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20일 ~ 5월 26일
땡스북스 금주의 책

소년
열린책들
이승욱 지음

제게 있어서 좋은 책이란, 책을 덮는 순간 ‘OO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책입니다. 그런 책을 만나면 ‘선물 해야겠다’는 마음과 동시에 ‘선물하고 싶은 그 얼굴’이 떠올라서 지레 가슴이 뛰곤 합니다.
그렇다면 저는 이 책을 읽고 누구를 떠올렸을까요? 바로 저의 친오빠였습니다. 겨우 두 살 터울이지만, 어릴 때부터 제게 너무나도 ‘오빠다운’ 모습을 보였기에 단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었던 그 소년을요. 스물아홉의 다소 이른 나이에 오랜 시간을 함께한 여자친구와 결혼을 한 오빠는 어느덧 두 아들의 아빠가 되었습니다. 이젠 오빠 아닌 아빠가, 소년 아닌 어른이 되어버렸지만, 아직도 저는 오빠의 마음속에 연약하고도 섬세한 어린 소년이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그 수많은 이야기 중 하나만 꼽자면 저희 부모님이 싸우실 때였습니다. 오빠는 어마어마한 덩치에 힘도 셌지만, 드라마를 볼 때면 엄마와 저만큼이나 눈물을 훌쩍이던 감성을 가진 소년이었습니다. 그런 오빠가 엄마 아빠와의 싸움을 말리고, 화를 내고, 설득하고, 무릎을 꿇고, 상처받은 나와 엄마를 달랜 뒤에야 자기 방에 들어가던 모습을, 그리고 밤새 방문을 넘어 들려오던 오빠의 울음소리에 함께 울었던 밤들을 기억합니다. 십수 년이 지나서야, 오빠가 어린 시절에 아빠를 죽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는 것을 교회 목사님께 고백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땐 정말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습니다. 물론 저 역시 어릴 때부터 꽤 어른스러운 아이였습니다. 아마도 저까지 누군가를 속상하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애교 없이 무뚝뚝하고, 눈물만 많은 여동생이었기에 오빠가 짊어진 마음의 무게를 덜어주진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누구보다도 곧고 바르게 자란 오빠라서 그런지, 이미 다 커버린 오빠를 보면서도 저는 가끔 안쓰러움을 느끼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걱정들은 자신의 두 아들을 바라보는 오빠의 눈빛과 아이와 함께할 계획들을 설명하며 설레하는 오빠의 표정에 금세 사그라들곤 했습니다.
‘소년은 어머니의 울음을 통해서만 자랄 수 있는 것 같다’는 저자의 말처럼 어머니의 눈물을 닦아주던 그 어린 날부터 오빠는 소년의 경계를 넘어선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책 소개를 해야 하는데 제 오빠의 소개가 너무 길어진 것 같습니다. <소년>을 쓴 저자는 정신분석가 이승욱 님입니다. 상담이란 분야에 관심이 많은 저는 저자의 다른 책인 <상처 떠나보내기>를 이미 읽어본 터라, 정신분석가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어떤 식으로 이야기 했을지 더 궁금해졌습니다. 내담자의 과거를 분석하여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상담 기법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자연스레 반영한 듯 책 속엔 저자의 어린 시절과 함께 그것이 자신의 성장 과정에 미친 영향, 그렇게 만들어진 성격의 일부분을 명확히 짚어내고, 독자들 역시 비슷한 경험들을 떠올려 볼 수 있도록 질문을 던집니다.
자신의 아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써내려간 글이라 그런지 솔직하고 구체적이면서도, 이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전하고 싶은지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게끔 해줍니다.

