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15일 ~ 4월 21일
땡스북스 금주의 책

소소한 사건들: 현재의 소설: 메모, 일기 그리고 사진
포토넷
롤랑 바르트 저, 임희근 역, 박상우 해설

먼저 주의사항을 얘기해야겠다. 우리는 책이 매끄럽든 매끄럽지 않든 일련의 서사를 지니고, 그 서사를 통해 어떤 메시지(의미)를 전달할 것이라는 기대를 품는다. 읽으려는 책이 소설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타당하고 정당한 기대다. 하지만 소설이랄 수도 있는 이 책, <소소한 사건들>을 읽을 때는 그런 기대를 접어두시라 주의를 드리고 싶다. 이 책에서 서사와 메시지를 찾으려 한다면 불현듯 가슴은 답답해지고 두통과 소화불량에 시달릴 것이다.


<소소한 사건들>은 책의 뒷면에 대문짝만 하게 써 있듯, “스냅사진 찍듯 써내려간 글들”이자 “현재를 기록”한 책이다. 롤랑 바르트는 모로코에 머물면서 순간순간 흥미를 끈 장면들을 스냅사진 찍듯 썼는데, 이것들을 모은 챕터가 제목과 같은 「소소한 사건들」이다. 글들은 길어야 두세 쪽이며, 대개는 대여섯 줄에 그친다. 유독 지면의 여백이 많은 이 장은 약 백 쪽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빨리 읽는다면 삼사십 분만에 읽을 수 있다. 정말 사진을 주르륵 넘기며 보는 것 같다.


P.26
열차 내 바bar의 종업원이 어느 역에서 내리더니 빨간 제라늄을 한 송이 따가지고 물 컵에 꽂아서, 설거지할 찻잔이며 더러운 행주가 마구 널려 있는, 어지간히도 지저분한 개수대와 커피 내리는 기구 사이에 놓아두었다.

P.38
조그만 바지를 입고 모자를 쓴 다섯 살짜리 꼬마가 문을 두드리고 - 침을 뱉고 - 제 고추를 만진다.

P.73
모르는 소년이 찾아왔는데, 자기 친구가 가라 해서 왔단다.
“원하는 게 뭐지? 왜 왔어?”
“자연이오!”
(예전에 다른 소년은 말하기를 “사랑이오!”)

이런 글들에 서사가 있기란 어렵다. 그저 파편적인 장면들이 모여 있을 뿐이다. 콜라쥬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콜라쥬와도 다르다. 이질적인 장면들이 모여 어떤 것을 가리키는 콜라쥬는 메시지를 지닌다. 하지만 「소소한 사건들」은 장면들이 모이지 않는다.
다른 챕터 「파리의 저녁들」은 약 삼 주 치의 일기다. 저녁마다 있었던 일을 적은 이 글들은 짧은 산문이나 단편 소설이랄 수 있는 서사를 지녔지만, 딱히 메시지가 보이지 않는다. 서사에 대한 요약이 가능할 뿐, 서사 위로 흐르는 저자의 강력한 목소리는 발견하기 어렵다.
나머지 챕터 「남서부의 빛」, 「팔라스 클럽에서, 오늘 저녁...」은 다른 챕터에 비해 서사도 메시지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챕터가 차지하는 양이 매우 적다. 그러므로 <소소한 사건들>을 읽을 때는 주치의, 아니 이 리뷰와 상담하시길.

그렇다면 이제 이 책은 왜 서사와 메시지가 보이지 않는지, 우리는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얘기해야 할 텐데, 이 부분은 아주 용한 분에게 넘긴다. 책에는 앞 뒤로 해설이 붙어 있다. 읽어 보니 (이해가 다 되지는 않지만) 용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롤랑 바르트가 어떤 생각으로 글을 썼는지, 그렇게 쓰인 글이 역사적으로 혹은 문학적으로 어떤 맥락 속에 놓이는지 알 수 있다. 맥락 속에 놓인다는 건 의미 지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메시지를 포기할 수 없는 분들이라면 해설과 함께 건강한 독서 되시길.
글을 이렇게 마무리하면 돌이 날아올 테니 내가 쓸 수 있는 걸 쓰겠다. 그러자면 처음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부터 말해야 한다.


