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5일 ~ 2017년 5월 11일
땡스북스 금주의 책

퇴사하겠습니다
엘리
이나가키 에미코 저/김미형 역


아프로 헤어를 한 채로 책의 띠지를 앙증맞게 장식하고 있는 이 책의 저자는 28년간 ‘아사히신문사’에서 기자 생활을 하고, 50세를 맞이하여 퇴사를 선언한 여성이다.
그녀는 이 책을 통해 회사 인간으로 (잘) 지내고 있던 와중 퇴사를 결심하게 된 이유뿐만 아니라, ‘회사에서 일한다는 것’에 대해. 그리고 인생에서 회사를 삭제하기로 함과 동시에 감행한 사고방식과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며, '일하는 자'로 살아가는 이들의 하루하루를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를 안겨준다.

결국 이 책은 '회사를 그만두는 것'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회사 없이도 잘 사는 법, 그러니까 나 자신의 가치와 행복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었다.



p.102
무언가를 없애면 거기에 아무것도 없게 되는 게 아니라, 그곳에 또 다른 세계가 나타납니다. 그것은 원래 거기에 있었지만 무언가가 있음으로 인해 보이지 않았던, 혹은 보려고 하지 않았던 세계입니다.
‘없다’는 것 속에 실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었던 겁니다.
그러나 나는 여태 애써 ‘있는’ 세계를 추구해왔습니다. ‘있는’ 것이 풍요로운 것이라고 믿고, 그걸 위해 일하고 열심히 돈을 벌어왔습니다. 하지만 ‘없는’ 것에도 풍요로움이 있다면, 지금까지의 노력은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
‘없어도 살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 그런 내 자신을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자유였습니다.


사실 이 책을 집어 든 이유는 나 역시 3월에 "퇴사하겠습니다."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의 존재를 알기 전이었던 터라 딱히 책을 읽고 퇴사를 결심한 건 아니었지만, 퇴사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도 이게 잘한 일인지, 잘못한 일인지를 몰라 하루에도 수십번 '퇴사하길 정~말 잘~했어요♪ '와 '뭘 믿고 그랬어 이 미친 사람아'를 번복하던 감정의 널뛰기를 이나가키 에미코님께서 다소 진정시켜주신 것만은 분명하다.
퇴사를 결정한 시점에서 내가 믿는 건 더 좋은 회사나 화려한 여행 계획이 아닌 '나 자신'! 그러니까 내 가치와, 내 노력과, 나와 연결되는 이들과, 그것을 통해 찾아낼 내 일의 진정한 보람과 행복뿐이었기에, '무언가를 없애면 그곳에 또 다른 세계가 나타난다.'는 그녀의 말을 동아줄 삼아 매달리고 싶었다. 불안감에 휩싸여 이불을 걷어차는 새벽이 올 때마다 흡사 라라랜드톤으로 '그래! 당장 회사에 의지하지 않더라도 분명히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을 거야. 생각지도 못한 멋진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잖아? 하하! 이나가키 에미코상 그 말이 맞지요? 그쵸?? 네???? (메아리...)'를 외쳐대다가 '야 됐고.. 아직 퇴직금이 있잖아.. 진정하자.'로 마무리 지어야 했지만...



p.94
그 무렵 회사는 내 안에서 ‘무언가를 해주는 대상’이 아니라 ‘여러모로 돌봐줘야 할 상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름대로 했다는 마음이 커졌습니다.
회사로부터 무한한 은혜를 입었지만, 그 빚은 나름대로 다 갚지 않았는가.
그리고 앞으로의 10년을 생각하면 내가 회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보다, 월급이니 지위니 ‘받을 것’만 남은 것 아닌가.
인간은 나약하고 욕심 많은 존재입니다. 받을 수 있는 거면 받아두려는 가난한 마음이 내 속에도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불균형이 행운이라기보다 버겁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겨우 빚을 다 갚았는데, 필요하지도 않은 빚을 또 지기 시작해야 한다는 느낌.


내 퇴사 소식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아니, 타인이 물어보기 이전에 이미 꽤 긴 시간 동안 수없이 자문해보았던 것이다. 이유는 많았다. 너무 지쳐서, 체력이 바닥나서, 정신적으로 괴로워서, 다른 일도 경험해보고 싶어서, 이 일이 정말 내 일인지 확신이 서질 않아서...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고민들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컸던 이유는 '내가 회사에 더 해줄 수 있는 게 있을까?'라는 점이었다.

