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3일~6월 9일
땡스북스 금주의 책

꿈의 포로 아크파크, 세미콜론


마르크앙투안 마티외 지음 / 이세진 옮김


만화를 다른 차원, 새로운 경지로 옮겨 놓은 실험이 시작된다!
『꿈의 포로 아크파크』 전 5권은 시리즈이면서도 각 권이 독립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근미래이지만 어쩐지 더욱 퇴보한 것 같은 복고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한 가상 국가를 배경으로
유머를 모아 관리하고, 유머 사전을 집필하는 정부 부처 '유머부'에 근무하는 공무원 ‘아크파크’가 겪는
기이한 모험 이야기인 이 시리즈는 각 권이 만화의 기본적인 전제(2차원 평면 예술)나 만화의 원리
(칸의 진행은 시간이 흘러감을 의미), 형식(흑백) 등에 의문을 던지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만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2차원 평면, 흑백 만화의 세계를 벗어나고 싶어 하거나 시간의 흐름과
공간들의 관계가 모두 꼬인 상황 속에서 헤맨다. 이 모든 일들에 얼떨결에 휘말린 주인공 아크파크를
통해 독자들은 그의 모험에 동참하면서 만화, 나아가 예술과 현실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기이한 일들에 휘말리는 카프카 소설의 주인공들을 연상시키는 아크파크는 그 이름부터가 카프카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캐릭터다. ‘Acquefacques’는 KAFKA를 거꾸로 한 AKFAK를 프랑스 이름처럼
다시 쓴 것. 부조리하고 억압적인 상황을 타개하려고 하지만 한계에 부딪히고 만다는 점 역시 카프카와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시시콜콜한 데 집착하는 정부가 모든 것을 감시, 통제하고
관료주의가 시민들의 일상을 지배하는 갑갑한 사회에 대한 풍자는 조지 오웰의 『1984』에서
이어져 온 흐름을 색다르게 계승하고 있다.
이 작품은 주인공 자신이 관료제의 일부이지만 그 틀을 벗어나는 즉시 처벌받고, 또 관료주의에
이용당하는 비극적인 모습을 씁쓸하고 황당한 유머와 풍자로 녹여내고 있다.




1권
기원

이 책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다!

기원이라는 단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이야기의 처음과 끝, 순서는 어떻게 정해지는가에
대한 이야기. 만화의 '칸'이 시간을 나타낸다는 개념을 바탕으로 칸을 뚫어버린 페이지를 등장시켜
시간을 혼란에 빠뜨린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만화가의 모습을 직접 등장시키는 등 시리즈의 첫 번째
권답게 ‘만화에 대한 만화’ 라는 이 시리즈의 핵심을 전반적으로 계속 드러내고 있다.




2권
사...

수상하고 위험한 흑백 세계의 비밀!

사람들이 자꾸만 감추려고 하는 ‘사…’의 정체를 찾는 이야기.
흑백 만화의 세계에서는 정말 흑백만이 존재하고 컬러 개념이 없다는 전제 하에 '4도인쇄'의 세계를
만나는 아크파크의 모험을 그린다.

3권
프로세스

꿈의 프로세스 탐구!

꿈과 현실이 뒤죽박죽 되어 기묘한 모험을 하게 된다.
현실의 아주 작은 사고 하나가 전체 프로세스를 망쳐버릴 수 있다는 이야기.
남의 꿈을 머리에 주입하는 장면과 꿈을 조작해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설정이 영화 「인셉션」을
연상시킨다.

4권
끝의 시작, 시작의 끝

뫼비우스의 띠를 닮은 끝없는 이야기!

언어, 사물, 시공간… 모든 것이 뒤집혀 버린 상황을 헤쳐나가야 하는 아크파크.
앞과 뒤, 어디에서 읽어도 연결되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이야기로, 앞에서 시작하는 이야기와
뒤에서 시작하는 이야기가 붙어 있는 책.
표지도 앞, 뒤 두 가지.

5권
2.333차원

2차원에 가까운 3차원 세계!

만화 속 세상은 2차원에 가까운 3차원 세계인 2.333차원.
아크파크는 잃어버린 소실점을 찾아 3차원을 회복하려는 프로젝트에 투입된다. 2차원 종이 만화 세상의
사람들이 평면을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로 들끓는 모습이 코믹하다.
3D 입체 만화로 제작되었으며 3D안경이 부록으로 첨부되어 있다.

