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17일 ~ 2017년 3월 23일
땡스북스 금주의 책

베를린 일기
민음사
최민석 지음

나는 지금 이 글을 달리는 기차 위에서 시작했다. 물론 컴퓨터를 이용해 다시 글을 쓰겠지만 일단은 그렇다. 의도치 않게(아니 제목부터 ‘일기’가 들어갔으니 이것은 의도 된 것이 맞다.) 일기를 읽었으니 나도 일기처럼 써보려고 시작했지만 감상 글을 일기처럼 쓴다는 것이 쉽지 만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그냥 의식의 흐름대로 써보기로 한다.

일단 나는 여행 에세이를 읽지 않는다. ‘여행은 떠나야 제맛’주의 이기 때문에 여행관련 글은 블로그 명소 리뷰나 맛집, 역사 관련 글만 읽고 교통이나 관광지 요금 같은 것만 책에서 읽어가는 편이다. 하지만 ‘베를린 일기’를 집은 것은 첫날(10/15일)의 일기를 읽고 나서였다. 도시 이름이 제목에 박혀 있으니 당연히 여행에세이인줄만 알았다. 여기까지 볼펜으로 휘갈기다 가방에서 꺼내 표지를 다시 보았다. ‘여행’ 에세이라고 적혀있지 않다. 사람이 이렇게 단순하다. 어쨌든 작가의 일기는 첫 페이지부터 갑작스레 터진다. 풉, 하고.


왜인지 베를린 이야기는 별로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베를린의 웅장한 성들이나 오래된 역사, 자연풍광 그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단 말이다. 최민석 작가는 90일동안 베를린에서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것은 日記니까. 독일어 학원에서 만난 친구들과의 이야기, 물보다 싼 맥주, 빼놓을 수 없는 소시지 이야기, 소소한 에피소드가 이어진다. 작가가 겪은 상황들이 재치 있는 문장들로 표현되어 있어서 그에 공감하며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단순한 이야기에 빠져 사백 몇 십여 쪽이 순식간에 흘러버린다. 단숨에 베를린의 마지막 날이다.


그렇게 마지막 즈음인 1/10일의 일기가 참 좋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려 한다’ 라는 문장에서 작가가 갖고 있었을 마음이 조금 이해되기 때문이다. 첫 배낭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에 아쉬운 마음이 아닌 감격스러움에 눈물을 찔끔 흘린 적이 한 번 있었다. 800km를 걷는 여정인 스페인 ‘순례자의 길’을 걸었을 때의 일인데 목적지인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에서 일이었다. 목적지 도착 일주일 전 정도에 네덜란드 중년 여성을 한 숙소에서 만났었다. 그리고 가벼운 인사를 했었던 기억이 있었고 한 두 번 더 마주쳤었나? 싶을 정도의 가벼운 인연이었었는데 목적지에서 우연히 같은 숙소에서 묵고 있다가 떠나는 그녀를 만나게 된 것이다.새벽기차를 타야한다며 길을 나서는 그녀는 내게
‘멀리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이 길을 걷겠다고 이렇게 어린 여자아이가 온 건 정말 대단한 일이야. 너는 정말 멋진 아이고 자랑스러운 사람이야. 정말 대단해.’
라고 마지막 인사를 건네며 눈물을 훌쩍이는 내 어깨를 토닥거리다가 떠났다. 그녀의 따뜻한 인사말은 아직까지도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여행지는 사진뿐만 아니라 누군가를 만나고 인연이 쌓였을 때 더 두텁게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작가 역시 베를린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애정이 점점 깊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작가의 ‘물리적 울음’에 깊이 공감하는 바이다. 나도 그곳에서 지나쳐간 사람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작가가 느낀 백림(베를린)의 우중충한 날씨가 백림을 떠날 즈음 익숙해지며 그립게 느껴졌던 것처럼 오늘 기차를 타러 집을 나섰을 때 새벽공기가 그렇게 만들었다. 짐 싸들고 길을 떠나기 시작했던 어느 날의 새벽처럼.

친구와 다시 그 길을 걷자고 약속을 했고 적금을 들기로 했다. 달력에 표시도 해두었다. 그러고 나니 당장 내일 떠날 것처럼 벌써 설레기 시작한다. 아무튼 그때는 나도 이 책처럼 일기를 꼼꼼히 써보려 한다. 그럼 제목은 뭐로 해야 할지 고민이다.


저자: 최민석
밴드 '시와 바람'의 보컬이자 소설가. 1977년 경북 포항에서 태어나 서울대 대학원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했다. 2010년 단편소설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로 창비신인소설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저서로는 장편소설 『능력자』, 『쿨한 여자』,『풍의 역사』 소설집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 에세이집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 등이 있으며, 2012년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최민석 소설의 특징은 유쾌함이다. 풍자와 해학이 담긴 문장을 읽다 보면 슬픈 이야기라도 웃게 되는 매력이 있다.

글, 사진: 땡스북스 염한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