6년 이상의 시간만큼이나 이곳을 아끼는 마음과 책임감이 커져갈수록 '나라는 직원이 이 회사에 최선인지' 그리고 '이 일이 내게 최선의 직업인지'에 대한 회의감이 번져갔다. 때론 즐겁기보단 부담스러웠고, 스스로 회사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날이 이어질 땐 가만히 앉아있는 것 자체도 괴로워, 반차를 쓰고 자리를 피한 적도 있었다. 누군가는 내가 지금까지 잘해온 덕분에 이 공간이 지금까지 잘 유지해오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단지 상태 유지에 마음 놓고 있을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더 나은 것, 더 새로운 것에 대한 압박감에 휩싸이면서도, 개인이 아닌 회사의 이름으로 무언가를 시도하고 추친하는 일이 마음처럼 쉽지 않았고, 동시에 내가 그 정도로 서점 일에 뜻이 있는 사람인지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 혼란의 과정을 겪으며 결국 지금의 상태로 흘러가도록 두는 것은 회사와 나, 서로에게 좋을 것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어떤 형태로든 변화의 계기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잠시 멈춰 서 다른 환경에 나를 놓아두고 새롭게 배우고 경험해봐야 할 때임을 인정해야 했다. 그렇게 돌아돌아 제자리로 오게 된다 해도 지금의 나와는 분명 달라져 있을 거라 확신하기에.


p.176
나를 둘러싼 환경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사택도, 수입도, 나날이 다니던 곳도, 동료들도, 쏟아져 들어오던 메일도 싹 다 없어졌습니다. 그야말로 끈 떨어진 연 신세! (...)
......아, 죄송합니다. 하지만 정말 웃음이 나오고 마는지라.
음, 왜일까요?
그건 아마도 내가 자유롭기 때문일 것입니다.
불안하고, 고독하고, 그러나 그걸 어떻게든 견뎌낼 수 있는 나 자신이 있습니다. 그걸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건 회사 덕분이기도 합니다. 회사에 휘둘리고 울고 웃고 싸워왔기에 비로소 지금의 내가 있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불안과 고독에 잡아먹힐 수 있는 상황에서도 그녀는 꽤 긍정적이다. 아니, 오히려 신나 보인다. 그것은 그녀 말대로 28년간 회사에서 쌓아온 내공과 자신의 가치에 대한 확신 때문일 것이다. 내가 뭘 잘 하는지, 잘 못하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알려준 것도 모두 회사와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 덕분이니까.




2011년 3월부터 2017년 4월까지. 대학을 갓 졸업하고 대책 없이 상경했던 스물다섯이 서른한 살의 7년차 회사원이 되었다. 단지 때깔만 좋아진 게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은 부분이 성숙하고 단단해졌다. 나의 어떤 스승보다도 더 많은 것을 가르쳐주시고 챙겨주신 대표님과 실장님, 나의 동료들과 이곳에서 함께했던 열댓 명의 파트타이머 친구들.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배울 점이 많았던, 이곳에 참 어울리는 마음 따듯한 이들이었다.

오늘 근무를 마지막으로 회사를 떠난다. 그 두렵고도 설레는 앞날에 어떤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게 무엇이든 지난 6년간의 시간이 나를 힘차게 지탱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누군가 그 자신감의 근원을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해야지.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 이 아니라 나의 첫 회사 '땡스북스'였다고.
내 평생의 은인이자 행복한 추억이 될 고마운 땡스북스.
정말이지 "땡스, 땡스북스"다!


저자: 이나가키 에미코
자유인. 미니멀리스트.
일본 명문 국립대인 히토츠바시 대학 사회학부를 졸업하고, 1987년 아사히신문사에 입사했다. 다카마쓰 지국, 교토 지국을 거쳐 오사카 본사 사회부 데스크 등을 역임하다, 2016년 1월, 한번 들어가면 좀체 나오지 않는다는 아사히신문사를 자진 퇴사했다. 남편 없고 의지할 자식도 없고 게다가 무직, 그러나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희망에 차 있다.
특종 한 번 못 잡은 기자라고 자조적으로 말하지만 솔직한 인품과 따뜻한 유머가 녹아 있는 글들로, 기자 시절부터 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미니멀리스트로서, 물질로부터의 자유, 욕망으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월급으로부터의 자유를 지향한다. 상쾌한 인생을 꿈꾼다.

역자: 김미형
전문번역가. 제주대학교 일어일문학과 졸업. 일본 주오대학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우에노 역 공원 출구』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글, 사진: 땡스북스 최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