P.8
나는 무언가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 있지, 더 이상 무언가에 ‘관해’ 말하는 사람의 입장에 있지 않다. 즉 나는 하나의 산물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생산을 떠맡는다. 나는 담론에 관한 담론을 철폐한다. 세상은 이제 내게 하나의 대상의 형태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글쓰기의 형태로, 즉 실천의 형태로 다가온다. 나는 또 다른 유형의 앎(즉 ‘애호가’의 앎)으로 넘어간다…

해설에 인용된 바르트의 글이다. “하나의 생산을 떠맡는다.”. 이 말이 좋았다. 생산자로 살아가겠다는 선언 같은 이 말은 ‘글쓰기는 어디서 출발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떠올리게 했으니까.
내가 쓰고 싶은 글은 이게 아닌데. 글을 쓰다 보면 이런 생각에 자주 부딪힌다. 어디 제출해야 하는 보고서를 쓰면서 그런 게 아니라, 일기처럼 개인적인 글을 쓰는 와중에 그렇다. 그럴 때마다 나는 타인의 시선을 느낀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이 아닌, 타인의 마음에 들 만한 글을 쓰려는 욕망을. 내 자신과 거리를 두고 ‘그럴 듯한’ 말을 지어내느라 애쓰는 나를 알아채면, 씁쓸하다. 그렇게 나온 글은 그럴 듯하나 불편하다. 그토록 남의 마음에 들고 싶니? 이 질문에 나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그러므로 글쓰기는 어디서 출발해야 하는가?


P.21-23
그러므로 이러한 하찮음은 마치 사회학적 지식과 정치학적 분석의 대상인 이 광대한 지역으로 들어가는 문과도 같다. 예를 들면 내 추억 속에서 니브 강과 아두르 강 사이, 사람들이 ‘작은 바욘’이라 부르는 옛 동네의 냄새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 왜냐하면 어느 고장을 ‘읽는다’는 것, 그건 우선 육체와 기억에 따라, 육체의 기억에 따라 그 고장을 인식하는 것이니까. 작가에게 주어지는 자리는 바로 이 지식과 분석의 입구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저 나로부터. 내 느낌과 감정을 기준 삼아 글을 쓰는 생산자로서.
솔직히 나로부터 출발하는 글쓰기가 나는 두렵다. 느낌 자체도 그렇지만 문장으로 만들어진 내 느낌은 더욱 보잘 것 없어 사람들에게 읽히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르트의 말마따나 “작가에게 주어지는 자리는” 내 감각이다. 내게서 시작하지 않는다면 끝내 불편해지고, 나는 무엇도 ‘읽지’ 못할 것이다. 모든 게 그럴 듯하지만 정말 그런 것은 없는 텅 빈 글만을 쓸 테니까. 여전히 두렵지만 나는 바르트의 말을 믿는다.
나로부터 시작하는 글쓰기. 이 기준으로 본다면 서사도 메시지도 없는 <소소한 사건들>은 새로워진다.


P.26
열차 내 바bar의 종업원이 어느 역에서 내리더니 빨간 제라늄을 한 송이 따가지고 물 컵에 꽂아서, 설거지할 찻잔이며 더러운 행주가 마구 널려 있는, 어지간히도 지저분한 개수대와 커피 내리는 기구 사이에 놓아두었다.

P.38
조그만 바지를 입고 모자를 쓴 다섯 살짜리 꼬마가 문을 두드리고 - 침을 뱉고 - 제 고추를 만진다.

P.73
모르는 소년이 찾아왔는데, 자기 친구가 가라 해서 왔단다.
“원하는 게 뭐지? 왜 왔어?”
“자연이오!”
(예전에 다른 소년은 말하기를 “사랑이오!”)

이 글들은 일종의 연습이지 않을까. 나로부터 시작하는 글쓰기의 연습. 여기서 바르트가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순간 자신에게 차오르는 것을 있는 그대로 적었다고 생각한다. 아마 바르트 자신도 이 글들을 자세히 설명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순간의 기록인 만큼 타인의 시선은 멀어지고 나는 내게 가까워진다. 용기 있고 진솔한 연습이다.

생산자로서 글을 쓰기 위한 연습장. 내 생각에 <소소한 사건들>은 그렇게 읽어야 한다. 그렇게 우리는 답답함과 두통, 소화불량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 리뷰로 생긴 답답함과 두통, 소화불량은 전문가와 상담하길 바란다.


