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21일 ~ 2월 27일
땡스북스 금주의 책

1인분의 여행
북노마드
구희선 저

어떠한 교훈도, 아름다움도 기대하지 않는 그녀의 담백한 1인분 여행기

8년 전쯤, 여행 에세이에 미쳐있던 때가 있었다. 그땐 여행 에세이보다는 여행 가이드 북이 더 많이 출간될 때였고, 지금은 가히 '국민 여행 에세이'가 된 이병률 작가의 「끌림」조차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무렵이었다. 외국은커녕 국내 지역조차 제대로 여행해본 적이 없던 나는 학교 도서관에 있는 여행 에세이들을 싹 쓸어 담으며 그들의 여행 경험담과 풍경들을 훔쳐 보곤 했다. 그 낯선 공간의 분위기와 자유를 상상하며.
하지만 곧 여행 에세이 붐이 일어나면서 비슷한 내용에 비슷한 감성, 비슷한 사진에 비슷한 디자인의 책이 쏟아졌다. 막상 내용을 펼쳐보면 이 책이 저 책인지, 아까 그 책이 이 책이었는지 모를 정도로 개성은 부족하고 감성만 넘쳐나는 책들이 늘어났다. 단지 내 독서 취향의 변화였을 수도 있지만, 그러그러한 이유들로 여행 에세이는 내 관심에서 멀어져갔다.
이 책은 그 후로 꽤 오랜만에 집어든 여행 에세이이다.


처음엔 디자인에 끌렸다.
평소 책을 사면 그 책의 띠지, 양장의 경우엔 겉표지까지 벗겨버리고 소장하는 편인데 이 책은 처음부터 내게 알맹이 만을 보이고 있었다. 어느 거추장스러운 껍데기도 없는 흰색의 양장본에「1인분의 여행」이라는 은색의 책 제목만이 쓰여있었다. 내지 또한 표지의 느낌 그대로였다. 새 책임에도 불구하고 낡은 책의 느낌이 나는 얇은 회색 종이와 다소 촌스럽고 투박하게 얹혀진 흑백의 글과 사진들. 이 옛스러워 보이는 책이 내겐 오히려 새롭고 신선하게 느껴졌다. 북 디자이너를 찾아 뒤적여보니 이 책의 저자가 직접 디자인을 한 것이었다. 그것으로 나는 글을 읽어보기도 전에 이 책이 완전하게 좋아졌다. 난 이 책이 온통 맘에 들었다.


P.22
“혼자 가면 재미없지 않아?”
친구들은 이렇게 물었고,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야. 혼자 가도 재밌어.”
하지만 정확히는 이런 대답이 옳았으리라.
“응. 하지만 더 심심해져야 해.”
그들이 말하는 ‘재미’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했지만, 그 ‘재미’에는 치러야 할 값이 있고, 그 값이 나를 또 나가떨어지게 하고 다시 매달리게 하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완전히 혼자가 되지 않는 이상, 이 피로한 행보가 계속되리라는 것도. 완전히 혼자가 되기 위해 노력할 만큼 용기가 있지도, 완전히 혼자가 될 수 있다고 믿을 만큼 어리지도 않았던 나는 1인분의 여행을 떠났다. 온갖 재미로부터 떨어져 마음껏 심심해져야 할 때.

저자는 베트남 호치민과 캄보디아 프놈펜, 씨엠립, 시하누크빌, 코 롱 삼로엠 섬을 혼자 여행한다. 1인분의 여행이지만 *카우치서핑이라는 여행의 방식을 통해 각 나라와 도시에 거주하는 친구들을 만나고, 그들의 생활에 자연스럽게 섞여졌고, 또 자연스럽게 헤어졌다.
(*카우치서핑: 행자가 잠잘 수 있는 「소파(couch)」를 「찾아다니는 것(surfing)」을 뜻하는 말. 현지인은 여행자들을 위해 자신의 카우치를 제공하고 여행자들은 이들이 제공하는 카우치에 머무르는 일종의 인터넷 여행자 커뮤니티다.)


