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19일 ~ 12월 25일
땡스북스 금주의 책

다시 동화를 읽는다면
반비
고민정, 권오준, 김용언 등저

다시
중학교 1학년, 단순히 독후감을 위해 집어들었던 책을 꼼짝않고 읽었던 기억이 있다. 명작, 혹은 청소년 권장도서에 항상 꼽히던 "몽실언니". 당시 도통 읽기 힘들었던 죄와 벌이나 백경과 같은 고전 명작이란 연장선에 놓여 보이던 책들을 멀리했었는데 그 때 처음으로 느꼈다. 내용에 몰입하여 오감으로 읽는다는 느낌을 말이다. 정말 순수하게 읽었던 것 같다. 그렇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어릴 때였기 때문일까. 처음이기 때문일까? 지금 다시 읽는다면, 그 날의 생생했던 느낌과 같을 수 있을까? 나는 이렇게 나이를 먹고 바뀌었고 책은 여전히 같은데 말이다. "다시 동화를 읽는다면"의 다음 제목이 이런 생각을 하게끔 만들었다.



최초의 아름다움, 최초의 윤리에 대하여
나에게나, 많은 이들에게나 이 책에 소개된 동화들은 초면이 아닐 것이다. 한 두가지 이야기들은 읽어보지 않았을 수 있지만 어린왕자는 알 것이다. "어린 왕자"를 많이 해석하고 이야기하지만 그 중 지금도 생각나는 것이 있다. 어린왕자는 어렸을 때와 성인이 되고 난 후의 해석이 많이 다르다는 이야기. 그래서 10대, 20대, 30대에 한 번씩 읽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이야기는 그대로인데 왜 뭐가 그리 바뀐다는 것인지 궁금했다. 내겐 어린왕자는 어린왕자였고, 모자와 코끼리는 여전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알 것도 같다. 처음 어린왕자를 접했을 때 온전히 내용만을 바라봤기 때문이었고, 그러한 읽기방식이 자연스러웠던 때를 지나쳐버렸기 때문이다.

P.14
어쨌든 저는 인어 공주도 아니고 그것이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걸 알지만 『인어 공주』를 계속 읽겠습니다. 뭔가를 얻기 위해선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니까요. 저는 빨간 망토를 입은 소녀는 아니지만 『빨간 망토』를 계속 읽을 것 같습니다. 세상엔 친절한 할머니의 목소리를 내는 늑대가 우글거리니까요. 저는 아기 돼지는 아니지만 『아기 돼지 삼형제』를 읽겠습니다. 내 집을 부서뜨리거나 나를 잡아먹으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늑대가 우글거리니까요. 제가 드라큘라는 아니지만 『드라큘라』를 읽겠습니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영혼이 없으면 남들의 피나 빨아먹고 살 수밖에 없단 걸 알려주니까요.(정혜윤)





P.74
『앤』 이야기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앤이라는 ‘사람’에게서 나온다. 어떤 소녀든, 어떤 여자든 앤에게 금방 친밀감을 느끼고 동질감까지도 갖게 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앤의 콤플렉스에 절절하게 공감할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홍당무 같은 빨강머리, 얼굴 가득한 주근깨가 아니더라도 외모 콤플렉스를 갖는 것은 모든 소녀의 ‘권리’이기조차 하지 않은가. 어느 하나 내세울 것 없다는 심정, 누구도 날 좋아해주지 않을 듯한 외로움,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지 못하는 답답함 등 앤의 열등감과 고독감과 불안에 공감하지 않을 소녀가 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게다가 앤은 고아이기까지 하니 말이다.(김진애)


P.107
사랑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의미를 찾지 않는다. 세계는 오직 사랑 안에서 생성되며, 오직 사랑의 법칙만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 그 세계 안에서는 꽃이 말을 걸고 두레박이 노래를 부르고 사막이 그리움으로 출렁인다. 단 한 사람에 의해 밤하늘의 별들이 한꺼번에 울다가 한꺼번에 웃는다. 우리 모두, 한때 그런 세계에서 살았다. “불과 삼사 년 만에 거장처럼 그리는 법을 배웠지만, 어린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되기까지 일생이 걸렸다.”고 피카소가 말했다. 일생을 걸 만한 가치가 있다. 그날 그 풍경 속으로 우연히 걸어 들어온 어린 왕자를, 그 모습 그대로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다면. 다시 한 번 그토록 무모한 사랑에 빠질 수 있다면.(황경신)


