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4일 ~ 5월 30일
땡스북스 금주의 책

레코드를 통해 어렴풋이
그 책
김기연 글/사진/디자인

우리가 이전에 만났었던 음악들은 분명 소리이기 이전에 물건이었다. 무게와 광택은 물론 적절한 강도나 부피를 갖춘 유형의 것. 이것은 곧 음악을 많이 듣는다는 것은 방에 쌓인 짐이 많다는 것을 뜻하기도 했다. 마니아의 뼛골이 음악에 대한 애심으로 얼마나 차올랐는지는 그 더미가 입증하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점차 음악이 데이터를 타고 비행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음악의 단위가 달라지는 놀라움을 경험했다. 한 곡과 만 곡의 무게가 같아졌으며, 음반을 손에 쥐어보는 과정 없이도 즉각적인 감상이 가능해졌다. 이렇듯 음악의 경로가 바뀌면서 음반을 싸거나 꾸렸던 이미지들도 점차 데이터의 구별을 위한 인덱스와도 같은 부당한 대우를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남아 예술로서 자리잡은 커버 아트들이 있다. 그것은 음악이 담고있는 청각적인 성명을 보여주고 있음은 물론, 개별적인 시각 예술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특히나 LP판의 넓은 면적을 채운 아트웍은 그 존재감이 만만치 않다.

P.6
파일로 음악을 듣는 세대는 레코드 커버의 아름다움과 비밀을 알지 못한다. 큼직한 커버의 면은 음악과 일체화된 독립된 예술품인 것이다. 최고란 형용사는 이때 필요하다. 당대 최고의 아티스트들은 기꺼이 커버를 디자인하고 음악 안에 녹아든 이력을 갖고 있다. 본질과 형식이 겉돌지 않고 동거하던 시대의 풍요는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 추천의 글: 윤광준

엄밀히 말하면 나는 LP세대를 경험한 적이 없다. 턴테이블에 레코드판을 제대로 걸어본 또래들은 드물다. 우리 세대에게 LP는 과거에서 날아온 원반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때 단 한 곡만을 청취해 보고는 빌리 스콰이어의 중고 LP를 선뜻 구입한 적이 있었다. 턴테이블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방금 들은 LP가 아니면 안된다는 기묘한 아집에 집어왔었던 것이다. 재생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는 없었기 때문에 그저 한참을 벽에 기대어 세워놓았고, 아쉬운대로 커버만을 감상하며 몇 안되는 단서로 그 내용을 추론하려 했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커버 아트로의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당시 성시완 선생님이 가졌었던 음반 컬렉션 전시는 그것들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을 담을 수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주었다.

P.263
젊은 날에는 그 시절에 해야만 하는 것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끊임없이 시도하고 넘어지고, 또 시도하고 경험하는 것이야말로 젊은 날에만 할 수 있는 특권입니다. 이미 그 젊은 시간을 다 보내버린, 그럼에도 여전히 젊은 시절의 한 가운데에 있는 이 순간에도 우리에게는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요. 젊은 시절은 인생의 가장 좋은 시절입니다. 이때에 해야 할 것을 못하고 지나치고 있다면 누구라도 후회하게 될 겁니다.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당신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생각들을 그대로 가둬두지 마세요. 그것이 무엇이든지 지금, 당장에 실행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러면 시간이 지난 후에 스스로에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요.
“사고치고 저지르자, 지금 당장!”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분명 레코드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면서도 음악이나 밴드의 히스토리 같은 전문적인 지식에 대하여 말하고자 하는 책은 아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앨범의 커버 아트를 통해 일상적이고 소박한 우리들의 일상에 말을 건다. 이미지가 담고 있는 네러티브를 매개로 우리들의 경험과 삶을 투영해보는 것이다. 또한 단순한 포장의 역할을 넘어서 재미있는 장치들과 유머를 갖춘 커버들에 대해 소개받고 있노라면 이것들이 독자적으로도 얼마나 많은 의도와 이야기들을 숨기고 있는지에 대해 새삼 놀랍기만 하다. 이 책은 결국 인생에 대한 이야기이며, 살면서 한 번쯤 생각해 볼만한 것들에 대한 솔직한 수필이다.

P.109
연애시절이 한 시절에 불과할지라도 그 한때는 아름답습니다. 현실이란 팍팍한 세계를 버텨낼 힘을 그 시절에 비축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때로 그 시절이 아픈 기억으로 남게 된다 할지라도 그렇습니다. 돌이켜 보면, 우리 삶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때는 유년시절과 연애시절입니다. 엘튼 존Elton John의 이 앨범 커버를 볼 때마다 우리의 지나간 그 시절이 어떤 빛깔로 삶 전체를 관통해 흐르고 있는지 떠오릅니다.

P.220
누구나 지극히 주관적인 시선으로 타인을 봅니다. 자신의 경험과 시선의 테두리 안에서 생각하고 판단하지요. 그러다 보니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합니다. 마치 삶이 상처를 주고받은 일의 연속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누군가를 잘 안다는 생각조차 버려야겠습니다. 너무 가까워도 실수가 생겨요. 섣부르게 잘 안다고 믿었기 때문이고, 그래도 되지 않을까 하는 틈이 마음에 생기기 때문입니다. 너무 멀면 서먹해져서 관계의 끈이 헐거워져 힘을 잃게 되지요. 그렇기에 좋은 관계의 기술이란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글/사진/디자인: 김기연
저자 김기연은 분명 카피라이터다. 하지만 캘리그라피 작업도 하고, 때로 사진을 찍어 전시를 하거나, 직접 디자인을 하는 아트 디렉터이기도 하다. 그는 존재하는 것이 모두 제각각인 듯 보이지만 결국 언젠가는 한 자리로 모여 소통한다고 믿는다. 오디오와 음악을 사랑하는 그가 레코드를 통해 어렴풋이 떠오르는 삶의 속살을 슬며시 드러내어 말할 수밖에 없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기연은 늘 관계에 대해 고민하면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이에 드리워진 내면의 풍경을 조용히 응시하고자 한다.

글, 사진: 땡스북스 김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