글 그림 : 마르크앙투안 마티외 Marc-Antoine Mathieu

1959년 프랑스 앙제에서 태어났다. 앙제의 에꼴 데 보자르에서 수학하고 1986년부터 신문, 잡지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작품을 발표했다. 1990년 출간한 『기원』으로 앙굴렘 세계만화제에서 뛰어난
신인 작가에 수여하는 쿠드쾨르 상을 수상했고 2004년까지 후속권을 출간해 ‘아크파크’ 시리즈를
다섯 권으로 완결했다. 그는 독특한 만화적 상상력과 예술의 본질에 대한 탐구, 부조리하고 암울한
상황과 블랙 유머의 조합으로 고유한 작품 세계를 만들어 가며 유럽 만화계에서 특이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 『그림자들의 마음』, 『어느 박물관의 지하』, 『데생』, 『신의 현신』 등이 있다.

역자 : 이세진

서울에서 태어나 서강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프랑스 랭스 대학교에서 공부했으며, 현재 전문번역가로 일하고 있다. 『숲의 신비』 『곰이 되고 싶어요』 『회색 영혼』 『유혹의 심리학』 『나르시시즘의 심리항』 『고대 철학이란 무엇인가』
『다른 곳을 사유하자』 『아프리카 술집 외상은 어림없지』 『반 고흐 효과』 『유혹의 심리학』
『욕망의 심리학』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지막 나날』 등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2011년 6월 10일~6월 16일
땡스북스 금주의 책

첫 비행기 타고 훌쩍 떠난 제.주.올.레.트.레.킹., 바다출판사


심산스쿨의 심산이 쓰고 김진석이 찍다

책 제목 그대로 훌쩍 떠나고 싶은 요즘,
여행다녀온 셈치고 다른 사람이 다녀와서 쓴 여행책을 금주의 책으로 올려본다.

흔한 여행책의 장점이자 단점은 바로 너무나 객관적인 정보와 뻔하게 잘 찍은 사진이다. 막상 여행지에 가보면 사진에서 보던 풍경은 열에 하나 정도고 객관적인 정보탓에 왠지 같은 책을 들고다닌 사람을 만날 것만 같다. 그래서 읽기는 좋지만 여행지에 들고 가봤자 짐만 늘리는 격이다.

그렇게 흔한 제주도 올레길 책인가 싶었던 이 책은 어딘가 다른 여행책같지 않다.
제주 올레길 소개에 열을 올리지도 않고 각 페이지에 있을 법한 번듯한 여행정보도 없다.
(아, 올레길 정보는 책 뒤에 아주 편하게 별도로 묶여있어 정보를 한눈에 보기 편하고 여행갈 때 가져가기도 쉽다.) 글쓴이는 3년 중에 반년정도를 제주에서 보냈다고 하는데 자기가 살면서 동네 소개하듯 편하게 올레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때로는 풍경을 때로는 같이 걸어던 인물을 써내려간 이 책은 제주에 한번도 안가본 사람에게 관광지 소개만 실컷 하다가 돌아갈 때쯤 기념품이나 챙기게 하는 그런 책이 아니다. 23개 코스로 이뤄진 올레길이 가진 각각의 개성만큼이나 각각의 에피소드를 읽다보면, 멀게만 느껴지던 제주 올레길이 자주 다니는 골목길 만큼이나 정감있게 다가온다. 여행다녀온 친구의 경험담을 듣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예전만큼 제주도 가는게 어렵지는 않아서 (저가항공도 있고) 책 제목처럼 훌쩍 떠날 마음의 준비만 되어 있다면 언제든 도시를 벗어나 올레길을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특별한 계획도 필요없고 그저 잘 걸어갈 신발만 챙기면 된다. 글쓴이가 말하듯 23개의 코스는 구분을 위한 숫자이지 어디부터 시작하든 마음에 들면 그만이다. 기념품 챙기거나 다시 열어보지 않을 사진을 찍을 필요도 없다. 그저 걷고 걷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고 싶을 때 편하게 돌아올 수 있는 그런 곳이 바로 제주 올레길이라고 하니까.


p.243 올레는 걷기 위한 길이다. 자동차를 타고 달리기 위한 길이 아니라는 뜻이다. 올레를 걷는 목표는 그 자체에 있다. 다시 말해 '걷기 위해 걷는'길이다. 언뜻 무의미한 동어반복처럼 들리는 이 명제 안에 그러나 올레의 혁명성이 있다. 올레는 전쟁을 준비하며 정찰 삼아 뚫어 놓은 길이 아니다. 경제적 이익을 가늠하여 만든 길도 아니다. 하물며 종교적 이유로 생겨난 길도 아니다. 심지어 체력단련을 위해 낸 길조차 아니다. 걷기 위해 걷는다. 이 단순한 명제 안에 올레의 아름다움이 있다.