P.40
“안녕, 잘 다니고. 또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를 감싼 그의 손이 내 등을 지긋이 눌렀다. 귀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다시 호치민으로 돌아올 테지만 그리고 나도 그를 다시 만나게 되기를 바랐지만, 왠지 다시는 만나지 못할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애틋한 마음이 들면 그것은 벌써 추억이 되어버린다. 이미 지나가버려 생각으로밖에 쫓을 수 없는.
“안녕, 나도 꼭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어.”
나는 정말 우리가 다시 만날 것처럼 얘기했다. “다시는 못 보겠지만” 같은 단서는 달지 않았다. 대신 그의 등을 똑같이 지긋이 눌러주었다. 그도 나에게 아주 작은 위로나마 받을 수 있기를 바라며.


P.190
도대체 나는 여기서 뭘 하는 건가. 물은 허리 정도의 높이라서 수영을 못하는 나는 감지덕지다. 사람들은 저마다 머리에 가방을 하나씩 이고 무거운 물살을 가르며 해변 쪽으로 나아간다. 마치 바다 위에 불시착한 비행기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섬에 표류하게 된다는 영화의 첫 장면 같다. 물론 그들이 비키니를 입고 있을 리 만무하지만. 섬에는 작은 플래카드 하나가 걸려 있다. Welcome to Paradise.

P.73
누군가 여행의 장점에 대해 묻는다면 여러 빛나던 날들을 얘기하다가 끝머리쯤, 그 빛나는 얘기가 저물어 갈 때쯤, '궁색하지 않은 가난'을 슬쩍 그 장점의 대열에 밀어넣을 것이다. 가장 못생겼지만 가장 사랑하는 자식을 새치기시키듯이.


P.213
“곧 석양이 진다. 보고 가. 어차피 지금 가봐야 터미널에서 시간 때워야 하잖아. 툭툭 잡아서 터미널까지 바래다줄게.”
우리는 시덥지 않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석양을 봤다. 너랑 좀더 일찍 만나서 같이 여행을 더 했다면 재밌었을걸. 그가 농담처럼 얘기했다. 그러게. 나도 너랑 있는 게 좋았는데. 나도 농담처럼 얘기했다. 붉어진 석양 위로 축축한 보랏빛 어둠이 꽤 많이 번져갈 때까지 우리는 왠지 모를 아쉬움을 느끼며 해변에서 맥주를 마셨다. 툭툭이 터미널까지 미친듯이 빠르게 달려줄 거라는 믿음을 갖고서.


P.222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람들은, 여행을 간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아무것도 변해 있지 않고, 심지어 멈춰 있던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삶의 전차를 풀가동시켜야 하겠지만. 틈만 나면 싼 비행기 티켓을 알아보고, 여행에 최적화된 가볍고 기능적인 아웃도어 용품을 구경한다. 그런 일이 즐겁다. 이왕 지구에 태어났으니 지구에 있는 나라는 다 가봐야 하지 않겠나, 하는 거창한 이유는 아니다. 왜 여행을 떠나는가에 대한 멋진 답변은 도무지 못 찾겠다. 그냥 낯선 곳을 가는 것이 그리고 그 낯선 곳에서 내가 낯설어지는 기분이 꽤 오랫동안 지겨워지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여행을 했고, 계속 여행을 할 것이다.


위에서도 언급하였지만 나를 매료시킨 것은 이 책의 전체적인 이미지였다. 게다가 '무심함'과 '담백함'이 매력인 이 책에, 잘 소개해야 한다는 이유로 나의 감상과 해석을 덕지덕지 붙일 수가 없었다. 그랬다가는 이 책만의 고유한 감성이 흔하디흔한 것으로 변질될 것만 같아 내 어설픈 글보다는 책의 이미지와 분위기로 이 책을 소개하고자 했다.
그저 여름이 오면 뜨겁고 따가운 햇볕이 쏟아지는 자리에서 시원한 맥주 한 캔 벗삼아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물론 준비된 양은 딱 1인분이다.


저자: 구희선
일단 지금은, 엔지니어. 한동안은 바텐더였고, 간간이 카페 언니였고, 잠깐은 낙지집 서빙 아줌마였다. 그리고 아주 오래 학생이었다. 졸업을 하고 나니 디자이너가 되었고, 디자이너를 그만두니 엔지니어가 되었다. 번잡했던,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번잡할 이력들은 손쓸 도리가 없지만 그 간극에서 나는 여행자였으면 한다.

글, 사진: 땡스북스 최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