사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저자의 말씨, 곧 문체입니다. 책을 보는 내내 눈으로 읽어낸다기보다는 누군가가 옆에서 조곤조곤하고도 다정하게 읽어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감탄할만한 비유나 화려한 글솜씨를 보이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너무나도 쉽고 평범한 글이라서 더 놀라운 힘을 느꼈습니다. 생소할 수 있는 내용을 어렵지 않게 설명하고, 갓난아기의 가슴을 토닥이듯 따듯하고 조심스러운 배려가 느껴지는 글이었습니다. 그 덕에 저는 책을 읽으면서 더 자주 미소 지었고, 더 자주 울컥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존댓말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ㅎㅎ)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부분은 책 표지입니다. 담백하면서도 묵직한 작가의 이야기와는 썩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누군가의 진솔한 성장기 보다는 자극적인 스토리를 담은 ‘소설’의 표지 같다는 것이 책에 대한 첫인상이었습니다. (소설 <은교>의 표지로 더 잘 어울렸을 것 같습니다) 핑크와 골드를 섞어낸 고급스럽고 사랑스러운 색감이지만 책을 읽고 나니 다소 아쉬움이 남습니다.


책 속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는 자신의 소년기, 어머니와 아버지와의 관계, 친구와 선생님과의 관계들을 돌아보게 됩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 소유의 트럭을 운전하던 기사의 옆에 탔다가 트럭이 엎어지는 사고를 당했을 때, 그 순간 달려온 아버지가 트럭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신이 다친 곳이 없는지 어루만지던 경험을 통해서 아버지에게 있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나라는 확인을 받았던 것.
초등학교 1학년, 전학 첫날부터 잔뜩 긴장한 채로 열심히 그림을 그리던 아이의 뒤통수를 내리치며 그림이 이게 뭐냐고 화를 내던 선생님의 행동으로 ‘학교에서 내가 뭔가를 하면 선생님이 화를 내고 나는 혼이 난다. 그러니 나는 학교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겠다’라는 비합리적인 신념을 갖고 보내게 된 학창시절.
공부도 못하고 지질하고 주눅 든 손자에게 “두고 봐라, 크게 될 놈이다.”라며 늘 단호하게 말씀하시던 할머니의 그 ‘확신’ 하나만으로, 삶을 극복해 나갈 수 있다는 ‘확신’을 얻은 일.
소년은 그 수많은 경험을 토대로 자라고, 여물어갑니다.


나를 괴롭히거나 힘들게 하는 일들을 말이나 글로 찬찬히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감정을 정리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는 저자의 조언처럼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이 이 글을 쓰고 나서야 비로소 정리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오빠가 아닌 나의 이야기, 나의 어린 시절, 나의 기억들. 지금의 나에게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였음에도 무엇부터 건드려야 할지 몰라 방치해둔 그 기억들을 꺼내어 안아주고 잘 보내주어야 합니다. 아프기도 했지만, 행복한 기억이 더 넘쳐나던 나의 어린 시절, 나의 소녀. 그 소녀를 잘 보듬고 간직하여, 저 역시 어느 한 계절도 빈 곳 없이 속이 탄탄한 나무처럼, 섬세하고 집요한 어른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책을 건네받는 한때 소년이고 소녀였던 모든 이들 역시 그러하길 바랍니다.







저자 : 이승욱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 교사를 사직하고, 가족들과 함께 뉴질랜드로 떠나 정신분석과 철학을 공부했다. 뉴질랜드 정신병전문치료센터에서 정신분석가로 심리치료실장으로 10년 가까이 일하다가, 시작한 곳에서 끝을 맺기 위해 뉴질랜드 생활을 접고 귀국했다. 귀국 후에는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하자작업장학교의 교감직을 맡기도 했으며, 지금은 경복궁 옆 서촌에서 ‘닛부타의숲 정신분석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스스로의 생존조차 보호할 힘이 없는 약자들과 연대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실행하고 있고, 무엇보다 다음 세대가 건강하게 잘 성장하도록 기여하는 일에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정신분석과 심리학을 공공재로 사용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승욱의 공공상담소」라는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스스로의 생존조차 보호할 힘이 없는 약자들과 연대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실행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다음 세대가 건강하게 잘 성장하도록 기여하는 일에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저서로 『상처 떠나보내기』, 『대한민국 부모』(공저), 『사랑에 서툰 아빠들에게』 등이 있다.

글, 사진: 땡스북스 최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