정으로 성실히 답해서일까 그들의 예민한 레이더망을 피해 나는 별탈없이 입국했고, 공항 스타벅스에서 시원한 아이스라테 한 잔을 들이키고 나서야 마침내 뉴욕으로 가는 첫 관문을 통과했다는 생각에 설레였다.

-Viction:ary의 New York 가이드북



격자도시 맨해튼
뉴욕은 1700년 말 대대적인 도시 계획으로 격자망 시스템이 논의되었고 맨해튼 지역을 수학의 좌표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만들었다. 그래서 스트리트와 애비뉴의 개념만 이해한다면 심각한 길치가 아니고서는 맨해튼에서 길을 잃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단 한 번의 턴으로 어디든 갈 수 있으며, 휴스턴 스트릿 북쪽의 맨해튼은 동서 방향으로 난 길인 스트리트street, 남북 방향으로 이어진 애비뉴avenue가 격자 형태로 짜여 있기 때문에 스트릿과 애비뉴 번호만 알면 대강의 위치는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세심하게 짜여진 격자 시스템에도 예외는 있다. 여러 변칙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중 한 가지는 가로와 세로로 반복되는 격자망 패턴 사이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브로드웨이. 이 대각선 길은 아메리칸 인디언이 이용하던 길을 그대로 남긴 것이라고 하니 애초부터 격자망 시스템은 규칙을 지키면서 세심하게 도시 환경을 고려하여 변주를 준 것이다.

P.22
브로드웨이라는 대각선 길이 가로와 세로로 이뤄진 격자망과 만나는 지점에서 극적인 비정형성이 생겨났다. 자연스럽게 삼각형 모양의 대지가 생기고, 콩터도 생겼다. 삼각형 모양의 땅에는 건물 밑바닥 모양이 마치 다리미와 같다고 이름 붙은 ‘플랫 아이언 빌딩’ 같은 건물이 자리 잡게 되는 이유가 됐다. 공터에는 스퀘어Spuare라는 공간이 만들어졌다. 여러 길이 합쳐진 공터인 만큼 우리나라의 ‘광장’의 개념과 유사한 공간이 됐다. 유니온스퀘어, 매디슨스퀘어파크, 타임스 스퀘어 등이 바로 브로드웨이가 만든 유명한 파격이다.

-(위)매디슨스퀘어/(아래)웨스트빌리지 규칙적인 격자망 도시설계로 각 블록들이 규칙적인 아름다움을 갖고있다.



관광 명소와 유명 맛집에 욕심부리기 보다는, 세계 미술 시장의 중심인 뉴욕에서 뮤지엄과 갤러리는 모두 섭렵하자는 것이 이번 여행의 큰 계획이었다. 단촐한 다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저질 체력인 내게는 꽤 무리수가 있는 계획이었다. 볼 게 너무 많았고, 가는 곳마다 감탄스러웠다. 그러나 집중해서 보려니 한 곳에서 거의 반나절의 시간이 걸렸고, 다른 일정없이 하루에 뮤지엄 두 곳만 다녀와도 기진맥진해진 상태로 저녁 식사를 경우 챙겨먹고 숙소로 돌아와야 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뮤지엄/갤러리를 꼽자면, 휘트니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운좋게 내가 도착한 지 3일 후에 휘트니 뮤지엄은 미트패킹Meatpacking 지역에 새롭게 개장하여 SNS에서 전폭적인 반응을 얻으며 관광객은 물론이고 뉴요커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원래는 고기를 포장하는 곳으로 20세기에는 도살장과 육류공장이었지만 쇠퇴하게 되었고, 80년대까지 이 공간은 마약거래와 매춘 등 향락의 상징이 되었다. 물론 현재의 미트패킹 지구는 사정이 전혀 달라져서 뉴욕 사교계 명사들이 즐겨찾는 맛집과 브랜드들이 가득한 동네가 되었지만 말이다.

-휘트니미술관 발코니에서 내려다 본 미트패킹 지구. 과거의 육류 공장과 도살장이 있던 흔적을 조금은 읽을 수 있다.

P.104
맨해튼 허드슨 강변에 위치한 미트팩킹Meatpacking 지구는 이름 그대로 ‘고기를 포장하던 곳’이었다. 인근에 부두가 있어 20세기에는 도살장과 육류 가공공장 등 약 250곳이 밀집해 있던, 미국에서 세 번째 규모의 육류 가공 지역이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이라 신선도 유지를 위해 살아 있는 동물을 운반해와 이곳에서 도살과 정육 과정을 거쳤고, 뉴욕 곳곳으로 배송됐다. 그러나 1960년대 들어 육류의 유통과 소비구조가 슈퍼마켓 위주로 변화하기 시작했고, 냉동 컨테이너가 도입되면서 육류 공급라인이 전국 규모로 광범위하게 확대됐다. 1970년대까지도 대세였던 이곳의 육류 가공업은 자연스럽게 쇠퇴하기 시작했다. 비어 있는 창고와 공장건물을 이용해 동성애자 대상의 나이트클럽이 여기저기 생겨나기 시작했다. 1980년대 들어서 미트팩킹 지구는 마약 거래와 매춘 등 향락의 상징이었다. 앤빌, 맨홀, 마인쉐프트 등 십수 곳이 넘는 유명 섹스클럽들이 마피아와 결탁해 성업했다. 그 절정은 마인쉐프트가 에이즈 예방 차원에서 강제 폐쇄된 1985년이었다. 당시 많은 사람은 이 지역이 변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었다. (...) 하지만 그런 주변 환경을 크게 개의치 않는 미혼의 젊은 예술가나 작가 지망생, 동부의 명문대를 졸업하고 뉴욕에서 첫 직장을 얻은 젊은이들이 들어오면서 사정을 달라졌다. 물론 그 중엔 동성애자의 비율이 상당히 높았다. 이들은 대부분 패션, 그래픽디자인, 건축, 예술 등 창의적인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고, 대안적이면서도 수준 높은 문화적 취향을 갖고 있었다. 결혼하지 않고 부유한 30~40대 인텔리 소비층이 다수였고, 아이를 둔 가정은 드물었다. 이들은 최고의 음악과 음식, 아름다운 디자인, 밤 문화 등을 통해 특유의 어른 중심적 수요를 창출하기 시작했다.