저자: 롤랑 바르트
프랑스 북부 쉐르부르 태생. 출생과 성장과정에서 다양성에 대해 열린 태도를 체득했다. 청년시절 폐결핵으로 고등사범학교 진학과 교수자격시험을 포기한 바르트는 소르본느에서 고전 문학을 전공한 후 젊은 시절 루마니아와 이집트의 대학에서 프랑스어 교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바르트가 프랑스 지성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53년 「글쓰기의 영도」와 1957년 「현대의 신화」를 잇달아 발표하면서. 문학비평에서 가장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저작은 1970년에 발간된「텍스트의 즐거움」. 이 책에서 바르트는 저자의 죽음과 독자의 탄생을 선언했다. 그 이전까지의 독서와 문학비평은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저자가 던져놓은 문장을 따라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르트는 문학작품이란 완벽하게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 선조들과 문화가 남겨놓은 것을 조립한 것에 불과하다는 관점에서 저자가 아닌 「필사자(scripteur)」라는 용어를 썼다. 바르트에 따르면 저자와 독자는 일방적인 생산자와 소비자가 아니라 텍스트 속에서 서로를 찾고 만나고 텍스트를 즐겨야 할 관계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 만화, 사진, 패션 등 현대 부르주아 사회를 둘러싼 신화를 읽어내고 그 베일을 벗겨내려는 노력을 기울이던 그는 1980년 미테랑 사회당 당수가 주최한 회식에 참석하고 걸어서 귀가하다 트럭에 치인 후유증으로 한 달 후 사망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자, 구조주의자, 후기 구조주의자 등 '현기증 나는 전이'를 통해 현대 프랑스와 세계에 가장 활력적인 사유 체계의 개척자로 손꼽힌다. 소설, 영화, 만화, 사진, 패션 등 현대사회를 상징하는 다양한 상징들에 대한 「읽기」를 시도하며 1960년대 이후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현대문학과 이론의 전위적 움직임을 상징하는 인물로 평가 받고 있다.

바르트의 저서 중『모드의 체계』는 바르트 기호학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대표적인 저술로 꼽히는 책이다. 그것은 1967년 그 자신이 기호학을 하나의 학문으로 정립할 수 있다고 행복하게 생각하던 시절이 산물이기 때문에, 바르트 기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저술이다.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 』는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 비판한 자서전이다. 20세기 후반 가장 탁월한 프랑스 지성 가운데한 사람으로 꼽히는 그는 오늘날까지도 프랑스 문단의 표징(表徵)으로 자리잡고 있다. 문학비평가이자 구조주의 작가로서의 바르트의 문학관과 글쓰기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사랑의 단상』은 괴테를 비롯한 치열한 '사랑의 담론들'에 대한 지극한 글읽기의 산물이다. 그러나 그의 '사랑의 단상'은 '사랑의 이야기'나 '사랑의 철학'이 아니다. 저자가 한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 이 책은 사랑에 대한 철학적 담론이나 수필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극'화한 글쓰기이다.

역자: 임희근
서울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3대학교에서 불문학 석사, 박사과정을 마쳤다. 번역한 책으로 『살림』『고리오 영감』『독재자와 해먹』『에콜로지카』『D에게 보낸 편지』『포도주 예찬』『불행의 놀라운 치유력』『사랑하는 연인의 발을 밟아라』, 『끝내주는 회장님의 애완작가』, 『쇼팽, 그 삶과 음악』, 『달라이 라마, 나는 미소를 전합니다』, 『정신의 진보를 위하여』, 『분노하라』, 『고리오 영감』 등 다수가 있다. 여러 출판사에서 해외 도서 기획 및 저작권 분야를 맡아 일했고, 현재 출판 기획·번역 네트워크 ‘사이에’ 대표로 해외 도서 번역에 힘쓰고 있다.

해설: 박상우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 국립고등사회과학원EHESS에서 예술사(사진과 미술 전공)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10년 〈서울사진축제〉에서 사진이론 워크숍을 기획했으며 현재 중부대학교 사진영상학과에서 사진, 미술, 영화 이론을 가르치고 있다.

글 땡스북스 이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