저자: 심산
산에 오르고 와인을 마시며 글을 쓰는 전업작가. 연세대 불문과를 졸업한 이후 줄곧 장르를 넘나드는 창작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영화인회의 회원·한국산서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현재 심산스쿨(www.simsanschool.com)에서 시나리오와 와인을 가르치며 심산스쿨 대표,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 대표, 코오롱등산학교 강사, 한국산서회 회원, 마운틴북스 편집인 등으로 활동한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식민지 밤노래』(1989), 장편소설 『하이힐을 신은 남자』(1992) 『사흘낮 사흘밤』(1994), 다큐멘터리 『세상을 바꾸고 싶은 사람들』(공저, 1998), 산악문학 『심산의 마운틴 오딧세이』(2002) 『엄홍길의 약속』(2005), 작법서 『한국형 시나리오 쓰기-심산의 시나리오 워크숍』(2004)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시나리오 가이드』(1999) 『시나리오 마스터』(심산스쿨 공역, 2007) 등이 있으며, 영화화된 시나리오로는 「맨발에서 벤츠까지」(1991) 「비트」(1997) 「태양은 없다」(1999) 「비단구두」(2006) 등이 있다. 「태양은 없다」로 1999년 백상예술대상 시나리오상을 수상했다.

사진 : 김진석
사진작가. 몇 년 전만 해도 만성 운동 부족의 ‘걷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올레의 사계에 흠뻑 취한 순간부터 ‘걷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말」지 객원기자와 「여의도통신」 편집장을 거쳐 프리랜서 사진작가로 활동 중이며, 홍대 인근에서 스튜디오 ‘La Luz’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영화 현장에서 스틸 사진과 포스터 촬영을 하고 있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새벽을 여는 사람들』, 『찍고 또 찍고』, 『카미노 데 포토그래퍼』, 『소울 키스』 등이 있다.
yeongook@gmail.com / http://blog.naver.com/yeongook



글: 땡스북스 김욱



2011년 6월 17일~6월 23일
땡스북스 금주의 책

효자동 레시피, somo

신경숙 지음 / 백은하 그림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 어떤 요리법이 필요한가?'
효자동 어느 골목길에 위치한 레스토랑 '레서피'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어쩌다보니 추천하는 책이 또 푸드 에세이다.
'이기적 식탁' 글에서도 고백했듯이 나 역시 '푸드 포르노 중독자'의 기질이 다분하다보니,
좋아하는 책도 음식 관련 책들이 많다.
게다가 예쁜 까페나 레스토랑, 베이커리 등에 대한 관심도 크다보니 이번 책 역시 맛있는 음식과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로 채워진 공간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효자동 레시피'의 작가는 '이기적 식탁'과는 달리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즐거움을 느끼는 매우 '이타적 식탁'을 준비한다.
음식을 만드는 것이 참 즐겁고 행복하다는 그녀의 맛있는 음식냄새로 가득한
효자동의 '레서피'가 궁금하다.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있다.
애피타이저로 시작해서 따뜻 한 수프, 싱그러운 샐러드, 알찬 메인 디시, 행복한 디저트까지.
눈으로만 읽는데도 뭔가 제대로 대접 받는 느낌이 든다.

책 속엔 '레서피'에서 만들어지는 음식의 레시피와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담겨있다.
레스토랑을 오픈하고 처음으로 만든 음식, 매일 같은 시간에 찾아와 같은 메뉴를 주문하는 손님,
청혼을 위한 요리를 주문했던 손님 등, 그냥 '맛있다'란 말로 끝나는 음식보단,
'~했을 때 먹었던 음식'이 더 기억에 남고 애착이 생기기 마련이다.