P.124
내가 지니고 있던 『몽실 언니』의 두 번째 독자는 나의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문학을 하겠다는 딸을 응원하셨지만 내심 걱정도 많았을 것이다. 제대로 된 직장도 없고, 시집갈 기미도 보이지 않고, 설사 가려 해도 보내줄 사정도 되지 않는 집안 형편 탓에 밤이면 잠이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밤, 내가 머리맡에 놔뒀던 『몽실 언니』를 말 그대로 잠이 오지 않아 집어 들었다가 그 자리에서 다 읽으셨다. 읽다가 우셨는지 눈이 부어 발갰다.
“얘, 이런 책 있으면 더 가져와 봐라.”(안미란)

P.138
더구나 모처럼 『15소년 표류기』를 다시 손에 들고 살펴보니, 어린 시절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추한 진실들이 훤히 보인다. 너무도 치명적이고 선명한 잘못들이어서 예전에 이 책에 감명 받았던 내 동심이 안쓰러워지기까지 한다. 요즘 아이들에게 이 책을 읽히는 것은 지나친 지적 태만이거나 오류라는 생각도 든다. 21세기 청소년 필독 도서에 올라야 할 책은 분명 아니다.(장석준)

온몸으로 읽기가 완벽하게 아름답고 좋다는 것은 아니다. 어렸을 때와 어른의 차이를 가르는 경험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유년 시절의 독서는 내용을 완벽히 이해했다고 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어린이용이었으니 말이다. 어릴 적 우릴 매혹했던 동화의 원형은 원형 그대로의 감동과 교훈을 느끼게 한다. 우리가 어떻게 성숙해져 어른이 되었는지를 같은 동화를 가지고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주말 TV는 아기들이 나오는 예능으로 꽉 잡혀있다. 추운 겨울 날씨만큼이나 삭막해져버린 마음이 작고 순수한 것에 목말라있는 것 같다. 잠시라도 그 모습에 따뜻함을 느끼며 미소를 짓는다. 그 모습들은 우리도 가지고 있던 것들이다. 잠시 잊고 있을 뿐이다. 동화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키다리 아저씨나 15소년 표류기처럼 세대가 바뀌며 의견이 분분한 책도 있지만 여전하다. 그 동화들과 마주해보자. 처음 만났던 세상을 어떻게 그렸었는지, 그리고 지금은 어떻게 그리게 될지. 성장해버린 자신과 성장을 준비하던 때의 자신이 만나는 모습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2014년의 마지막주가 코앞에 남은 기간, 내안에 살아있던 동화(명작)를 다시 만날 준비를 하자. 나는 물론 준비를 마쳤으니 이제 몽실언니를 만날 예정이다.

P.15
어린 시절의 독서는 우리에게 영원히 살아남아 있습니다. 이것은 최초의 나, 벌거벗은 나라는 인간이 어떻게 세상을 알게 되었나, 어떻게 남의 마음을, 다른 세상을 상상하게 되었나와 관련이 있을 겁니다.



저자
고민정|KBS 아나운서
권오준|생태 동화 작가
김용언|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기자
김응교|시인, 문학평론가, 숙명여자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
김진애|도시 건축가, (사)인간도시컨센서스 공동 대표
김혜리|《씨네21》기자
류동민|경제학자, 충남대학교 교수
안미란|동화 작가
안소영|작가
오영욱|건축가, 여행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우석훈|경제학자
이용훈|서울도서관장, 도서관문화비평가
이정모|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장석준|노동당 부대표
정혜윤|CBS 프로듀서, 작가
황경신|소설가
홍한별|번역가

글, 사진: 땡스북스 김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