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23일 ~ 29일
땡스북스 금주의 책

나와 선배
한스미디어
히라노 타로 지음 | 방현희 옮김


“당신은 선배가 있습니까?” 그냥 아는 학교 선배 말고 닮고 싶은 인생 선배 말입니다. 선배가 나를 몰라도 상관 없습니다. 막막한 인생에서 왠지 조금 기대고 싶은 선배가 필요하다면 지금부터 제가 소개하는 이 책 《나와 선배》를 만나시면 됩니다.


일본 잡지 [POPEYE]에 3년에 걸쳐 연재된 글을 단행본으로 만들었습니다. ‘동경하는 선배를 만나러 갑니다'라는 컨셉으로 사진가인 저자가 각 분야의 본받을 만한 선배들을 만나 짧고 담백한 글과 자연스러운 사진으로 삶에 대한 태도와 생각의 깊이를 담았습니다.



P. 11
선배들 앞에서 거창하게 행동해봤자 아무 소용 없다. 선배들은 그런 허세를 모두 꿰뚫어 볼 것이다. 빈틈투성이인 채로 선배들을 찾아갔다가 돌아올 때는 그 틈이 조금이라도 메워진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문화 예술 분야에서 인정받는 서른여섯명의 크리에이터 선배들은 우리나라에도 제법 알려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와타나베의 건물탐방'으로 유명한 배우 와타나베 아쓰시, 일본 매거진하우스의 최고 고문인 기나메리 요시히사, 영화감독 오바야시 노부히코, 만화가 미즈키 시게루, 그리고 저자의 아버지인 북 디자이너 히라노 가고로 마무리 됩니다. 이 책의 원서인 일본어 판은 히라노 가고가 디자인 했습니다. 아들의 책을 디자인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흐뭇했을지 미루어 짐작해봅니다. ,


일본어 원제는 《boku no Senpai》. boku는 남자를 자칭하는 ‘나'입니다. 그러다보니 선배들이 다 남자입니다. 그리고 말투도 감상도 전문 에디터가 아닌 남자 사진가의 글입니다. 그런 투박함이 이 책의 매력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책표지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유명한 안자이 미즈마루를 만난 6페이지를 소개합니다.

P. 34~39
한여름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다. 취재를 시작하기 전에 시간이 남아서 근처 서점을 서성이며 ‘선배도 이렇게 여기에 오겠구나'라는 상상을 했다. 책을 두 권 샀다. 서점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미즈마루 선배와 아는 사이인 듯 했다. 지금 취재를 하러 간다고 하니까 안부를 전해달라고 했다.
서점에서 3분 거리에 선배의 작업실이 있었다. 짙은 남색 재킷을 멋지게 차려입은 안자이 미즈마루 선배는 왠지 싱글벙글 환하게 웃고 있다. 선배가 먼저 명함을 건네주었다. 그 덕분에 첫 만남인데도, 게다가 염치없이 남의 작업실에 들어가 앉아 있는데도 마음이 무척 편해졌다.



이렇게 더운 날에도 선배는 짙은 남색 재킷을 입고 모카신을 신고 있었다. 재킷 안에는 셔츠, 그 안에는 헨리넥 티셔츠를 입었다.
“덴츠(일본 최대의 광고 회사) 있잖나, 거기에 입사시험을 볼 때 면접관이 나에게 제일 먼저 한 질문이 ‘그 신발 어디서 샀나?'였어. 그때는 VAN에서 나온 진회색 여름 정장에 갈색 윙팁 구두를 신고 있었거든.”
입사시험이라면 아마도 20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멋쟁이다.
“굳이 멋을 내려고 하지는 않아. 당연히 입어야 할 옷을 입을 뿐이지. 예를 들면 말이야, 예전에 외국에서 살다가 귀국한 친구네 집에 갔을 때, 잠깐 현관 밖에 나갔던 친구가 춥다면서 다시 들어오더니 현관에서 더플코트를 턱 걸치는 거야. 그걸 보고 이 친구 정말 멋있다!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런거야”
그때의 상황에 따라, 어울리는 차림을 자연스럽게 갖출 수 있는 것. 그것이 선배에게는 ‘멋'과는 조금 다른 중요한 요소인 듯했다. 그럼 나는 어떤가? 빨래할 때 옷깃에 물이 들어버린 티셔츠 한 장 만 달랑 입고 왔으니 즉시 반성 해야만 했다.



덴쓰에서 20대 후반에 퇴직한 안자이 선배는 뉴욕으로 떠났다. 1969년의 일이다. 신문 구인란에서 디자이너 모집 광고를 보고 곧바로 취직을 했다. 그러나 2년간의 뉴욕 생활을 마친 후 맨해튼을 떠날 때 머릿속에 떠오른 말은 "두 번 다시 오지 말자!” 였다. 우드스톡 페스티벌에서 재니스 조플린 노래도 들었고,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는 재즈 클럽에서 마일즈 데이비스, 앨빈 존스와 이야기도 나눠봤다. 나로서는 한없이 부럽기만 한 이야기지만, 선배에게는 앞으로의 자신을 위한 포석 이었던 모양이다. 오직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싶었던 선배는 그동안 그렇게 적극적으로 경험을 쌓아온 것이다. 그저 흘러가는대로 살고 있는 나는 또다시 즉시 반성해야만 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배가 준 선물은 과분하리만큼 감사하고, 너무나도 의미심장한 일침이었다.
“자네, 게자리인가? 난 게자린데, 게자리는 말이지, 한가지 일을 꾸준히 잘하거든. 생일이 언제지? 7월? 그럼 게중의 게네. 자네 앞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카메라맨이 될 거지? 그런 느낌이 들어.”
무슨! 그런말을! 왜!? 어떻게 하지!


이 책에서 만난 멋진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자신이 살아오며 몸으로 느껴 채득한 따뜻한 조언과 격려를 건네줍니다. 경제적 성취나 사회적 유명세와는 상관없이 자기 분야에서 프로페셔널하게 기분 좋은 결과를 이룬 선배들~!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즐기며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는 선배들~! 우리 사회에 그런 멋진 선배들이 더 많아져야 합니다. 당장은 부족함이 크지만 앞으로 나도 그런 선배가 되겠다고 스스로 다짐해봅니다.

지은이: 히라노 타로
사진가. 1973년에 태어났다. 무사시노 미술대학교 조형학부 영상학과를 졸업한 후 사진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No.12 GALLERY'를 운영하고 있다. 《POOL》, 《제각각》(호시노 겐 공저), 《도쿄의 일터》 등의 사진집을 펴냈다.

방현희
일본 치요다 공과예술전문학교, 일본 외국어전문학교, 세이가쿠인 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바른번역에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꽃도감》, 《쉽게 배우는 영문 캘리그라피 레슨》, 《단정하고 세련된 사시코 자수》 등이 있다.

글, 사진: 땡스북스 이기섭