효자동 레시피의 감칠맛 나는 조미료 역할을 하는 백은하 작가의 일러스트들.

"저 쪽은 요리하는 성주이고, 그 옆은 문성윤이라고 합니다. 이쪽은 퇴근하다 잡혀온 한경이
제 친구입니다. 저 뒤의 키 큰 친구는 신선주라고 합니다. 앞으로 요리를 하려고 하는 친구입니다.
이쪽은 앞으로 기타리스트가 될 이창제라고 합니다. 그리고 저는 신경숙입니다."

레서피에서 저녁 식사를 하려면 여러 절차를 거처야 한다고 한다.
나오는 음식들에 대한 간단한 설명뿐만 아니라, 스태프까지 일일이 소개한다는데
내가 손님이라면 뭔가 음식에 대한 신뢰도가 쑥쑥 올라갈 것 같다.

책을 통해 본 레서피는 참 좋은 손님을 많이 만난 것 같다.
멋진 메뉴 설명과 스태프 소개를 하는 것이나, 훌륭한 레시피를 완성하기까지
옆에서 좋은 평가단과 훌륭한 조언자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주는 손님들이 있었기에
더욱 좋은 레스토랑으로 성장할 수 있지 않았을까.

효자동 레시피를 보면 영화 <카모메 식당>이 생각난다.
손님이 있든 없든 간에 언제나 맛있는 무언가를 뚝딱뚝딱 만들고 있는 주인 사치에상,
그리고 언제나 밝은 미소로 '어서오세요'하며 손님을 맞이하는 그 모습.
항상 같은 자리에서 나를 맞이해주고, 깊은 이야길 하지 않아도
맛있는 음식으로 마음의 위로를 받을 수 있는 따뜻한 곳.
누구나 꿈꾸는 그런 공간이 효자동엔 있다.

너무 멋부리지 않고 영혼이 있는 음식을 파는 레스토랑이 되었으면 한다는 손님의 멋진 충고처럼
'영혼이 있는 음식'을 만들고자 노력했던 레서피.
긴 방학이 끝나고 다시 시작한 지금도 여전히 그 다짐을 지켜가고 있으리라 기대하며,
그 곳의 음식을 하루 빨리 맛보고 싶다.




저자: 신경숙

사람들 앞에서 늘 '요리하는 신경숙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그녀.
어려서부터 음식을 먹는 것과 만드는 것에 모두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요리하는 자리를
기웃거리다가 효자동 골목길에 '레서피Recipe'를 열어 5년간 운영해 왔다. 그저 통유리창을 통해
가게 안을 살피던 사람들은 어느새 그녀의 요리와 마음에 반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좌충우돌 유쾌하고 따뜻했던 가게에서 사람들은 단순히 음식만 먹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기억을
간직하게 되었을 터. 레서피의 방학을 선언했을 때에는 모두들 아쉬운 마음을 표했다.
시간이 꽤 흐른 지금도 간혹 예약 전화를 하는 손님들이 있어 반가운 마음이다. 그럴 때마다
"지금은 레서피가 방학 중입니다. 호호호."라고 답한단다.
음식을 마주하고 벌어진 소중한 이야기들과 레시피를 책 안에 고스란히 담아낸 그녀는 지금
남편과 함께 12월에 세상에 나올 아기를 기다리고 있다. 취미로 플루트를 배우고 있다.

그림: 백은하

꽃도둑이라는 별명을 가진 그녀는 꽃잎을 떼어내 책갈피에 끼워 고이 말린 후, 도화지 위에 올려
몇 개의 선을 더해 꽃잎을 사람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해왔다. 그런 그녀가 이번엔 수채화로 '레서피'라는
세계를 그렸다. 공간, 음식, 사람, 이 따뜻하고 유연한 캐릭터들을 하나하나 완성해가는 즐거움은
책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물고기와 치즈를 그리면서 기뻤고, 무엇보다 경숙 씨의 얼굴을 그리면서는
미소가 절로 떠오른 즐거운 작업이었다고. 평소 절친 이웃인 경숙 씨의 원고를 보며 그림들이
절로 연상되어 출판 작업 후반부에 리듬을 타고 작업을 하게 되었다.



글: 땡스북스 최혜영

2011년 6월 24일~6월 30일
땡스북스 금주의 책

지금 시작하는 드로잉, 안그라픽스


오은정 지음

이런 저런 핑계로 백날 미루고 있는 당신에게 진지하게 묻겠다.
"진심으로 원하고 있는 것 맞습니까?"


