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9일 ~ 9월 22일
땡스북스 금주의 책

필사의 기초
유유
조경국 지음

손으로 글씨를 쓰는 이유
만년필이 하나 생겼습니다. 수성펜이나 볼펜과는 다른 필기감과 특성 때문인지 왠지 더 신기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안에 든 잉크를 다 쓰면 카트리지를 바꾸거나 병 잉크에서 잉크를 넣는다는 점이 좋아 보이기도 했고요. 마음에 드는 만년필을 하나 가지면 오래도록 곁을 지켜 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다만 그다지 쓸 일이 없었습니다.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 종이에 글씨를 쓰는 일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뭔가 재빨리 기록해야 할 때는 스마트폰의 메모 기능을 쓰거나 나아가 사진으로 찍어 두면 될 일인걸요. 종이와 펜을 꺼내 기록하는 시간이면 스마트폰은 필요한 메모나 정보를 몇 배 빨리, 몇 배 많이 저장할 수 있습니다.

아마 그래서 요즘 사람들이 필사를 생각하나 봅니다. 디지털은 우리의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대신 손끝의 감각을 둔하게 하는 게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편하지만 단조롭죠. 여행 사진을 백 번 본들, 내가 그 자리에서 직접 보는 것만 못합니다. 나의 눈으로 보고, 나의 코로 맡고, 나의 손으로 만지는 일이 점점 소중해지는 시절이 도래한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커피를 편리하게 만들어 주는 캡슐커피도 있고 에스프레소 머신도 있는데 한사코 드립커피를 고집하는 이들이 있는 것처럼요. 시간도 더 오래 걸리고 맛도 일정하지 않은데, 만드는 과정의 손맛이 즐겁고 일정하지 않은 맛이 오히려 흥미를 돋웁니다. 실수를 하기도 하고, 맛이 없어 울상을 짓기도 하죠.

필사는 사실 만년필을 어떻게든 쓰고 싶어서 시작한 일입니다. 일하면서 만년필을 쓸 일은 대단히 드물고, 키보드면 거의 해결되는데 만년필을 대체 어디에 쓸까요? 하지만 틈틈이 손을 대 보니 매력이 있었습니다. 어떻게든 더 만지고 써 보고 싶어졌는데, 도리가 없었어요. 그럼 뭔가 써 보자. 우선 다이어리부터 시작했습니다. 필사는 어렵게 느껴졌거든요.

필사를 갓 시작한 이에게 주는 작은 안내서
이 책 『필사의 기초』는 이제 다이어리에서 벗어나 조금 더 나아가고 싶은 이들을 위한 안내서입니다. 손글씨의 재미가 막 느껴졌는데 그다음은 어떻게 할까 하는 이들에게 주는 선물 같은 책이지요. 저자는 메모에 버릇을 들이고, 가난한 탓에 큰돈 들이지 않은 채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시작한 일이 필사라고 말합니다. 앞에서 만년필을 말했지만, 시작은 연필이든 샤프든 사실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좋아하는 문장 혹은 책을 골라서 옮겨 적으며 혼자 있는 시간을 견뎠다는 저자의 말이 애처롭지만, 그 재미있지만은 않은 시간을 건너 저자는 이제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경지에 이르렀고, 그 시간 속의 동지였던 문방구와 함께 글을 씁니다.

저자는 글씨를 예쁘고 가지런히 쓰지 못하더라도, 바빠서 딱히 시간을 낼 수 없더라도, 좋은 책상과 의자가 없더라도 어쨌든 읽고 써 보라고 권합니다. 궁극의 독서는 필사라고 주장하지요. 옮겨 적으며 다시 한 번 책을 이해하고 소화하고 내 안을 채웁니다. 내가 선택한 필기구로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종이 위를 걷는 손맛과 그렇게 한 번 더 글을 읽어 가는 맛을 즐거워하는 때가 오면, 펜을 쥔 손의 뻑뻑함도 굳힌 자세 때문에 오는 어깨의 뻐근함도 눈의 피로도 충실한 기분을 더해 주는 불편이 되지 않을까요?

끝으로, 책의 말미에 있는 저자의 필사 도구 소개가 재미있습니다. 긴 시간, 필사를 하며 써 본 이런저런 필사 도구 가운데 저자가 가장 사랑하는 몇몇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소박하게 필사를 시작한 저자답게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되 실제로 필사할 때도 좋은 필기구로 채워져 있지요.

손끝으로 느껴지는 감각이, 가만히 혼자 있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막 알게 된 분, 알고 싶은 분께 권합니다. 만지작만지작하는 감각은 소중하니까요.





저자: 조경국
필사를 시작한 지 10여 년 되었고 펜이나 노트 등 문구류는 필사를 시작하기 전부터 좋아했다. ‘받아쓰기’ 해야 하는 직장에서 꽤 오래 버틴 덕분에 쓰는 습관이 자연스레 몸에 배었다. 펜글씨 교본을 몇 권 가지고 있으나 끝까지 채워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시집에 얇은 공책을 끼워 다니며 필사하고 만년필로 어설프게 그림 그리는 것을 즐긴다. 『천자문』은 열 번 넘게 베껴 썼고, 몇 번 중간에 그만둔 사서삼경을 제대로 필사하는 것이 목표다. 오래전부터 헌책방 책방지기가 되길 꿈꾸었다.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마흔 되는 해에 마침내 그 꿈을 이루어 고향에서 소소책방을 꾸리며 3년째 열심히 버티고 있다. 책방지기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직업이라고 믿고 있다.

글: 유유 편집부
사진: 땡스북스 김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