-유명 내셔널 프랜차이즈 매장들이 즐비한 소호 지역.

P.108
경제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지가가 오르고, 소득이 높은 계층이 이주해 들어오는 현상을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라 한다. 고소득층이 들어온다는 뜻은 저소득층이 밀려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종종 공공개발에 의해 추동되지만, 지역적 특성 자체가 자연스럽게 젠트리피케이션을 불러오는 경우도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뉴욕의 소호다. 실험적인 갤러리와 소규모 신생 디자이너들의 가게는 이미 명품 브랜드나 내셔널 프랜차이즈의 대형 매장에 자리를 넘겨주었다. 소호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붐비지만, 토박이 뉴요커가 점차 관광객으로 대체되면서 전과 같은 활력을 찾아보기는 힘들어졌다. 가난한 예술가와 멋스런 찻집, 예술적 자극과 경제활동의 시너지 효과를 대표하던 소호의 이야기는 이제 기억하기도 힘들 아득한 전설이 되었다.

젠트리피케이션. 익숙한 단어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자본주의 사회라면 어디에나 존재하는 전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지만 좀 섭섭한 일이기는 하다. <시티오브뉴욕>에서는 서울 경복궁 서쪽의 한옥지구인 서촌을 예를 들며 젠트리피케이션을 설명하고 있다. 사실 서촌뿐만 아니라 서울 곳곳에서 짧고 굵은 젠트리피케이션을 목격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뉴욕의 대표적인 젠트리피케이션 사례는 소호Soho다. 위 글에서 설명하고 있듯이 소호 역시 실험적인 갤러리와 신생 디자이너들이 모여 있는 특색있는 거리였다고 한다.이렇듯 소호의 전성기는 로워이스트사이드와 윌리엄스버그가 이어가고 있다고 하지만 로컬들이 보기에 로워이스트와 윌리엄스버그도 이미 젠트리피케이션이 시작되었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기껏 로컬들이 애정을 갖고 키워놓은 지역에 거대 자본으로 밀고 들어온 기업들이 얄궃기는 하지만 시장의 법칙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속 편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책은 찬찬히 다시 읽어봐도 이 책을 뉴욕에 가기 전에 읽는 것보다는 다녀온 뒤에 읽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격자 시스템을 스트리트와 애비뉴의 개념도 글로 이해하기에는 머리가 지끈 거렸을 것 같기도 하고. 웹페이지 하나로 17일이라는 기간동안 느낀 뉴욕의 매력에 대해 정리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잊혀졌던 기억을 조금씩 꺼내어보니 문득 또 다시 가고싶다는 강한 열망이 든다. 주변에서는 뉴욕행 티켓을 산 후에 왜 뉴욕이었냐고 물었었다. 그저 '섹스앤더시티SATC 팬이라서요.' 라고 답하자 지인들은 실소했다. 아마도 매그놀리아 컵케익을 사들고 그리니치 빌리지의 캐리의 집을 찾았을 때의 벅차올랐던 이야기를 듣는다면 배를 부여잡고 웃을지도 모르겠다.




저자: 최이규
저자 최이규는 10년차 뉴요커. 아이들 키우기에 바쁜, 행복한 ‘경관건축가’다. 인류학에서 시작해 도시계획과 조경을 전공했다. 뉴욕건축가연맹 주최 공모전에서, 맨해튼격자망의 미래 구상 작품이 당선, 뉴욕시립미술관에서 전시를 가졌으며, 북미와 유럽의 설계경기에서 몇 차례 우승했다. 현재 그룹한 뉴욕오피스 근무, 월간 ?환경과조경?에 글로벌디자인 리더와의 인터뷰를 싣고 있다. 미국 공인도시계획사AICP, 영국 파이돈출판사의 세계 조경가 60인에 포함되었다.


저자: 음성원
저자 음성원은 한겨레신문에서 서울시 출입기자를 맡아, 도시 정책과 커뮤니티 문제를 다루고 있다. 학부에서 산림과학을 공부하고, 도시계획학 석사과정을 밟으며 경관생태학 분야 논문을 썼다.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건설업계를 비롯해 경제 분야를 중심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취재 활동을 해왔다. 부동산과 주거, 자원 순환 등 공간의 변화 속에서 벌어지는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기사를 통해 녹여내며, 도시 문제를 저널리즘의 중심 영역으로 끌어올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글, 사진: 땡스북스 최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