‘드로잉’이란 단어에 눈길이 갔고, ‘지금 시작하는’ 이란 말에 책을 집어 들었다.
그림 그리는 것을 배우고 싶었지만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던 내게
이 책은 중요한 무언가를 말해줄 것만 같았다.

이 책은 '그리다'는 행위를 마음, 여유, 만끽, 자유라는 네 단계로 구분하였다.

책에서 내가 가장 큰 도움을 받았던 부분은 '마음-그리다'였다.

오래 전부터 그림을 좋아했던 나는 뒤늦게나마 그림 공부를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매번 시도도 해보기
전에 ‘이미 늦었다. 나는 미술전공자도 아니다.’ 는 등의 이유로 자신감을 잃고 공부를 포기하곤 했다.
이런 내게 작가는 묻는다. “당신은 왜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까?” “진심으로 원하고 있는 것 맞습니까?”
겁쟁이와 게으름뱅이의 못난 변명으로 그림 공부를 미뤄왔던 나를 뜨끔하게 만드는 질문이었다.
이는 내가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는 이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고,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를
스스로 할 수 있게끔 만들어주었다. 이렇듯 이 책은 드로잉 기법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근본적인
드로잉 마인드에 대해 따뜻하고도 엄격한 조언들을 아끼지 않는다.

"기법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마인드'다. 즉, 마음가짐의 방법 또는 접근의 방법이다. 어차피 기술은 스스로 연습을 해야 터득할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의 준비가 안 되면 그조차도 시도하기 힘들다."

두 번째 '여유'에선 선, 입체감, 시점, 색채 등 드로잉의 기본기를 다질 수 있는 기법을 다룬다.

미술 전공자라면 이 챕터에서 나오는 설명들이 다소 지루하고 의미없게 느껴질 지 모르지만,
나처럼 진짜 '지금 시작하는' 사람에겐 진정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친절한 드로잉 가이드가 된다.

세 번째 단계에선 빠르고 실용적인 드로잉을 하며 '만끽'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마지막으론 앞에서 공부한 기법들을 잘 활용하여 상상하고 창작하며 '자유'롭게 그릴 수 있는 단계에 이를 수 있는 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금 시작하는 드로잉'은 드로잉 기법만을 가르치는 딱딱한 교과서가 아니라, 미술을 공부하는
'매우 친절한' 선배의 따뜻한 조언이 담긴 책이었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에서 ‘인생에 너무 늦었거나, 혹은 너무 이른 나이는 없다.’는
대사가 나온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엔 너무 늦었다고 말하는 것은 용기 없고 게으른 자신을 방어하는
변명일 뿐이다. 드로잉뿐만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에 꿈꿔왔던 무언가가 있다면, 모든 고민과 핑계를
뒤로하고 도전해보자. 적어도 1년 뒤에 지금과 같은 고민을 하며 ‘이젠 정말 늦었어.’라고 말하기 싫다면.
이 책을 읽은 날 밤, 나는 한 장의 드로잉을 하였다. 그리곤 이 유치한 드로잉을 액자에 끼워 뻔뻔하게
걸어두려한다. 작가의 말처럼 혹시 아나, 내 그림을 사고 싶다는 사람이 나타날지!

저자: 오은정

숲과 여행, 사색을 좋아하는 순수예술 작가. 깨어 있는 시선과 따뜻한 마음을 담아 '온정on-jung’이라는
필명을 사용한다. 저자에게 그림 작업의 휴식은 글쓰기이며 글쓰기의 휴식은 그림 작업이다. 미대 시절,
우연히 떠난 긴 여행에서 즐겁게 그리는 것의 소중함을 깨닫고 인터넷 동호회 <미술과사람들>을
만들었다. 그곳에서 그리기를 사랑하는 이들과 ‘사부’와 ‘제자’로 만나 서로의 인생과 그리기의 철학을
10년째 나누는 중이다. 자신이 받은 재능을 세상에 환원하기 위해 이리저리 궁리하고 있으며 이 책은
그 프로젝트 중 하나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쭉 세상을 응시하고 작품에 담을 것이며,
낙천주의 예술가로 자유롭게 살고자 한다.



글: 땡스북스 최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